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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7일 사순 제1주간 월요일 제1독서 (레위19,1-2.11-18)

수성구 2022. 3. 8. 03:22

2022년 3월 7일 사순 제1주간 월요일 제1독서 (레위19,1-2.11-18)

"너희는 마음 속으로 형제를 미워해서는 안된다. 동족의 잘못을 서슴없이 꾸짖어야

한다. 그래야 너희가 그 사람 때문에 죄를 짊어지지 않는다." (17)

 

레위기 19장 16절의 "너희는 중상하러 돌아다녀서는 안된다. 너희 이웃의 생명을 걸고

나서서는 안된다." 는 말씀 속에서 나타나는 인간 행동들의 근원에는 결국 사람의

'마음' 이 있다.

 

'마음속으로'에 해당하는 '삘르바베카'(billbabeka; in your heart)는 '마음'을 

뜻하는 '레바브'(lebab)에 전치사 '뻬'(be)와 대명사 접미어가 결합된 형태로 

'너의 마음 안에' 또는 '너의 마음으로' 라는 뜻이다.

 

여기서 전치사 '뻬'(be)는 '~안에'라는 장소의 의미나 '~으로'라는 도구와 수단의

다 나타낼 수 있다. 어느 경우이든 그 사람이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직 밖으로 드러나지

않고 감추어져 있는 것을 보여 준다.

 

카인이 아벨을 살해할 때에도 먼저 마음에 화를 품었기 때문이고(창세4,5),

예레미야 예언자도 마음을 가리켜 만물보다 더 교활하고 치유될 가망이 없는 것이라고

했다(예레17,9). 예수님께서도 인간의 나쁜 생각을, 살인, 중상이 마음에서 나온다고

말씀하셨다(마태15,19).

 

 

결국 형제를 죽이는 것은 외부로 드러나는 현상일 뿐이며, 그 근원에는 형제에 대한

분노와 미움이 있음을 알 수 있다(마태5,21-23; 1요한3,15).

 

하느님께서는 마음을 살피고 속을 떠보는 주님이시기 때문에(예레17,10),

레위기 19장 17절의 명령은 형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하느님 앞에 점검하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마음속에 나쁜 생각들을 거두어 두지 말고 공개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여 착한

마음으로 돌이킬 것을 촉구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편 '서슴없이 꾸짖어야 한다'로 번역된 '호케아흐 토키아흐'(hokeah thokiah)는

'꾸짖다'(1역대16,21)라는 뜻을 가진 동사 '야카흐'(yakah)의 부정사형과 

미완료형이 함께 나온 형태인데, 이렇게 동일한 어근이 반복될 때에는 그 의미가 매우

강조되어 '분명히 ~할 것이다', '반드시 ~할 것이다'라는 뜻을 가진다. 따라서 본문은 

'너는 분명히 꾸짖을 것이다'는 뜻이 된다.

 

그런데 '야카흐'(yakah)동사는 '꾸짖다'는 뜻 뿐만 아니라 '변론하다', '가리다'

(이사1,18), '책망하다', '따지다'(창세21,25), '견책하다', '훈계하다'(잠언19,25) 

등으로도 번역된다.

 

이것은 신분이 높은 자가 낮은 자를 일방적으로 훈계하라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것이

있으면 분명하게 드러내어 스스로 깨닫게 하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형제나 이웃이 어떤 잘못이나 범죄한 일이 있으면, 이것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잘못을 분명히 인식시키고 바로 잡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꾸짖어야 하는 상대방을 지칭하는 단어로 '동족'을 뜻하는 '아미트'(amith)를

사용했다. 새 성경은 '아미테카'(amitheka)를 번역하여 앞에 나온 '형제'를 다시

가리키는 것처럼 해석했지만, '아미테카'의 보다 정확한 의미는'너의 동료'

(your neighbour)라는 뜻이며, 이것은 이 교훈을 듣는 사람들이 미워하지 않고

꾸짖어야 하는 대상의 범위를 구체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미워하지 말아야 할 대상은 '형제' 만이 아니라 그의 '동족'까지 확장되어, 

꾸짖어야 할 대상 역시 '동족' 뿐만 아니라 피를 나눈 '형제' 까지 확장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형제와 동족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가리키는 상징적인 표현으로

이해해야 함으로 같은 뜻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마지막 구절은 접속사 '와우'(wau; and)로 시작하여 바로 앞에 나오는 동족을

꾸짖은 결과로 따라오는 내용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역할을 한다.

 

여기서 '짊어지다'로 번역된 '팃사'(thissa; suffer)는 '들어올리다'라는 뜻을 지닌 동사 

'나사'(nasa)의 미완료형으로, 보통 '죄'를 목적어로 취할 때에 '죄를 짊어지다',

'죄의 책임을 지다'라는 뜻을 가진다(레위5,1.17; 민수18,32).

 

그리고 '그 사람 때문에'로 번역한 '알라이우'(allaiu)는 '~때문에'라는 뜻을 지닌

전치사 '알'(al)과 앞에 나온 명사 '아미트'(amith)를 받는 대명사 접미어가 결합된 

형태로 '그 (동족)로 말미암아'라는 뜻이다.

 

따라서 본문은 '그 사람 때문에 네 자신에게 죄가 생겨나지 않도록 하라'고 번역된다.

 

그러므로 앞 문장과 관련해서 보면, 형제를 꾸짖게 되면 죄에서 해방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 사람과 함께 죄를 당하게 된다는 뜻이다(에제3,18-21; 33,8-9).

 

이처럼 공개적으로 그를 꾸짖는 것은 그 사람의 영혼을 구하려는 목적도 있지만,

자칫 그 감정을 마음에 품고 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감정의 폭발과 그로 인해 상대를

헐뜯게 되며, 심지어 살인까지 저지르게 되는 무서운 결과를 막기 위한 방책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것은 '하고 안하고의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행해야 할' 행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