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희 하느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예레 7,23-28; 루카 11,14-23
2022.3.24.; 사순 제3주간 목요일; 이기우 신부
오늘 독서에서 “나는 너희 하느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예레 7,23-28) 하고 예레미야가 전해준 말은 사실 모든 예언자들이 전해주었던 예언의 골자입니다. 이 골자의 또 다른 형태는 “마음을 다해서 하느님을 사랑하고 자기 자신처럼 이웃을 사랑하라.”시던 예수님의 말씀이고, 또한 “다른 사람이 나에게 해 주기를 원하는 것을 먼저 그에게 해 주라.” 시던 말씀입니다. 하느님과 당신 백성의 조건부 계약으로 맺어져 있다는 이 말씀이 독서에 나온 것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하느님이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야 하느님 나라가 올 수 있다.”고 가르치신 말씀을 위해 배치된 말씀입니다. 독서와 복음의 구도는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하느님을 섬기는 선을 행하는 것과 하느님을 방해하는 악을 몰아내는 것이 동전의 양면처럼 동시에 이루어져야 함을 말해 줍니다.
하느님과 백성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는 우리가 늘 신앙으로 고백하는 정식에 담겨 있습니다. 하느님을 창조주로 모시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모시며, 이 창조 신앙과 구세 신앙에 따라 우리가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시는 분이 성령이심을 깨닫는 일이 먼저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삼위일체로 존재하시는 하느님을 섬기는 백성이 교회인데, 이 교회에서 이루어져야 할 신앙의 신비란 믿는 이들이 서로 통공을 이루어야 하고 저지른 죄는 고백을 통해 용서를 받아야 하며 그렇게 될 때 거룩한 삶으로 우리가 부활에 참여하게 되고 이는 내세에까지 열려진 영원한 삶의 시작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또한 이 신앙고백의 정식이 선을 이룩하는 데 필요한 공식이라면, 악을 몰아내는 데 필요한 공식도 필요합니다. 창세기의 창조설화, 특히 두 번째 설화에 이 공식이 담겨 있습니다. 즉, 하느님께서 선을 창조하시는 데에는 반드시 악이 도사리고 있으며, 그 악은 인간이 속아 넘어가기에 딱 좋을 만큼 위장하여 유혹한다는 것, 그래서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자유와 믿음으로 책임있게 결심하고 선택하지 않으면 죄를 저지르기 십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죄는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하느님 없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지옥 상태를 초래한다는 것입니다.
근세 들어 여러 과학자들이 중력, 전기와 자기를 발견하고, 물질의 원소를 분류하며, 수학자들이 미적분과 공간, 차원 등의 개념을 창안해 냄으로써 지금의 물질문명이 가능해 졌듯이, 이러한 과학적 발견이나 수학적 창안보다 훨씬 오래 전에 예언자들과 이름 없는 성서 기록자들은 인간의 정신문화가 영적으로 성숙할 수 있는 지혜를 앞서 말씀 드린 바와 같은 공식에 담아 놓았습니다.
이 점에 있어서 예레미야가 질책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실상은 우리 교회와 그리스도인들 그리고 우리 민족에게 좋은 반면교사가 되어 줍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지도 않았고, 제멋대로 사악한 마음을 따라 고집스럽게 걸었습니다. 그들은 앞이 아니라 뒤를 향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느님 말씀을 전해 주는 예언자들을 무시하고 박해하였으며, 목을 뻣뻣이 세우고 고약하게 굴면서, 자신들의 입술에서 진실이 사라지고 끊기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를테면, 제천의식이나 경천사상은 고사하고 사악하고 천박하게 굴어서, 만민에게 빛을 전해야 한다는 천손의식도 없이 악한 길을 걸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 백성으로 부르심 받은 이스라엘의 이러한 타락은 예수님께서 구세주로 오셨을 때에 그분을 마귀 두목의 하수인으로 중상모략하는 터무니 없는 모함으로 이어졌습니다. 도무지 선과 악을 식별하는 눈이 어두워진 탓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듣고 하느님 나라에로 들어오려는 소수의 백성을 위해서, 지치지 않고 가르치셨고, 도움을 청하는 이들에게 기적을 베푸셨으며, 특히 당신의 이 일을 계승하려는 이들을 제자로 삼아 사도로 양성하셨습니다. 그들이야말로 예수님 편에 서서 그분과 함께 하느님 백성을 모아들이는 사람들로서, 군사용어로 말하면 아군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예수님께서 알려주신 하느님 말씀을 기준으로 삼아 선을 행하고 악을 몰아내는 데 힘을 합치는 이들은 소수입니다. 선을 행하는 공식, 악을 몰아내는 공식이 성경과 교회 가르침에 주옥같은 말씀으로 담겨 있어도 무시하는 이들은 다수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벙어리 마귀가 우리의 현실입니다. 사람이 듣지 못하면 말을 제대로 할 수 없는데, 이는 청력과 언어 구사의 문제가 아니라 진실의 말씀을 듣지 못하고 제멋대로 자기 양심만을 믿고 의지하며, 의로움의 말을 제 때에 하지 못하고 자기 이익에 대한 고려에서 제멋대로 말하고 처신하는 세태가 그렇습니다. 이 모두가 선과 악을 구분하는 눈이 어두워진 탓입니다.
하지만 예언자들과 교부들이 우리에게 남겨준 신앙고백의 정식과 예언자들과 성경 기록자들이 남겨준 악을 몰아내는 지혜는 그 어떤 공식보다 더 귀한 진리입니다.
“오늘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너희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말라”(시편 95,1. 화답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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