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재의 수요일] 자선과 기도와 단식

수성구 2022. 3. 2. 06:19

[재의 수요일] 자선과 기도와 단식

자선과 기도와 단식

요엘 2,12-18; 2코린 5,20-6,2; 마태 6,1-6.16-18

재의 수요일; 2022.3.2.; 이기우 신부

 

  오늘은 사순시기를 시작하는 재의 수요일입니다. 사순시기는 주님의 부활을 기쁘게 맞이하기 위하여 사십 일 동안 자선과 기도와 단식을 통해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수난의 길과 죽음에 동참하려는 묵상과 준비를 하는 때입니다. 사순시기를 시작하는 이 날, 교회가 거행하는 재의 예식은 우리네 육신 생명이 언젠가는 재로 돌아갈 것을 상기시키는 한편, 우리가 육신 생명이 살아있는 동안 지향해야 할 목적은 이미 이 현세에서부터 부활 신앙으로 살아가는 영원한 생명임을 상기시키는 뜻이 있습니다. 그래야 우리가 세례를 받을 때에 탄생한 영적인 몸이 성장할 수 있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의를 환기시켜주시는 내용이 자선과 기도와 단식입니다. 이는 유다교에서도 전통적으로 행해 오던 종교적 관습이었는데, 그 초점은, 자선이든 기도든 단식이든 사람들의 눈이 아니라 하느님을 의식하여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사두가이나 바리사이 같이 열심한 유다인들이 자선도 기도도 단식도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거창하게 행하면서 정작 하느님을 의식하지 않고 겉치레로 행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하느님을 실질적으로 믿고 섬기는 신앙의 회복을 촉구하는 것이고, 마태오는 예수님의 이 가르침을 모아 산상설교에 담았습니다. 이 가르침에 담겨 있는 도덕적 요구가 철두철미한 배경에는 먼저 주어져 있는 하느님의 무한하신 자비에 대해 감사하는 깨달음으로, 부족하나마 가능한 대로 우리도 실천해야 한다는 각오도 들어 있습니다. 창조주 하느님께서 무상으로 주신 세상과 생명에 대해 감사하기는커녕, 인간이 주어진 자유를 남용하여 죄를 지었기 때문에 당신 외아들의 수난과 죽음을 통해 값비싼 희생을 치루고 당신을 저버렸던 인간과 화해하시고자 하셨다는 신비를 담고 있습니다. 전자가 창조의 신비라면 후자는 십자가의 신비요 구원의 섭리입니다. 

 

  이 창조와 구원의 신비에 입각해서 오늘 말씀을 풀이하자면, 자선을 행하되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가르침은 이미 우리가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것을 나보다 더 필요한 이웃에게 나눔으로써 결국 하느님께 돌려드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정의입니다. 

 

  기도하되 사람들 앞에서 보란 듯이 하지 말고 골방에 들어가 하느님께 기도하라는 가르침 또한 이미 주어지고 있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먼저 듣지 않고서는 말할 수 없는 까닭입니다. 듣지도 않고 자기 할 말만 하는 일방적인 방식의 기도로서는 하느님과 원활한 의사소통이 이루어 질 리가 만무합니다. 이것이 기도의 공리입니다. 

 

  단식하되 얼굴을 찌푸리지 말라는 가르침 역시 우리가 먹는 일용할 양식이 모두가 함께 먹었어야 할 것을 잊어버리고 우리만 배불리 먹는 동안에 굶주리고 있는 이웃이 있으니, 이제는 그들도 먹을 수 있도록 나누어주어서 원래의 질서대로 되돌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단식은 절약된 몫을 이웃과 나누는 자선과 반드시 연결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사회적 사랑으로서 종교의 원래 모습입니다. 

 

  자선이 하느님께 돌려드리는 봉헌이 되기 위해서는 또한 기도와 연결되어야 마땅합니다. 기도함으로써 본래 우리가 거저 받은 것을 나누어야 한다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어야 자선의 행위가 가난한 이웃을 돕는 효과를 누리기 이전에 우리 자신이 하느님께 대한 도리를 갚는 의미가 실현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될 때 죄의 파괴력에도 불구하고 기도하고 단식하며 자선을 베푸는 참회의 힘으로 하느님께서 죄인인 우리들을 용서하시고 자비를 베풀어 주십니다. 이것이 참회와 용서의 치유력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본연의 자세를 회복시켜 주는 사순 시기는 은총의 때입니다. 자선과 기도와 단식이라는 전통적인 종교 행위가 습관적인 행사가 되지 않고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께로 돌아가게 하는 은총이 되기를 예수님께서 바라십니다. 

 

  이 세 가지 종교적 성무는 창조와 구원의 신비 아래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기도는 내 뜻을 하느님께 말씀드리는 것이기 이전에 하느님의 뜻을 내가 알아듣고자 하는 영적 노동이어야 하며, 그래서 기도는 종종 단식을 수반합니다. 하느님의 뜻에 집중하기 위해서 몸의 기본 욕망을 채우는 일에 안주하지 않고 제한하고자 단식하는 것이며, 이로 인해 절약된 몫을 자선하는 데 씁니다. 우리가 자선을 베풀면서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게 되면 물질적으로 도움을 받는 대상은 그 가난한 이들이지만 영적으로 은총을 입는 주체는 우리 자신입니다. 물질을 나누면서 은총을 받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치관은 하느님을 믿고 의식하는 신앙인들에게서만 가능합니다. 결국 사순시기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우리 기준으로 삼음으로써 우리 자신이 성화되도록 노력하는 특별 시기입니다. 세상의 복음화에 앞서 우리 자신의 복음화에 집중하는 때입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영적인 몸이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