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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엾은 마음이 드셨다(마르 6,30-34) - 신부님 복음 해설

수성구 2021. 7. 19. 02:40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마르 6,30-34) - 신부님 복음 해설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셨다." (34)

 

여기서 '목자'로 번역된 '포이메나'(poimena; a shepherd)는 '포이멘'(poimen; 1베드2,25)의

목적격 단수이다.

 

신약에서 '포이멘'(poimen)이 여기처럼 단수형으로 사용되는 경우는 거의 다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한다(마태26,31; 히브13,20).

 

하지만 여기서 언급되고 있는 '목자'는 예수님처럼 양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바칠 수 있는 진정한 지도자를 뜻한다.

 

당시 군중들을 인도했던 유대 종교 지도자들, 즉 당시에 존경받던 랍비들이나 말씀을

가르친 율법학자들은 참된 의미의 목자가 아니었다.

 

마르코 복음 6장 34절(ㄴ)에서 동사 두 개가 하나는 직설법으로 쓰였고, 다른 하나는

분사로 쓰였다.

 

'목자 없는'의 '없는'에 분사로 쓰인 '에콘타'(echonta; having)의 시제는 현재이며,

'같았기 때문이다'의 '같았기'에 직설법으로 쓰인 동사 '에산'(esan; they were)의

시제는 미완료 과거이다.

 

이것은 벳사이다 들판에 몰려든 큰 군중들이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목자

없는 양들 같은 삶', 즉 참된 영적 지도자를 만나지 못한 채 목적없이 방황하는 삶을 살아 왔음을

나타낸다.

 

따라서 그들에게 참된 목자이신 예수님은 더더욱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군중들에 대한 예수님의 애끓는 감정을 묘사한 단어가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이다.

 

여기서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에 해당하는 '에스플랑크니스테'(esplangchnisthe;

was moved with compassion)의 원형 '스프랑크니조마이'(splagchnizomai)는

'창자' 혹은 '내장'을 의미하는 '스플렌'(splen)에서 유래했다.

 

당시 사람들은 인간의 마음이 내장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았으며, 그래서 이 용어는

인간의 감정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었다.

 

특히 사랑이 전제되어 상대에 대해 주체할 수 없는 애끓는 '측은지심'(연민의 정;

동정심)의 마음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었다(마태9,36).

 

이것은 이 용어가 루카 복음 15장 20절에서 집나간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다가

돌아오는 아들이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아들임을 알아채고 달려가 아들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는 아버지가 가졌던 마음을 묘사하는 데도 사용되었다는

점에서도 잘 나타난다.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쳐주신 것도 바로 이같은 도무지 주체할 수 없는 애끓는 사랑의

마음이 불타올랐기 때문이다.

 

 

복음 선교와 선행과 치유의 밑바닥에는 이같은 측은지심이 깔려 있어야 하고, 전제되고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목자 없는 양들 같은, 군중에 대한 측은지심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신다.

 

여기서 '가르쳐 주기 시작하셨다'의 '가르쳐 주기'에 해당하는 '디다스케인'(didaskein;

to teach; teaching)은 현재형으로서, 그 가르침이 쉬지 않고 계속 베풀어지고 있었음을

나타낸다(마르6,35).

 

그리고 본문과 병행 구절인 루카 복음 9장 11절에서 이 가르침이 '하느님 나라'에

관한 것임을 말해 주고 있으며, 여기 마르코 복음에서는 예수님의 목자로서의 첫번째

행위가 '가르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병행 구절인 마태오 복음 14장 14절에서는

병자들을 고쳐 주신 것으로 되어 있고, 루카 복음 9장 11절에서는 말씀과 치유가

둘 다 언급되어 있다.

 

예수님께서는 착한 목자로서 자신을 찾아온 가엾은 양들에게 영적 양식과 육적 회복을

다 베푸셨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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