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한(恨)과 정(情)과 흥(興), 역사의 원동력

수성구 2022. 7. 30. 03:11

한(恨)과 정(情)과 흥(興), 역사의 원동력

 

예레 26,11-24; 마태 14,1-12 / 연중 제17주간 토요일; 2022.7.30.; 이기우 신부

 

  우리 민족의 정서를 대변하는 것은 한(恨)과 정(情)과 흥(興)이라고 말합니다. 엘리트들이 저질러온 사회적 불의 탓에 민중의 한이 생겨났다면, 사회적 불의로 인해 생겨난 국난에서 힘을 모아 풀어내는 과정에서 민중의 정이 생겨났고, 이렇게 해서 이루어진 대동세상(大同世上)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민중의 흥이 우러나온다는 민속학적 통찰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왕과 사제들과 예언자들은 권력을 비판하는 예언자들이 전해주는 하느님의 말씀을 버거워한 나머지 그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습니다. 해방과 자유의 법으로 주어진 하느님의 율법과 성경을 방어무기로 삼아서 어처구니없게도 의인들을 희생시킨 결과 이스라엘은 우상숭배 풍조가 굳어졌고 끝내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구약 시대 마지막 예언자로 활약한 세례자 요한의 운명도 예레미야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헤로데 영주가 하느님의 법을 어기자 직설적으로 간언한 요한을 교묘한 방법으로 참수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 요한이 되살아난 듯한 예수가 민중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는 소문이 들려오자 예수까지도 없애버리려 하였습니다. 

 

  한민족에게 복음이 전해지던 조선시대에도 애꿎게 죽임을 당한 선비들이 많았습니다. 이들을 일컬어 ‘사문난적’(斯文亂賊)이라 불렀습니다. 본래는 유학을 쪼개는 일이 ‘사문’(斯文)이고 공자와 맹자의 노선에 어긋나게 해석하는 유학자를 ‘난적’(亂賊)이라 부르면서, 유학에 담긴 천명(天命), 즉 진리성을 옹호하던 소수의 논리였습니다. 그런데 유학의 일파인 성리학을 통치 이데올로기로 삼은 조선왕조가 주자가 내린 해석을 따르지 않는 선비들을 ‘사문난적’으로 몰아서 귀양을 보내거나 죽임으로써 성리학적 유학은 정통성을 등에 업은 유교로 등극하였습니다. 그 당시에 ‘사문난적’이란 딱지는 ‘빨갱이’라는 요즘의 딱지처럼 괴력을 발휘하는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였습니다. 

 

  명분상 학문적 해석을 문제삼았을 뿐 사문난적 논쟁은 정적을 합법적으로 제거하기 위한 사상통제도구였고, 이 논쟁의 와중에서 무오사화(戊午士禍, 1498), 갑자사화(甲子士禍, 1504), 기묘사화(己卯士禍, 1519), 을사사화(乙巳士禍, 1545)가 일어났습니다. 조선 중기에 불과 50년 동안 네 차례나 일어난 이 사화에서 권력을 날선 논리로 비판하던 많은 선비들이 억울하게 희생되었습니다. 이 결과, 더 이상 사화를 당하지 않으려고 선비들은 학문적 노선이나 지연을 따라 당파를 구성하여 방어하게 되었고, 이것이 고질적인 4색 당파의 당쟁으로 이어졌으니, 여기서부터 진리라든가 민족의 정체성과 나라의 공동선보다 자신이 속한 당파와 문중의 입장을 우선시하면서도 겉으로는 이를 학문적인 대의명분(大義名分)으로 포장하는 망국적인 풍조가 조선 중기 이후 기득권층 안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조선 후기에 이 민족에게 전해진 그리스도 신앙의 진리 역시 이 사화와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문난적의 희생이 될 각오로 천주교 교리를 전파한 이벽의 용기로 시작되었습니다. 그 이후 천주교에 입교한 신자들은 나라에서 금한 교를 믿는다는 단 하나의 이유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무려 백 년에 이르는 박해 기간동안 희생된 이 의인들은 기록상으로 2천이요, 구전상으로는 2만으로서, 조선 왕조 5백 년 역사상 최대의 학살 사태입니다. 

 

  하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의인들의 희생은 민중의 한으로 남습니다. 한민족의 역사 안에서도 지배층이 민족 정체성을 상실하기 시작한 고구려 시대 이후 민간으로 추방된 무교가 무속화되어 각종 해원굿, 진혼굿 등으로 원한을 풀어주는 종교적 기능을 수행해 온 것도 이와 관련이 있습니다. 해방 직후 47년 4월 제주에서부터 80년 5월 광주까지 남한 각지에서 억울하게 희생된 양민들의 넋을 기리는 해원 행사는 민중 안에서 미신 논란을 뛰어넘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의 혼탁한 흐름을 하느님의 눈으로 보자면, 민중의 한은 기득권 엘리트들이 저지르는 사회적 불의로 말미암은 의인들의 억울한 희생을 대변합니다. 그런데 이 민중의 한은 해원의 종교의식만으로는 불가항력입니다. 실제로 원한이 생겨난 근본 원인인 사회적 불의를 제거하고자 공동선이 정의롭게 실천되어야만 제대로 풀릴 수 있습니다. 여기서 사람들 사이의 정(情)이 제 진가를 발휘합니다. 기득권 엘리트들의 무능함과 비겁함으로 초래된 여러 차례의 국난이 전부 민중의 자발적인 의지로 극복되었던 한민족 특유의 역사가 있었고, 이 공동체적 과정에서 정이 발휘되면 이 한과 정은 대동세상을 이룩한 승리의 흥(興)으로 판이 바뀝니다. 

 

  전국 사목회의의 여러 의안에서 지적하듯이, 이렇듯 한과 정과 흥의 조화가 세속적 이기주의로 흐를 수 있는 샤먀니즘을 성사화할 수 있는 신앙 토착화의 길입니다. 이것이 모두가 부활 신앙으로 하나되어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나아갈 수 있는 역사의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의로운 이들이 억울하게 당하는 희생이 하느님 나라의 발판이자, 비옥한 토양이 되리라고 선언하신 진복팔단의 뜻이 여기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