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인격적 체험, 믿음의 열쇠

수성구 2022. 4. 23. 05:26

인격적 체험, 믿음의 열쇠

사도 4,13; 마르 16,9-15 / 2022.4.23.; 부활 팔일 축제 토요일; 이기우 신부

 

  일곱 마귀에 들려 고생하던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을 만나서 마귀도 쫓아냈을 뿐만 아니라 제대로 된 인격적 체험을 했습니다. 과거의 어두운 기억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밝은 세상에로 해방되는 체험을 가능하게 해 준 것이 바로 예수님과의 인격적 관계 체험이었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었고 시중도 들어 드렸으며 십자가 죽음의 순간까지 지켜드렸습니다. 그 결과로, 가장 먼저 발현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십자가에 가장 가까이 있었던 마리아가 부활도 가장 먼저 체험한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십자가와의 거리가 부활과의 거리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 부활 소식을 마리아로부터 전해 받은 제자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길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는 동료들의 말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이 불신과 완고함은 결국 다시 한 번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그들에게도 인격적 체험을 하게 해 주시자 그들도 별 수 없이 부활을 믿게 되고 사도로 거듭 났습니다. 그리하여 사도가 된 제자들은 더 이상 유다교의 박해를 겁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여러분의 말을 듣는 것이 하느님 앞에 옳은 일인지 여러분 스스로 판단하십시오.”(사도 4,19) 라고 말하면서 예수님보다 더 당당하게 나왔습니다. 이러한 자신감과 자존감은 그들이 제자 시절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겪은 것과 같은 인격적 체험을 했던 덕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체험이 사랑의 체험이요 진리의 체험입니다. 절실하고 절박하며 용기를 내게 만들어 준 정신적 에너지요 신앙의 기운입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새롭게 하시는 방식은 먼저, 그리스도인들을 새롭게 변화시키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새롭게 변화되는 방법은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사 생활입니다. 미사 봉헌은 말씀으로도, 성체성사로도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는 귀한 자리입니다.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마귀들이 있다면 이 성사로 쫓아낼 수 있습니다.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불신이 있다면 이 성사로 몰아낼 수 있습니다. 우리를 가두어 놓고 있는 완고함도 사라지게 할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었던 마리아 막달레나와 믿지 않고 불신과 완고함에 사로잡혀 있었던 제자들과의 차이를 극복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거듭 날 수 있는 길이 바로 성사 생활에 있습니다. 

 

  교회는 성령의 이끄심에 힘입어 이 불신과 완고함에서 벗어날 수 있는 종교적 장치를 마련했으니, 그것이 성사입니다. 성사의 연원은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에서 제정하신 성찬례이고, 교회는 이를 성체성사로 부릅니다. 그리고 이를 준비할 수 있는 세례 및 견진 성사와 고해 성사를 제정했고, 이를 사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병자 성사를 마련했으며, 이를 주관할 수 있는 사제를 선발하는 성품성사와 함께 가정을 이루는 신자들을 위한 혼인 성사를 마련하였습니다. 그래서 성사는 성자 그리스도의 제정에 뿌리를 두고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사목적 필요에 부응할 수 있도록 교회가 제정한 것이고, 부활하신 주님과 인격적으로 만나게 해 주는 영적인 장치입니다.  

 

 무릇 모든 성사는 그리스도의 신비를 기념하여 이를 그리스도인들의 삶에서 실천하도록 하는 데 그 취지가 있습니다. 성사야말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을 새롭게 창조하시는 영적인 도구입니다. 교회가 제정한 종교적 제도이지만 그 본질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발현을 일상화시키며 그로 인한 현존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영적인 기운을 얻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서, 영적인 도구의 지위를 얻습니다. 시공을 초월해서 성령의 사기지은을 발휘하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도 여전히 하느님 나라와 영원한 생명의 복음을 선포하시러 동분서주하십니다. 손상되지 않고, 빠르며, 빛나고, 예민한 성령의 에너지를 분출하고 계십니다. 이를 끓는 물에 비유하자면, 99도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상온에서 물은 나머지 1도를 더 가열해서 100도가 되어야만 비로소 끓게 됩니다. 이 1도에 해당되는 것이 우리의 깨달음과 노력입니다. 은총은 언제나 기다리고 있는 상수(常數)이며, 변수(變數)는 오직 우리의 몫에 달려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현실에서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고 풀기 위해서 집중해야 하는 것은 상수인 그리스도의 은총을 깨닫는 일과 변수인 우리의 노력에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본질은 인식과 실천의 배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일 마리아 막달레나가 부활 소식을 가지고 제자들을 찾아갔을 때,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소식이 거짓이었거나 또는 제자들이 사도가 될 의지가 전혀 없었더라면 그들의 믿음은 성립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믿었던 마리아 막달레나의 증언을 받아들여 믿음을 지니게 된 제자들은 사도로 거듭 났고, 그들의 사도직 활동으로 새 하늘과 새 땅이 펼쳐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교우 여러분, 성사 생활에서 그리스도와 만나는 인격적 체험을 소중히 가꾸시기 바랍니다. 절실하고 절박하며 인격적인 만남의 체험을 성사에서 하는 것, 지금 우리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보다 더 필요한 것이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