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마르10,28-31) - 신부님 복음 해설
"누구든지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어머니나 아버지,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를 백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29~30)
마르코 복음 10장 29절은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라고 기록되었지만, 마태오 복음
19장 29절에서는 '내 이름 때문에'라고 기록되어 있고, 루카 복음 18장 29절에서는
'하느님의 나라 때문에'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내 이름', '나와 복음', '하느님의 나라'는 다같은 의미이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를 위하여 일하고 계시며, 복음은 하느님의 나라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본문에서 '~때문에', '~을 위하여'에 해당하는 '헤네켄'(heneken; for; for sake)은
전치사 '헤네카(heneka)의 소유격인데, 여기서 두 번 언급된 것은 이 전치사와 함께
쓰인 단어들을 강조하는 의미가 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다른 이유가 아닌 바로 '예수님 당신과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어야 함을 강조하신 것이다.
다시 말해서 가족이나 집 등으로 대표되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을 버리는 것만이
예수님과 복음을 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버린 사람'에 해당하는 '호스 아페켄'(hos apheken; one who has left)을
통해서 외적 및 내적 분리를 의미하는 포기를 가르치는데,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자기 스스로 무엇인가를 내어버리지 않고서는 결코 갈 수 없다는 말씀을 하시고
계시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마음 속으로부터 진정으로 예수님을 가장 소중한 분으로 여기는 것이
예수님의 제자되는 절대적인 기본 조건인 것이다.
한편, 마르코 복음 10장 30절의 '백 배'(a hundred times)는 반드시 산술적 의미의
백 배가 아니며, 예수님과 복음을 위하여 이 세상에서 내어버린 것의 백 배의 보상을
받는다는 것은 많은 보상을 받게 됨을 나타내는 문학적 표현이다.
그리고 그 보상도 반드시 물질적인 것만이 아니고, 그것보다 휠씬 더 소중한 영적인
축복을 의미하기도 한다.
분명한 것은 그 보상이 현재와 이 세상의 삶이 끝 난 후 오는 세상인 내세(미래)에
모두 받게된다는 것이다.
오늘날 수많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함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서
참된 행복을 맛보며 살고, 비록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시한 영생의 복음적 가치관 때문에
혈육간의 관계가 단절되고 떄로는 핍박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믿는
이들은 영적으로 더 많은 가족을 얻으며, 마음 속에 세상이 주지 못하는 평화와 기쁨을
주님 안에서 누리고 살기 때문에 이 말씀은 참된 내용인 것이다.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예수님을 위해 자발적으로 포기한 것에 대한 보상으로 '풍요'만이 아니라 '박해'도
겸해서 받는다는 내용이 여기 마르코 복음에만 나온다.
여기서 '박해'에 해당하는 '디오그몬'(diogmon; persecution)의 원형은
'디오그모스'(diogmos)이다.
신약에서 '디오그모스'(diogmos) 말고도 '박해'를 나타내는 단어가 하나 더 있는데,
코린토 1서 4장 12절에 나오는 '블라스페메오'(blasphemeo)라는 동사이다. 이 동사의
뜻은 '비난하다', '중상하다', '헐뜯다'이다.
이 두 단어는 의미상으로는 모두 '박해', '핍박'이라는 뜻을 가지지만, 세부적으로는
'블라스페메오'(blasphemeo)는 '말을 통한 박해'이고, '디오그모스'(diogmos)는
'구체적인 행위로 가해지는 박해'를 가리킨다.
여기 본문에서는 '~중에', '~가운데', '~함께'라는 뜻을 가진 전치사 '메타'(meta;
with)와 함께 쓰였는데, '메타 디오그몬'(meta diogmon;with persecution)은
'박해 중에', '박해 가운데'라는 뜻이 된다.
이 말이 공관 복음서 중에 마르코 복음에만 기록된 것은 마르코 복음사가가 자신의
일차적 독자인 로마 신자들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마르코 복음사가는 로마에 있는 당시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로마 황제 네로의 극심한
박해 속에 있음을 알고, 그들이 겪고 있는 박해가 그리스도인이면 필연적으로 겪어야
되는 것임을 강조하며 그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이 내용을 부각시켰다(마태5,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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