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주님의 향기

10년 걸려 빚 다 갚고

수성구 2021. 5. 13. 06:16

10년 걸려 빚 다 갚고

5월 셋째주 주님 승천 대축일

믿고 세례를 받는 이는 구원을 받고 믿지 않는 자는 단죄를 받을 것이다.

(마르 16.15-20)

 

10년 걸려 빚 다 갚고

(강태현 신부. 의정부교구 일산성당 부주임)

 

KMF때 아버지 사업이 부도가 났다.

집은 빚더미에 앉았고 빨간 압류딱지까지 붙어 단칸방으로 이사를 해야했다.

아버지는 어떻게든 이 일을 해결해 보려고 뛰어다녔고.

어머니도 작은 도움이라도 되고자 안좋은 허리에도 불구하고 일을 시작했다.

마음처럼 일이 잘 풀리지 않으니 아버지는 술을 자주 드셨고.

아픈 마음에 방황하며 가족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다.

 

 

어느 날 새벽녘에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순간 나는 자는 척을 했다.

아버지는 집을 나섰고. 내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며칠 후 아버지가 할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아버지가 그동안 미안했다.

아들도 엄마도 힘들텐데 아빠가 안 좋은 모습만 보인 것 같아.

아빠를 믿어준다면 아빠는 다시 시작하고 싶어.

 

 

아버지는 그날부터 정말 180도 변하셨다.

술들 끊고. 성실히 일해 부채를 하나씩 갚아나갔다.

그리고 퇴근 후에는 성경 필사를 하셨다.

나도 어느새 어른이 되었고. 직장을 다니며 남아 있는 빚을 갚기 시작했다.

돈 버는 사람이 한 명 늘어나니 빚을 갚는 속도도 빨라졌다.

그렇게 신학교 입학 전에 남은 빚을 모두 정리했다.

꼬박 10년이었다.

 

 

나는 어딜가든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에 아버지..라고 대답한다.

어려움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성실하게 살아가셨고. 항상 가족을 사랑하신 모습 때문이다.

아버지는 내게 한 번도 믿음을 강요하지 않았다.

그저 행동으로 보여주셨다.

돌아보면 처음 아버지가 내게 당신의 새로운 삶에 대해 약속을 할 때부터

아버지에 대한 믿음이 있던 것 같진 않다.

시간이 흐르고 정말 당신이 하신 말씀대로 살아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는 새에 믿음이 생긴 것이다.

 

 

그리스도인에게 믿음은 중요하다.

우리는 영원한 삶의 약속을 믿기에 세례를 받고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

승천하는 예수께서 제자들을 바라보실 때. 우리를 바라보실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예수도 우리를 믿었기에 복음을 전하라는 말씀을 남기고 하늘로 올라가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하느님을 믿는 이유는 그분께서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이지만 주님도 나를 믿어 주셨기 때문이다.

그분께서 나를 믿어주신 은총에 응답하는 것이 내 삶일 것이다.

우리 삶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이 이루어질 때 그분의 사랑도 늘 함께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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