백합/오늘의 강론

거짓의 문화, 살림의 문화

수성구 2022. 8. 1. 05:13

거짓의 문화, 살림의 문화

예레 28,1-17; 마태 14,13-21 

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주교 학자 기념일; 2022.8.1.; 이기우 신부

 

  백성을 거짓에 의지하게 한 하난야는 주님을 거슬러 거역하는 말을 한 벌로 죽었습니다. 진리는 사람을 살리지만 거짓은 사람을 죽입니다. 세상에 거짓의 문화가 판을 치면 죽임의 문화가 지배하게 되는 이유이자 배경입니다. 동생의 아내를 빼앗은 헤로데 영주도 이 죄를 공개적으로 비판한 요한을 가둔 다음 목을 베어 죽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예수님께서는 헤로데 영주가 요한에 이어 당신의 목숨도 노린다는 전갈을 받으시고(루카 13,31) 외딴 곳으로 물러가셨습니다. 그러나 여러 고을에서 소문을 듣고 몰려온 군중에게 가르쳐주시기도 하고 그 중 병자들을 고쳐주기도 하시다가 저녁 때가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군중을 돌려보내자고 제안했지만 예수님께서는 빵을 많게 하는 기적을 일으키시어 남자만도 5천 명이 넘었던 많은 군중을 배불리 먹이셨습니다. 당신 생애의 마지막 때에 성체성사를 제정하실 최후의 만찬을 이미 염두에 두시고 제자들과 군중에게 미리 표징을 보여주고자 작정하시고 일으키신 일이었습니다. 

 

  이 빵의 기적은 예수님께서 당신 삶을 사건으로 비유하신 듯한 절묘한 표징입니다. 빵은 쪼개어지고 나뉘어져서 사람을 살리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도 공생활의 초기부터 적대자들에게 노출되어 표적이 되심으로써 당신 활동이 비극적인 생애로 끝날 것을 충분히 아실 수 있으셨지만, 이에 개의치 않으시고 하느님의 진리를 가르쳐주셨고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시켜 주셨습니다. 이 진리의 가르침과 자비의 실천이야말로 인간을 하느님을 닮도록 살리는 생명의 빵이었습니다. 

 

  오늘 교회가 기념하는 알폰소는 18세기 이태리에서 활약했는데, 설교와 저술로 가톨릭 윤리 신학의 기틀을 세웠습니다. 윤리신학자로서 알폰소가 심혈을 기울여 노력한 일은, 성경의 가르침에 담긴 계시를 믿는 신자들이 지켜야 할 계명을 구체화시키는 일이었습니다. 모세로부터 전해 내려온 십계명에 대하여 유대교식의 낡은 해석을 벗어나서 사랑의 계명으로 새롭게 해석하는 작업이 광범위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이 신학 작업 역시 당대의 사유방식에 따라서 진행되었는데, 믿을 교리가 고대 그리스의 사고방식을 수단으로 하여 진행되었듯이, 지킬 계명 교리는 중세와 근세 유럽을 사상적으로 이끌었던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에 따라서 엄정하게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작업은 아직까지 진행 중인 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거치면서 다시 가톨릭 사회교리를 반영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 드리워져 있는 거짓과 죽임의 문화를 진리와 살림의 문화로 거룩하게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믿는 이들이 믿을 교리를 성경의 가르침에 입각해서 진리로 받아들여야 하고, 지킬 계명 교리에도 인간 존엄성과 사회 공동선의 원리 그리고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 명제가 확립됨으로써 믿을 교리와 지킬 계명 교리가 명실공히 사랑의 가르침이 되어야 합니다. 이와 함께 필요한 것이 있으니, 신자들이 실제로 참여하여 실천할 수 있도록 하는 사도직 활동입니다. 

 

  이 땅에 복음 진리가 들어올 무렵에도 주자학을 진리처럼 떠받들던 유림들은 공리공론만을 일삼느라 백성의 삶을 도탄에 빠뜨렸지만, 천주교를 받아들인 선비들은 실사구시적인 태도로 교리를 이해하고 실천했습니다. 특히 다산 정약용은 유배지가 가서도 천주학의 기준대로 유학 경전을 모조리 재해석 해내었습니다. 이런 노력들이 살아있는 신앙 토착화 노력이었습니다. 

 

  어제 연중 제18주일 말씀의 주제였던 참지식과 새 인간에 대한 강론에서 모범 사례로 들어드렸던 인물들 역시 실사구시적 자세로 사람들로 하여금 재물에 대한 탐욕에 빠지지 않고 가난한 이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탐구하고 실험하여 헌신했었습니다.  그 결과로 나온 산물이 메리 가브리엘라 수녀와 장대익 신부가 창립한 신용협동조합이었으며, 맥클린치 신부와 지정환 신부가 개척한 축산과 수직 및 치즈 등의 생산협동조합이었는가 하면, 장기려 박사가 실천했던 무료 병원과 의료 협동조합, 지학순 주교와 장일순 선생이 원주교구 사회사목에서 개척한 바 신용협동조합을 기본으로 하는 지역사회 개발운동과 생명공동체로서의 농민운동이었는가 하면, 유일한 박사가 개척한 유한양행에서 보여준 바 직원 복지를 기본으로 하여 국민 복지에 기여하는 모범 기업 등이었습니다. 

 

  이들의 삶과 활동 속에는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인간은 하느님을 닮도록 창조되었으니 존엄하다”, “사회는 공동선을 증진시키도록 조직되고 개혁되어야 한다”는 믿을 교리와 지킬 계명 교리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으며, 이를 자신의 사도직 활동에서 입증하기 위해 자신의 생애를 하느님께 봉헌하였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들의 실사구시적인 탐구와 인내 그리고 실천과 공동체적 조직활동이 뒷받침되었습니다. 이런 노력과 실천이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생명의 빵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