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연중 제18주일] 참지식을 얻은새 인간

수성구 2022. 7. 31. 01:07

[연중 제18주일] 참지식을 얻은새 인간

참지식을 얻은 새 인간

코헬 1,2-2,23; 콜로 3,1-11; 루카 12,13-21

연중 제18주일; 2022.7.31.; 이기우 신부

 

1. 총 34주간인 연중시기는 오늘로써 후반부에 접어듭니다. 오늘 말씀의 주제는 참지식을 얻은 새 인간입니다. 모든 거짓 지식은 탐욕에서 비롯되고 이것이 헛되다는 것을 깨달음으로써 참지식을 얻을 수 있고 그래야 새 인간이 될 수 있습니다. 

 

2. 오늘 미사에서 코헬렛 1,2장의 말씀과 루카복음 12장의 말씀은 욕망이, 특히 그중에서도 재물에 대한 탐욕이 인간이 참지식을 얻지 못하게 가로막음은 물론 영원한 생명이라는 인생의 목표까지도 망칠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그러한 탐욕은 인생을 허무로 돌리는 거짓 지식을 참지식으로 착각하게 만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말씀에 이어서 오늘 미사의 제2독서인 콜로새 편지는 세례를 받아 부활의 은총을 입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천상의 가치를 추구하도록 권고합니다. 세속에서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나는 세례의 진정한 의미를 실제로 살아가라는 촉구입니다. 탐욕을 부추기는 세속의 유혹을 끊어버리겠다는 결심과 하느님 안에서 새로 태어났다는 자각이 없이는 참지식도 얻을 수 없고 따라서 새 인간도 시작할 수 없습니다. 

 

3. 탐욕을 부추기는 세속의 유혹은 매우 끈질기며 그 뿌리가 깊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서 원죄를 저지른 이후, 인류 역사상 카인이 아벨을 죽인 죄로부터 시작하여 무수한 죄들이 저질러졌지만 이 죄악의 원인은 거의 대부분 탐욕으로부터 비롯되었고, 특히 권세든 재물이든 지식이든 무언가 힘이 될 만한 것들을 가진 자들이 그 힘으로 탐욕을 채우려는 죄악이 숱하게 저질러지는 바람에 하느님을 등졌다는 데 있습니다. 

 

4. 탐욕을 경계하라는 오늘 복음의 본문은 루카 복음 제12장에 들어 있고 여기서는 메시아 백성이 나아갈 길을 알려주는 메시지들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바리사이들의 누룩을 조심하라’(루카 12,1)든지, ‘두려워하지 말고 복음을 선포하라’(루카 12,2-12)는 경고가 그러하고, ‘탐욕을 조심하라’(루카 12,13-15)는 취지에서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루카 12,16-21) 이야기라든지, ‘세상 걱정과 하느님 나라’(루카 12,22-32) 이야기라든지, ‘보물을 하늘에 쌓아라’(루카 12,33-34) 하는 이야기 등이 그러하며, ‘깨어있으라’(루카 12,35-40) 하는 취지에서 ‘충실한 종과 불충실한 종’(루카 12,41-48)의 비유 이야기라든가, ‘불을 지르러 왔다’(루카 12,49-50)든가,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루카 12,51-53)든가, 결정적으로 ‘시대의 징표를 알아보라’(루카 12,54-56)는 가르침이 또한 그러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루카복음 제12장은 복음을 선포하면서 지켜야 할 수칙(守則)이며, 가장 결정적인 사항은 결론에 나오는 ‘시대의 징표’에 관한 수칙입니다.

 

5. “탐욕을 경계하고 보물을 하늘에 쌓아라”(루카 12,13-34)는 메시지는 가난한 이들과 가진 것을 나누라는 수칙으로 이어집니다. 탐욕에 물든 마음으로는 가난한 이들과 나눌 수가 없거니와 탐욕으로 재산을 낭비하면 가난한 이들과 나눌 몫도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루카 12,13-21), ‘먼저 하느님의 나라를 찾으라’(루카 12,16-21), ‘보물을 하늘에 쌓으라’는 권유(루카 12,33-34) 등 가난한 이들과의 나눔을 권장하는 가르침이 연이어서 나오고 있습니다. 

 

6.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으려고 모인 군중 가운데에서 어떤 사람이 “제 형더러 저에게 유산을 나누어 주라고 일러 달라”(루카 12,13)고 청했다고 나오는데, 자신들의 일상적인 고민거리나 분쟁거리를 상담할 만큼 예수님과 군중 사이가 가까워진 듯합니다. 이에 그분은 구체적인 상담에 응하기보다는 재물에 대한 근본적인 가르침을 알리는 기회로 삼으셨습니다. 군중의 존경을 받는 바리사이들 가운데에서도 재물을 탐하는 사람들은 아주 많았고 따라서 군중 역시 이런 분위기에 휘둘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재물을 풍요롭게 가진다고 해서 구원될 수 없고, 탐욕은 필연적으로 우상숭배로 이끌어갑니다. 구원의 기준은 오히려 재물을 가난한 이들과 나누는 덕행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군중 앞에서 ‘어리석은 부자의 이야기’를 들어 탐욕을 경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7.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는 먹을 것과 입을 것 때문에 걱정하지 말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런 걱정이 배교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비단 탐욕에서 벗어나야 할 뿐 아니라 더 나아가서는, 하느님께서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나 들판에 피어나는 꽃을 어떻게 돌보아 주시는지를 잘 살펴보고, 그분께서 우리를 얼마나 큰 사랑으로 보살펴 주시는지 깨달아 위안을 얻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구해야 할 것은 지상의 재물이 아니라 하늘의 보화입니다. 하늘에 보화를 마련하는 길은 가난한 이들에게 가진 재물을 나누어 자선을 베푸는 일입니다. 사람의 참된 재산은 가지고 있는 만큼이 아니라 쓴 만큼이라는 말도 그래서 나왔습니다. 

