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하느님의 힘, 우리의 힘

수성구 2022. 6. 14. 06:14

하느님의 힘, 우리의 힘

1열왕 21,17-29; 마태 5,43-48 /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2022.6.14.; 이기우 신부

 

  오늘 독서에 보면, 나봇을 죽인 아합 임금에 대해서 하느님께서는 엘리야 예언자를 시켜 왕실 가문이 멸망하리라는 재앙을 예고하셨습니다. 아합을 충동질하여 직접 나봇을 죽게 한 이세벨도, ‘개들이 이즈르엘 들판에서 시체를 뜯어 먹을’ 비참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는 벌을 받았습니다. 이 경우에, 하느님께서는 다시는 그런 악이 하느님의 백성을 잘못 이끌고 함께 파멸에 이르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악에 대한 방어적인 차원에서 당신의 힘을 발휘하여 아합 가문과 이세벨을 할 수 있는 한 가장 강한 방식으로 응징하셨습니다. 

 

  그런가 하면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선을 실현해야 하는 적극적인 차원에서 하느님의 힘이 어떻게 나타나야 하는지를 알려줍니다. 그래서 고르고 한결같은 하느님의 사랑에 대해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고, 비유를 들어 모든 사람에게 고르게 나타나는 하느님 사랑에 대하여 깨우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또한 언제나 한결같이 사랑을 베푸시는 하느님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우리도 완전한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완전한 사람의 모범으로서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사례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신체적으로 질병이나 장애로 고통받고 있는 가난한 이들에게 치유의 기적을 베풀어 도와주신 일이나, 정신적으로 고통받고 있거나 마귀들린 가난한 이들에게 구마의 기적을 베풀어 도와주신 일들이 다 그분이 행하신 이웃 사랑이었습니다. 또한 이웃 사랑의 극한으로서 몸소 원수까지도 사랑하신 사례도 몇 가지 들 수 있습니다. 

 

  유다인들을 식민통치하던 로마인들은 공공의 원수였는데, 한번은 그 로마인 백인대장이 죽을 병에 걸린 자기 하인을 살려달라고 청해왔을 때 두 말 없이 예수님께서는 멀리서 말씀 한 마디로 그의 청을 들어주셨습니다. 또 헤로데 왕실 관리도 죽어가는 자기 아들을 도와달라고 청해온 적이 있었는데, 헤로데 왕실은 헤로데 대왕 때부터 폭압정치로 악명높은 유다인들의 원수였지만, 이 때에도 예수님께서는 두 말 없이 말씀 한 마디로 살려주셨습니다. 이때에도 원격으로 이루어진 치유 기적이었습니다. 눈과 눈을 마주치거나, 손을 대시는 등 대면적인 치유보다도 훨씬 더 큰 권능을 발휘하셔야 가능한 기적을 예수님께서는 원수 같은 이들에게 사랑으로 베푸셨습니다. 

 

  사두가이나 바리사이 같은 부류도 미움 받아 마땅한 원수들이었는데 이들은 커다란 세력을 이루고 있었으므로, 이 원수들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더 강도 높은 처방을 내리셨습니다. 계급적인 사두가이들에 대해서는 해마다 성전 정화 사건으로 대응하셨습니다. 무너져야 할 성전처럼, 속죄대행업으로 먹고 사는 사이비 사제들은 더 이상 하느님의 이름을 더럽히지 말고 사라져야 한다는 메시지가 그 사건들에 담겨 있었습니다. 지능적인 바리사이들에 대해서는 그들이 허접한 논리로 시비를 걸어올 때마다 일일이 맞대응하셨습니다. 안식일 논쟁, 계명 논쟁 그리고 이웃 논쟁이 그들로 말미암아 벌어졌는데, 이를 통해 예수님께서는 그 악인들의 위선을 폭로함으로써 믿는 이들이 물들지 않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악인들에게 내리신 강도 높은 처방이었으며, 이로 인해 초래될 십자가 희생을 각오하신 원수 사랑의 실체였습니다.

 

  이 독서와 복음의 말씀 그리고 이웃과 원수 사랑에 대한 예수님의 실제 처신을 통하여 우리는 힘에 관한 네 가지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 첫째는 독서에서 확인하신 대로, 하느님께서는 우상숭배에서 나오는 사회적 불의를 용납하지 않으시고. 이를 응징하기 위하여 당신의 힘을 엄정하게 행사하신다는 것입니다. 악과 선의 이 대결은 악이 없어지는. 순간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 둘째는 그 힘은 모든 사람에게 고르게 나타나고 모든 때에 한결같이 나타나는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마치 만유인력이나 중력처럼 작동하는 이 힘이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룩합니다. 

 

- 셋째는 이 힘을 행사하는 데 있어서는 하느님과 그 백성의 역할이 분명하게 구분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길을 어긴 자들에 대한 복수와 응징은 하느님의 역할이고 이를 따르고 그 완전함을 본받는 일은 하느님. 백성의 역할입니다. 

 

- 그런데 사람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하느님의 완전함을 본받기가 어렵고, 그분의 도우심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생명도 평화도 다 하느님의 선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성체성사로. 삽니다.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눈길은 언제나 성체성사 안에 현존하시는 주님을 향하며, 우리와 세상 안에서 끊임없이 거룩한 변화로 파스카를 이끄시는 주님의 힘을 발견합니다. 이것이 넷째입니다.

 

  아합과 이제벨을 응징하신 하느님께서 이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통하여 악과 악인을 응징하십니다. 우리가 직접 응징하려다가 악에 물들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로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밖에는 악인에 대한 원수 사랑의 또 다른 처방이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더 주력해야 할 일은 모든 이들을 고르게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도구가 되어서 우리에게 주어진 작은 힘이나마 생명과 평화 그리고 사랑을 위해서 쓰는 일입니다. 특히 악에 의해 상처받은 이들을 일으켜 세우고 그들을 우리 대열에 합류시키면 더 바람직합니다. 선의 세력을 모으는 데에 우리의 지혜와 인내를 발휘해야 합니다. 이것이 부활의 은총으로 우리가 믿고 바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