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기도

성탄이 주는 교훈 한가지

수성구 2021. 12. 26. 04:58

성탄이 주는 교훈 한가지

자연과 초자연이 만나는 데는 스파크가 

일어난다. 부부의 자연 생산력이 아닌 

성령으로 말미암은 수태를

어떻게 이성적으로 알아들을 수 있는가?

 

요셉과 약혼할 때, 

평생을 동정을 지키기로 약속해 놓고,

처녀가 임신하여 배가 점점 불러오를 때

종교 율법적으로 간음죄에 해당되어 

돌로 쳐죽임을 당할 수도 있는 장애와,

가까이는 요셉부터 시작해서

 친인척들의 의심과 극성스런 소문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 지 

걱정해야 되는 인간적 장애,

이런 장애들을 잠시 생각해 보면,

영원으로부터 살아계신 하느님의 말씀이

사람의 살과 피를 취하시고 역사 안에 

들어올 때, 그것도 나자렛 성가정을 

택하여 들어올 때, 참으로 

성모님도, 요셉 양부도 힘들었을 것 같다.

 

그러나 성령의 도구인 천사 가브리엘의

 설명과 징표를 듣고, 그 모든 장애를

극복하는 믿음을 가져야 했다.

특히 성모님은 요셉 양부에게 직접 

그 모든 말씀을 이야기 할 수 있어도,

가장으로서, 장부로서,양부로서의 

요셉의 위상을 존중하여,

하느님께서 직접 요셉에게 설명해 주시도록,

배 안의 예수님께 기도드렸다.

 

그리고 때가 되어 예수님을 낳게 되는 날,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어

(루카2,7ㄷ)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동물의 먹이통, 구유에 뉘었다. 

 

장애가 있으면, 뛰어 넘어야 한다.

초월해야 한다. 막히면, 돌아가야 한다.

다른 곳을 찾아야 한다.

나의 일이 아닌, 

하느님의 일을 이루기 위해서~

 

육상에서 장애물 경기를 본다.

허들 경기를 보면, 그걸 뛰어 넘고 통과하여

 빨리 뛰는 게 경기다.

장애물 없는 평지의 달리기와는 다르다.

그러니까 목적이 있고, 

지향이 있으면, 장애물도 문제가 안된다.

비록 장애가 있다 하더라도, 

목적을 알고 가는 삶은 다르다.

 

돈없이 삼일 굶은 사람은 자신의 비참한

 현실로 인해 세상이 미워지고, 

그래서 월담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반면에 스스로 목적과 뜻이 있어

단식원에 들어가 삼일 굶으면,

굶주림에 통곡하거나 슬퍼하지 않는다.

 

무엇이 다른가?

스스로 선택하는 단식과 가난으로 인해

 마지못해 겪는 굶주림은 다른 것이다.

 

목적과 지향의 있고 없음의 차이가 있다.

의미 부여의 유무따라 삶의 태도가

달라진다.

 

하느님의 뜻을 이루고, 그 뜻에 협력해야 

한다는 성모님과 요셉 양부의 믿음이,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떤 처지와 상황에서도 모든 것을 

극복해야 한다는 교훈을 

성탄절에 우리에게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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