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스테파노의 얼굴이 천사처럼 보였다

수성구 2022. 5. 2. 06:01

스테파노의 얼굴이 천사처럼 보였다

사도 6,8-15; 요한 6,22-29 / 2022.5.2.; 성 아타나시오; 이기우 신부

 

  초대교회 시절에 부제로 선출되었지만, 공생활 시절에 나타난 예수님의 진실을 누구 못지않게 잘 알고 있던 스테파노는 부제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사도들보다 앞서 나갔습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이 예수 부활의 복음을 선포하는 광폭 행보를 하다가 대사제의 경고를 받은 이후 가급적이면 유다교 당국과의 마찰을 피하려고 노력하는 보신(保身) 행보를 보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스테파노 부제 홀로 이방 디아스포라 출신 과부들을 비롯해서 초대교회의 신자들 중 가난한 이들이 당할 수도 있었던 불공정한 대접을 공정하게 만들어 놓았음은 물론, 성전 이데올로기를 내세워 백성 위에 군림하고 있었던 사두가이들과의 일전(一戰)도 불사하려는 선명한 노선을 견지하고 있었습니다. 그 반면에 베드로와 그 동료 사도들은 유다교의 기도 시간에 맞추어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 기도하는 등(사도 3,1) 마치 유다교의 신흥교파처럼 처신하고 있었습니다. 성전은 건물이 아니라 부활한 그리스도의 몸이라던 예수님의 가르침 정도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는 듯한 처신이었습니다. 

 

  결국 스테파노는 유다교 당국자들에게 미운 털이 박히고 괘씸죄에 걸려서 돌에 맞아 죽는 형벌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사형 집행을 당하던 스테파노의 얼굴이 천사처럼 빛났다(사도 6,15)고 사도행전은 전합니다. 스테파노 본인의 확신은 전혀 위축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하느님께서도 특별한 보호를 하고 있었음을 전한 루카의 기록입니다. 은총과 능력이 충만한 스테파노의 언행은 이미 큰 이적과 표징들을 일으켰던 바 있었기에(사도 6,8) 초대교회 안에서 베드로의 노선에 비해서는 스테파노의 노선이 더 옳았음을 후대의 사가로서 루카가 확인해 주고 있는 흔적입니다. 

 

  이 스테파노의 노선은 이후 사울에 의해서 계승되게 됩니다. 사울은 스테파노의 죽음에도 찬동할 정도로 열성적인 바리사이였으나, 예수님께서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벼락을 쳐서 그 발길을 돌려세우심으로써 박해자의 길에서 선교사의 길로 인생을 전환하였습니다. 개별적으로만 보면 스테파노의 죽음은 허망하게도 아무런 성과도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스테파노를 이끄신 성령의 손길은 바오로를 거쳐 수도 없이 많은 이들에게 감화를 미쳤으므로 신생 초대교회를 거대한 이방인 출신 신자 집단으로 성장하게 만들었고, 베드로의 노선이 그토록 집착했던 유다인 출신 신자들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소수 집단으로 줄어들었고 로마의 침공으로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모든 유다인들이 추방되자 교회 안에서 주류의 지위마저 내놓아야 했습니다. 

 

  이후 고대교회 시절까지 스테파노가 이끌었던 카리스마적 노선은 수도 없이 많은 제2의 스테파노와 제2의 바오로들을 출현시켜서 그리스도교를 이끌었습니다. 고대교회 4,5백 년 간의 숱한 이단 논쟁은 그 소산입니다. 예수님을 오해하여 생겨난 이단들, 특히 입양설 이단은 성자의 신성을 인정하되 성부의 신성보다 하위에 두려던 노선이었습니다. 십자가 수난으로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들로 입양되셨다는 주장이었는데, 이 이단 노선은 유다인 출신의 그리스도교 신자들로부터 한때 열광적인 지지를 받기도 했지만 곧 정통 신앙을 견지하려는 스테파노류(流)의 신앙인들에게 덜미를 잡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사도신경이고 그 안에 담겨진 열두 가지 신앙조문입니다. 그 핵심은 예수님께서 참 하느님이시고 참 인간이시며,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하느님으로서 일체이시라는 고백이지요. 성 아타나시오 역시 정통 신앙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이단에 맞서 공로를 세운 인물입니다.

 

  스테파노가 유다인들이 던진 돌에 맞아 죽을 때, 대사제와 최고 의회 의원들은 그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처럼 빛났던 것을 유심히 바라보았습니다. 이로써 그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소행이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 오히려 스테파노의 처신이 하느님의 뜻에 합당했음을 눈치챘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타볼산에서 세 제자 앞에서 모세와 엘리야를 소환하여 이야기를 나누실 때, 빛나는 얼굴로 변화하신 모습을 보여주신 바도 있었습니다(마르 9,2). 

 

  시대를 초월한 통공과 지역을 넘어선 연대로 이루어지는 애덕 실천 활동에서 정통 신앙을 증거하고 있는 수많은 스테파노들의 얼굴은 여전히 천사의 얼굴처럼 빛나고 있습니다. 이 정통 신앙 노선의 은총은 공동체적으로나 역사적으로도 충분히 뒷받침되고 있습니다. 즉, 정통 신앙의 진리에 대해서는 세상의 죄악이 절대로 건드리지 못해서 그 진리성이 상하지 않고, 정통 신앙의 진실을 믿는 깨우침에 있어서 빛나며, 지역을 초월하여 사랑을 실천하는 연대에 있어서 빠르고, 시대를 초월하여 통공함으로써 시공의 간격을 사무치는 사기지은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이 땅에 복음이 들어와 자생적으로 세워진 교회의 창립 과정과 자발적인 성사 활동, 박해 중에 전국에 세워진 교우촌의 기적, 교우촌 신자들의 순교와 그 후손들의 순교정신 계승 활동 등도, 마치 정통 신앙 노선을 견지하다가 희생되었으나 그 얼굴이 천사처럼 빛났던 스테파노처럼 한민족의 역사 안에서 빛나고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정통 신앙의 카리스마적 노선에 대해 자부심을 지니시고 계승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