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내음

꽃보다 사람!

수성구 2021. 4. 28. 04:03

꽃보다 사람!

 

세간에 보면, "꽃이야 당연히 아름답고 화사함을 주지만, 인색한 사람을 봤을 때 오히려 청초한 풀꽃보다도 못하다."라는 말이 있지요.

또한 꽃이 부실했을 경우 “자연의 이치에 역행하는 사람이 어찌 꽃보다 아름답겠나?”라고 하는 걸 보면 “인간의 욕망에 대한 실망감” 때문인 것 같아요.

하지만, 꽃이 잘 피었을 때는 "사람이 꽃을 해하지 않았다." 또는 "사람이 꽃을 좌우한다."라고 인지될 것이니! 과연 사람의 내면을 꽃보다 아름답게 피울 수 있을까? 자성하게 됩니다.

꽃과는 사뭇 상이한 사람의 내면을 곱게 피우려면 자기희생이 있어야 하니 그게 힘든 거죠.

최근에 사람 실망을 접하는 것들이 있는데 인성을 포기한 아동범죄나 위정자들 이야깁니다.

피붙이조차도 목적을 위해 희생시키고, 정치인들은 기득권을 위해 국민을 기만하니 정직한 꽃에 비해 사람인 것이 창피하지 않도록 엄한 벌과 국민의 바른 선택으로 혼을 내야겠어요.

그처럼 양심이 곪아 부조화가 생기니 자성이든 자학이든 “인간이 꽃보다 못하다.”라고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살다 보면 가슴 뭉클한 사연들을 접할 때도 있는데 그들은 주로 저명하지도 않으며 힘없고 소박한 사람들이었어요.

수년간 수발한 치매 시어머니가 하늘가시니 “다시 태어나도 어머니의 며느리가 되겠습니다." 하며 넋 놓고 우는 여인과,

"자식에게 한쪽 눈을 이식해준 어머니의 아름다운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아무리 꽃이 예쁘다 해도 이런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고운 희생에 견주면 다소 처질 것 같고, 더욱이 고통을 감내했기에 비교불가 이겠지요.

세태의 이면에서 그처럼 아름다운 향을 피우는 사람을 봐서라도 "사람이 꽃보다 못하다."는 것은 "어불성설"이 아닐까요?

또한 "꽃 진 자리야 아름다울 것 없지만, 이타심이 머문 자리에는 여운이 오래가며" 꽃을 잘 피우고 못 피우는 것도 결국은 사람이겠기에 말입니다.

따라서 사람은 하느님께서 심어주신 양심적인 선택과 인식력으로 꽃보다 더한

`샹그릴라`도 만들 수 있으며 피조물을 더욱 아름답게 양산할 수도 있을 거니까요.

이같이 우리가 만물의 영장으로 부끄럽지 않게 영위해 나간다면 하느님 보시기에 기특하기 그지없을 것 같습니다.

 

 

 

(무늬 아마릴리스)

 

 

세간에 보면, "꽃이야 당연히 아름답고 화사함을 주지만, 인색한 사람을 봤을 때 오히려 청초한 풀꽃보다도 못하다."라는 말이 있지요.

또한 꽃이 부실했을 경우 “자연의 이치에 역행하는 사람이 어찌 꽃보다 아름답겠나?”라고 하는 걸 보면 “인간의 욕망에 대한 실망감” 때문인 것 같아요.

하지만, 꽃이 잘 피었을 때는 "사람이 꽃을 해하지 않았다." 또는 "사람이 꽃을 좌우한다."라고 인지될 것이니! 과연 사람의 내면을 꽃보다 아름답게 피울 수 있을까? 자성하게 됩니다.

꽃과는 사뭇 상이한 사람의 내면을 곱게 피우려면 자기희생이 있어야 하니 그게 힘든 거죠.

최근에 사람 실망을 접하는 것들이 있는데 인성을 포기한 아동범죄나 위정자들 이야깁니다.

피붙이조차도 목적을 위해 희생시키고, 정치인들은 기득권을 위해 국민을 기만하니 정직한 꽃에 비해 사람인 것이 창피하지 않도록 엄한 벌과 국민의 바른 선택으로 혼을 내야겠어요.

그처럼 양심이 곪아 부조화가 생기니 자성이든 자학이든 “인간이 꽃보다 못하다.”라고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살다 보면 가슴 뭉클한 사연들을 접할 때도 있는데 그들은 주로 저명하지도 않으며 힘없고 소박한 사람들이었어요.

수년간 수발한 치매 시어머니가 하늘가시니 “다시 태어나도 어머니의 며느리가 되겠습니다." 하며 넋 놓고 우는 여인과,

"자식에게 한쪽 눈을 이식해준 어머니의 아름다운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아무리 꽃이 예쁘다 해도 이런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고운 희생에 견주면 다소 처질 것 같고, 더욱이 고통을 감내했기에 비교불가 이겠지요.

세태의 이면에서 그처럼 아름다운 향을 피우는 사람을 봐서라도 "사람이 꽃보다 못하다."는 것은 "어불성설"이 아닐까요?

또한 "꽃 진 자리야 아름다울 것 없지만, 이타심이 머문 자리에는 여운이 오래가며" 꽃을 잘 피우고 못 피우는 것도 결국은 사람이겠기에 말입니다.

따라서 사람은 하느님께서 심어주신 양심적인 선택과 인식력으로 꽃보다 더한

`샹그릴라`도 만들 수 있으며 피조물을 더욱 아름답게 양산할 수도 있을 거니까요.

이같이 우리가 만물의 영장으로 부끄럽지 않게 영위해 나간다면 하느님 보시기에 기특하기 그지없을 것 같습니다.

 

 

 

(무늬 아마릴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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