 

8. 재물의 문제와 가난한 이들의 문제는 하느님 나라의 복음 선포와 인간 구원에 있어서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지 아니면 자신의 뜻을 관철하려 하는지를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가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보시기에 세상은 탐욕으로 가득차서 사랑이 메말랐으며 서로 갈라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메시아적 백성을 모으시려는 예수님께서 그 사도가 되어야 할 제자들에게 주시는 마지막 수칙은, 시대의 징표에 대해 깨어 있으라는 말씀이 된 것입니다. 시대의 징표는 그 시대에 성령께서 주시는 표지이고 또한 메시아적 백성이 알아들어야 할 메시지로서, 사랑이 메마르고 탐욕으로 갈라진 시대상은 그 자체가 나눔을 요청하는 시대의 징표가 됩니다. 

 

9. 시대의 징표에 따라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모범은 세상의 죄악에 물든 자신의 죄를 씻는 물의 세례만이 아니었고, 세상의 죄를 없애기 위해 십자가와 부활로 악에 맞서는 하느님의 지혜를 보여주신 불의 세례가 더 있었습니다. 이 불의 세례는 또한 성령의 세례로서, 세례성사와 견진성사 때에 신자들에게 주어지는 성령의 일곱 가지 은사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이 일곱 은사로 시대의 징표를 식별하여 그에 걸맞게 응답하는 처신이 어떠했는지에 따라 최후의 심판에서 받을 상이나 벌이 결정됩니다. 부활하시어 승천하신 예수님의 관심사는 사도들과 이들을 통해 소집된 메시아적 백성이 하느님 나라를 이 세상에 펴도록 하시는 것이니 그분이 시대의 징표에 대한 반응과 응답 그리고 처신을 대상으로 삼아 심판하시겠다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 심판의 결과는 최후의 순간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를 앞당기는 상급으로나 뒤로 물리는 문책으로도 나타납니다. 

 

10.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직에 오른 직후인 2013년에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에게 보낸 사도적 권고 「복음의 기쁨」에서 시대의 징표를 식별해야 할 교회의 사명을 상기시키며 다음과 같이 이 시대의 징표를 식별한 바 있습니다.  

 

  “저는 모든 교회 공동체가 ‘무엇보다도 시대의 징표를 꼼꼼하게 탐구하기를’ 권고합니다. 시대의 징표를 탐구한다는 것은 시대정신을 식별하고 확인하는 것만이 아니라, 선한 정신의 움직임들을 선택하고 악한 정신의 움직임들을 거부하는 것도 포함합니다. ‘살인해서는 안 된다’는 제5계명은 인간 생명의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지켜야 할 분명한 ‘한계’를 밝힙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는 배제와 불평등의 경제에 대해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분명하게 말해야 합니다. 그 같은 경제는 사람을 죽이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배제와 불평등의 경제, 비극에 대한 무관심의 세계화, 탈인간화의 길을 가져온 원인 가운데 하나는 ‘우리가 돈과 맺은 관계’에서 발견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돈이 우리 자신과 사회들을 지배하는 것을 그냥 조용하게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권력과 소유에의 갈망은 끝이 없습니다. 

 

  시장의 이익만을 신성시하는 이 같은 태도의 배후에는 ‘윤리 배척’과 ‘하느님 거부’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자기의 부를 이웃과 나누지 않는 것은 그들의 것을 훔치는 것이며, 그들의 생계를 빼앗는 것’이며, ‘우리가 갖고 있는 부는 나만의 것이 아니라 그들의 것’이기도 합니다. 부자는 반드시 가난한 사람을 돕고, 존중하며, 발전시켜야 합니다. 이 같은 발전이 이룩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오늘날 흔히 가난한 사람들이 폭력의 혐의를 뒤집어씁니다. 그러나 평등한 기회가 없다면 여러 형태의 공격과 갈등은 언제나 증폭되기 쉬운 토양을 찾을 것이며 마침내는 폭발할 것입니다.” 

 

11. 시대의 징표에 깨어있으라는 이 같은 호소는 새 인간이 되기 위한 참지식을 얻으라고 호소하는 사도 바오로의 메아리입니다. 오늘 제2독서인 콜로새 편지에는 사도 바오로가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에 경험한 옛 지식의 세계에 대한 경험이 잔뜩 묻어있습니다. 그는 하느님과 등을 진 자들이 보이는 행태 즉, 불륜, 더러움, 욕정, 나쁜 욕망, 탐욕 등이 우상 숭배적 악습에 지나지 않음을 통절하게 깨달았습니다. 또한 그는 예수님을 만난 후 오랜 기간 동안의 숙고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우리를 참지식에 이르게 하여 새 인간으로 창조하시는 하느님이심을 철저하게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분의 이름으로 받는 세례야말로 세속에서 죽는 것과 다름이 없고, 그분 안에서 새로 태어나는 것임을 의미한다고 깨달았던 것입니다. 자신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깊은 사색을 통하여 사도 바오로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구원에 유용한 참지식을 전하고자 했고, 새 인간이 되는 은총스러운 길에 초대받은 존재임을 알리고자 했습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는 세례로 참지식을 얻어 새 인간이 되도록 초대받은 사람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