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박해시대의 성모신심에 대하여

수성구 2022. 4. 2. 06:10

박해시대의 성모신심에 대하여

 

2사무 7,1-16; 루카 1,39-47 / 2022.4.2.; 성모신심미사; 이기우 신부

 

  사순시기에 맞이하는 4월의 성모신심미사는 예수님의 수난에 동참하시던 성모 마리아의 고통에 대해 묵상하고자 합니다. 전통적으로는 성모칠고(聖母七苦), 즉 성모님께서 예수님과 함께 하신 일생 중에 겪으셔야 했던 일곱 가지 고통이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어머니로서나 그리스도인으로서 짊어지셔야 했던 십자가였습니다. 

 

  첫째는 노예언자 시메온이 아기 예수를 축복하면서도 훗날 어머니 마리아께서 예수님의 수난 때문에 함께 고통을 겪게 될 것을 예언한 일입니다(루카 2,34-35). 시메온은,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둘째는 포악한 헤로데 대왕이 아기를 죽이려 하자, 때마침 주님의 천사가 요셉의 꿈에 나타나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 내가 너에게 알려줄 때까지 거기에 있어라. 헤로데가 아기를 찾아 없애려고 한다.”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래서 헤로데의 눈을 피하여 온갖 고생을 하며 이집트로 피난가야 했던 일입니다(마태 2,13-15). 

 

  셋째는 예수님께서 열두 살 나던 소년 시절에 파스카 축제를 지내러 예루살렘 성전에 갔다가 아들을 잃어버리신 일입니다. 사흘 동안이나 성전을 샅샅이 뒤져서 겨우 찾아냈더니, 소년 예수님께서는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루카 2,49) 라는 당돌한 대답으로 요셉과 마리아 부부를 당황스럽게 하였습니다. 

 

  넷째는 예수님께서 장성하신 후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셨는데 어찌된 일인지 유다교 지배층의 미움을 받아 십자가형을 받으시고는 참혹하게 매를 맞으신 후에 다시 또 무거운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시던 길에서 기진맥진한 채로 모자가 서로 만나신 일입니다(요한 19,17). 

 

  다섯째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숨지시던 순간까지 십자가 아래에서 그 고통을 지켜보아야 했던 일입니다(요한 19,28-30). 그분을 따르던 제자들은 다 달아나버렸고, 오직 막내 제자 요한만 남아 있었습니다. 

 

 여섯째는 숨지신 예수님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려 끌어안으신 일입니다(마르 15,42-45). 

 

  일곱째는 예수님의 시신을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의 돌무덤을 빌려 안치한 일입니다(마르 15,43-46; 요한 19,38). 

 

  일곱 가지에 이르는 고통을 성모 마리아께서 겪으시며 아드님과 지향을 함께 하신 덕택에, 초대교회 시절부터 신자들은 성모님께 전구하는 기도의 전통을 수립해 왔습니다. 그리고 성모님께서는 어느 누구보다도 확실하고 강력한 전구자로서 신자들의 기도를 도와주셨습니다. 이 땅에 천주교가 전래되던 초창기부터 한국신자들도 4대 핵심교리와 함께 이 같은 성모칠고에 대한 이해와 묵상을 깊이 해 왔습니다. 교리서뿐만 아니라 기도서, 신심서적과 묵주나 상본, 성상 등의 신심수단을 통해서 성모신심을 키워오다가 박해를 만나 치명을 하게 되면 “예수, 마리아, 요셉!”을 부르며 기도하곤 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과 성모님의 수난을 본받는 일은 거의 한 가지로 같은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성모신심이 널리 퍼지던 차에 한국교회에 대목구가 설정되어 외국인 선교사들이 들어오면서 신자들의 성모신심은 더욱 활발해질 수 있었습니다. 조선교구 2대 교구장으로 임명된 앵베르 주교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를 주보성인으로 청하여 허락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 후 다블뤼 주교를 비롯한 선교사들의 지도와 모범 덕에 한국교회의 성모신심은 박해 중에는 물론 그 후에도 줄곧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지탱해 왔습니다. 

 

  일제강점기에도 성모신심의 열기가 계속 이어져서 성모신심단체들이 본당에 확산되었으며, 신자들은 성모 마리아께 조선의 자주독립을 간절히 기원하였습니다. 그러다가 해방과 건국을 맞이하게 되었는데, 1945년 8월 15일에 맞이한 광복일과 1948년 8월 15일에 맞이한 정부수립일이 성모승천대축일과 겹치게 되면서, 신자들은 광복과 정부수립이 한국교회의 주보이신 성모 마리아의 도우심에 의한 것이라고 굳게 믿게 되면서 성모신심이 활성화되기도 하였습니다.

 

  교우 여러분!

  수많은 순교 성인성녀와 복자복녀를 배출하면서 혹독한 백년 박해를 견디어내게 해 주시고, 또 가혹한 일제의 식민통치도 이겨내어 조국의 광복도 이루게 해 주신 성모 마리아의 도우심으로, 민족의 숙원 사업인 통일을 향하여 남북한의 갈라진 겨레의 화해도 이루어 완전한 광복을 실현하도록 도와주시기를 기도하는 일이 우리에게 남아 있습니다. 그러자면 성모칠고를 묵상하면서 우리들에게 주어지는 신앙적인 십자가를 봉헌하는 정성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북녘 동포들에게도 신앙의 자유를 비롯한 광복의 은총이 주어지기를 기원하는 지향과 함께, 민족 복음화를 위해 작은 희생이라도 바치는 정성까지 더해지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