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세상의 죄를 위한 속죄 제물, 예수 그리스도

수성구 2022. 1. 4. 02:09

세상의 죄를 위한 속죄 제물, 예수 그리스도

1요한 4,7-10; 마르 6,34-44 / 2022.1.4.; 공현 후 화요일; 이기우 신부

 

  오늘 복음은 5천명도 훨씬 넘는 많은 군중을 배불리 먹이신 빵의 기적 사건을 전합니다. 이 때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요한 6,35.41)이라고 밝히신 예수님께서는 이 사건을 사전 교육으로 삼아 당신 생애의 마지막 순간에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성체성사를 제정하셨습니다. 이 때는 바로 그 다음 날에 집행될 십자가형에서 못 박힐 당신의 몸을 빗대어 빵을 나누어주시며 “이는 내 몸”(마태 26,26)이라고 말씀하시고, 그 십자가 위에서 창에 찔려 흘리실 당신의 피를 빗대어서는 포도주를 나누어주시며 “이는 내 피”(마태 26,28)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 말씀은 십자가형을 받아들이는 당신의 지향이 자기자신을 바치는 희생제사임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오늘 독서에서 사도 요한이 해설하는 바,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1요한 4,10)입니다. 

 

  성체성사에서 이루어지는 거룩한 변화는 이러한 예수님의 자기희생에 기반하여 성체성사에 참여하는 신자들의 자기희생을 겨냥한 신비입니다. 그래서 이 신자들의 자기희생을 미리 경축하는 뜻에서 사제와 신자들은, “신앙의 신비여!”라는 환호를 외칩니다. 이 두 가지 중에서 어느 한 가지가 빠져도 성체성사는 온전히 성립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예수님과 우리의 자기희생은 세상의 죄를 없애기 위한 속죄 제물이기 때문에, 신비의 요건으로서 세상의 평화를 위한 지향으로서도 성립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평화”(에페 2,14)이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평화의 역군이 되어야 하는 근거입니다.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이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마태 5,9)이라는 말씀도 그래서 나왔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네 마리 짐승”(다니 7,3)이 교대로 지배하던 식민지였고, 예수님께서도 그 식민지 백성으로 살아가셨습니다. 식민통치자들의 행태에 대해서,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라는 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사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마르 10,42-45)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섬김으로 이룩되는 평화요 성체성사의 구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