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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신심] 전구자이시며 보호자이신 성모 마리아

수성구 2022. 7. 2. 02:48

[성모신심] 전구자이시며 보호자이신 성모 마리아

 

전구자이시며 보호자이신 성모 마리아

미카 5,1-4; 요한 2,1-11 / 7월 성모신심미사; 2022.7.2.; 이기우 신부

 

  사도 요한은 예수님께서 뽑으신 열두 제자 가운데에서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제자로 자처하였습니다만, 공생활 중에 특별히 요한만을 따로 사랑하셨다고 볼 만한 대목이 없습니다. 공생활의 주요 상황마다 예수님께서 따로 부르신 세 제자 즉, 베드로와 야고보에 막내로 끼어서 함께 수행한 장면들이 나오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십자가에 못 박혀 숨지시기 직전에 당신 어머니를 맡기신 일만큼은 요한이 사랑받은 제자임을 여실히 증명한 대목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예루살렘이 멸망하기 전까지는 예루살렘에서, 그 이후에는 에페소로 성모 마리아를 모시고 가서 성모 마리아께서 천수를 누리실 때까지 모셨습니다. 간헐적으로 일어나던 로마제국의 박해가 닥치면 연로하신 성모 마리아를 모시고 피신하셔야 헀을 터이므로 치명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는 동안에 다른 사도들은 들을 수 없었던 내밀한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을 것이고, 그래서 그는 이때 성모 마리아께로부터 들은 이야기들을 토대로 해서 복음서를 쓰면서 공관복음서에는 없는 고유한 자료를 써서 넣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자료에는 요한 사도뿐만 아니라 초대교회가 예수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를 어떻게 공경했는지, 또 어떠한 관계를 맺었는지에 대한 귀중하고 고유한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그 첫 번째 자료가 오늘 복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첫 기적에 대해서, 마르코는 중풍 병자를 고쳐주신 이야기로 소개하고 있고(마르 2,1-12), 마태오는 나병 환자를 고쳐주신 이야기로 소개하고 있으며(마태 8,1-4), 루카는 마귀를 쫓아내신 이야기로 소개하고 있는 반면에(루카 4,31-37), 요한만이 카나에서 벌어진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기적이야기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릇 기적이란 예수님께서 당신의 신적 권능을 발휘하셔야 가능한 일인데, 그분은 아직 당신의 때가 오지 않았다고 극구 사양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이 권능을 진작부터 짐작하고 계시던 성모 마리아께서 강권하다시피 이끌어내셔서 가능했던 일이 이 첫 기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첫 기적에서 나타난 성모 마리아의 역할로부터 사도 요한은 그분이 믿는 이들 모두에게 전구자(轉求者)가 되시는 근거를 보도한 것입니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혼주의 난감한 사정을 미리 눈치채시고 예수님을 움직여 기적을 일으켜서 혼인 잔치를 무난하게 마칠 수 있도록 해 주신 사정에서도 나타나듯이, 믿는 이들의 어려움을 아시고 예수님께 청을 대신 드려주실 수 있는 전구자가 되십니다. 

 

  초대교회에서 성모 신심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두 번째 자료는 요한묵시록입니다. 사도 요한이 요한복음서를 쓰기 전에 파트모스 섬에 유배당하던 시절에 에페소를 비롯한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 신자들에게 격려의 편지를 쓴 적이 있습니다. 묵시언어로 쓴 이 편지에서 사도 요한은 전구자로서의 역할에 더하여 미카엘 대천사까지 불러서 박해받던 신자들과 함께 싸워주시던 보호자로서 한 ‘여인’을 소개하였습니다. 

 

  묵시록 12장에서 요한은 ‘여인과 용의 싸움’을 전하면서, 마리아의 개인 생애와 초대교회 공동체의 실존과 역사 그리고 운명까지를 겹치게 묘사하는 중의적 표현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첫째, 태양을 입은 채로 발 밑에 달을 밟고 머리에는 열두 개 별로 된 관을 쓴 여인으로 묘사하면서 하늘의 큰 표징으로 소개한 대목입니다(묵시 12,1). 태양 빛의 후광을 받으며 달을 밟은 자세는 성모 마리아께서 천상의 존재임을 알리려는 것이고, 열두 별로 된 관을 쓴 머리는 열두 지파로 구성된 이스라엘의 유다인들, 특히 아나빔들로 이루어진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을 대표한다는 이미지를 알려줍니다. 초대교회가 예루살렘에서 에페소로 이동한 후에도 주류는 여전히 본토 출신이든 해외 디아스포라 출신이든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이 로마제국의 박해를 받을지언정 성모 마리아께서 받으신 천상의 영광이 이들에게도 기다리고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입니다.

 

  둘째, 그 여인이 낳은 아기는 ‘쇠지팡이로 모든 민족들을 다스릴 분’인데 그 아기가 장성해서 다스릴 이야기는 생략된 채 “그 여인의 아기가 하느님께로 들어 올려졌다”(묵시 12,5)고 소개하는 이유도, 이 대목이 메시아이신 그 아기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어머니를 통해서 메시아 백성인 초대교회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신자들의 운명도 신앙에 충실하기만 하면 하느님께로 들어 올려지리라는 승천의 조건과 영광을 암시합니다.

 

  셋째, 여인과 용이 대결하는 무대가 지상이 아니라 하늘입니다. 용으로 묘사된 사탄은 여인을 돕는 하느님의 천사 미카엘에게 패배하여 도망칩니다. 창세기에서 하와가 사탄의 유혹에 넘어간 사실을 연상시키는 이 대목을 통해서 ‘여인’은 초대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을 대표하고 또 상징합니다. 초대교회가 겪었던 박해와 저항의 역사를 여인의 투쟁과 승리의 역사로 묘사하면서, 이 무대가 천상이라는 뜻 또한 성모 마리아를 통해서 초대교회를 동일시하는 이러한 관점이 요한 자신의 인간적인 관점이 아니라 하느님의 눈으로 본 것임을 역설하는 대목입니다. 이러한 세 가지 의미와 이미지가 오늘날 성모신심단체인 레지오 마리애의 기도문과 상본에 잘 반영되어 있습니다. 

 

  이렇듯 요한이 보도한 성모 마리아의 기사 두 꼭지를 통해서, 교회는 예로부터 성모 마리아를 전구자요 보호자로 삼아 왔습니다. 역대 교황들이 신자들에게 보내는 모든 메시지에서 결론 부분에서는 항상 이 두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교황 자신들도 성모 마리아의 전구와 보호에 의탁하고 교회를 맡겨온 전통도 이에 근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