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나라의 큰 민족이 되는 길
신명 4,1.5-9; 마태 5,17-19
2022.3.23; 사순 제3주간 수요일; 이기우 신부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모세를 통하여 율법을 정해 주셨고, 예수님께서는 사랑으로 이 율법을 완성하러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으로 완성된 율법을 지키면 하늘 나라에서 큰 사람과 큰 민족이 되리라는 것입니다. 본시 이 율법은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맺은 계약의 조건으로서,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당신 백성으로 삼으시고 보호해 주시는 대신에 이스라엘 백성은 이 율법에 담긴 하느님의 뜻을 지켜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빛이 이스라엘을 통해서 만민에게로 퍼져나가기를 기대하셨습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스라엘은 배타적이고 편협한 선민의식에 사로잡혀서 하느님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께서 이 율법을 폐지하러 오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율법의 본 정신인 사랑을 가르치고 솔선수범하심으로써 율법을 완성하여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서 이스라엘을 하늘 나라의 큰 민족이 되게끔 이끄시고자 하셨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예수님의 이러한 뜻을 몰라보고 그분을 배척했기에 그분은 죽음을 당하실지언정, 이스라엘 민족 안에서 골라 뽑으신 열두 제자라도 하늘 나라의 큰 사람이 되게끔 사도로 성하셨습니다. 이 열두 사도가 주춧돌이 된 새로운 하느님 백성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서 서방으로 복음을 전파하여 온 세상에 교회를 세웠고, 사랑의 계명이라는 진리를 설명함에 있어서 유다교의 바리사이즘을 배격하는 대신에 그리스적 사유를 받아들여 신앙을 뿌리로 하는 인간 이성을 꽃피우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여 일어난 서양 문명은 엉뚱하게도 무신론적인 경향을 다분히 띠고 말았습니다. 이에 대해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현대 서양문명을 이렇게 평가하였습니다: “현대에 있어서 인류는 자신의 발명과 자신의 능력을 경탄하면서도 세계 발전의 현상, 우주 안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위치와 역할, 개인 노력과 집단 노력의 의의, 사물과 인간의 궁극 목적 등에 관한 안타까운 문제들로 자주 번민하게 된다”(사목헌장, 3항).
실제로, 주로 논리-분석적 사고에 입각하여 형성된 서구 사상과 자연과학은 경이적인 현대의 과학 기술 문명을 창출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수행해 왔습니다만, 백인들의 서구 문화권을 부강한 선진국 그룹으로 만들었을 뿐 인류를 정의롭고 평화롭게 건설하는 데에는 실패하였습니다. 대희년을 맞이했을 때 그토록 간절하게 평화의 시대를 염원해 놓고도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강대국 간의 무도한 패권주의적 작태와 신자유주의 시장 경제 질서의 확산으로 말미암아 부익부빈익빈의 양극화 심화와 분쟁 등 국제사회에서 엄청난 부조리와 불의 현상이 감소하기는커녕 날로 확산되기 때문입니다. 지난 2천 년 동안 그리스도교의 본산이 되어서 온 세계에 복음을 전해준 서구 세계에서 과거 이스라엘 민족이 지녔던 배타적이고 편협한 선민의식과 다를 바 없는 백인우월주의와 이에 젖은 서구 중심적 선교방식 탓으로 세속화 현상이 광범위하게 퍼지고, 무신론 사조가 팽배하며, 신앙의 사사화 풍조가 만연되어서 자신들의 문화권조차도 복음화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합리적이기보다 직관적이고, 냉철하기보다 즉흥적이며, 활동적이기보다 수동적이고, 진취적이기보다 보수적이어서 서구 세계보다는 상대적으로 정적인 사회를 형성하는 대신에, 현실을 포괄적이고 신비적으로 관조하는 종교와 문화, 예술을 전개하는 동력이 되어 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공감과 매력을 불러일으키며 대유행하고 있는 한류의 바탕도 직관-종합적인 사고방식입니다.
이 보편적인 공감과 매력은 우리 민족이 예로부터 깨닫고 발전시켜온 전통적인 하느님 신앙 즉, 제천의식과 경천사상 그리고 천손의식 덕분입니다. 제천의식(祭天儀式)은 하늘에 계신 하느님께 제사를 드리는 전례였고, 경천사상(敬天思想)은 전례에서 계시받은 하느님의 뜻을 받들어야 한다는 깨달음이었으며, 천손의식(天孫意識)이란 경천의 주체는 온 인류라는 자각이었습니다. 그러니 인류는 모두가 다 하느님의 자손으소서 존엄하게 여겨서 모두를 이롭게 해야 한다는 홍익인간 사상이 여기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 전통 신앙이 지난 2천 년 동안 불교와 유교 그리고 식민통치로 억압받으면서 전례도 사상도 의식도 발전시키지 못하여 주술과 역술 등의 무속으로 전락했으며 개개인의 길흉화복을 기원하는 상업적인 미신행사로 전락되고 말았습니다. 유력한 정치인들이나 기업인들도 주술과 역술에 의존하는가 하면, 이에 대한 반발로 서구적 사고방식에 젖은 지식인들은 전통 신앙을 무조건 백안시하는 경향도 다분합니다.
하지만 우리 민족을 하늘 나라의 큰 민족이 되게 하는 길은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전통적인 하느님 신앙에 담긴 제천의식과 경천사상 그리고 천손의식을 아는 데에 그 관건이 있습니다. 그리고 신앙의 토착화를 통한 민족의 복음화 과업은 주술이나 역술을 배우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흔히 샤마니즘으로 매도되어온 직관적이고 종합적으로 하느님을 사유해 온 민족의 전통적 종교심성을 존중함으로써 출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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