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하늘을우러러

향기로운 삶

수성구 2021. 3. 20. 06:01

향기로운 삶

LA의 Descanso Gardens에 들렀다.

전에도 한번은 온 것 같은데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내가 머무는 어느 본당 회장님 댁의

멤버십을 갖고 정원을 무료로 관람했다.

나는 아침 식사후 소화도 시킬 겸,

좀 걸으면서 묵주기도를 바쳤다.

아름다운 꽃들과 수목과 맑은 하늘을

보면서 제대로 된 찬양을

하느님께 드리고 싶었는데,

그동안 잘 안된 것 같았다.

 

LA에 도착했을 때 회장님댁에 같은

본당의 형제분이 저를 환영한다고,

<당신을 환영합니다! 꽃 향기와

함께하심 임 안드레아 신부님>이라는

글귀가 담긴 나무 팻말을 만들어

거실에 놓아 두었길래, 조금은

깜짝 놀랐는데 이것이 예언적 언어가

되어, 내가 가든 속의 수많은 꽃들의

향기를 맡으며 걷고 있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내가 이곳에 오기 전에

미리 걸어갈 곳을 예비해 두셨다는

생각이 들어 내심으로

항상 동행하시는 하느님께 놀랐다.

 

한참 걷다가 라일락 가든 근처로

가니 꽃향기가 진동을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향기따라 라일락 가든을 찾아 왔지만,

막상 가든 안에는 향기가 나지 않았다.

내 코에 문제가 있는가? 후각을 잃었나?

가까이서 꽃향기를 맡아도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마태 13장 57절에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사람도 천사들도 하느님조차도 너무

가까이서 너무 많이 알면, 영성적으로

별로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비스러움이 사라진다.

존경심이 사라진다. 그래서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베일 속에 적당히

감추어져 있는게 좋다. 그래서

은은함이 향기로 퍼져나와 우리를

그곳으로 인도하고 안내해 주는거다.

하느님께서도 당신을 직접 보는 사람은

살지 못한다(탈출33,20)고 하셨는데,

거룩함은 아무도 범접할 수 없도록

가리워져 있어야 한다.

 

<나는 지금 교회와 세상 안에서

우주 안에서 영적인 하느님 나라에서

어떤 향기를 풍기고 있는걸까?

하느님께는 도대체 어떤 향기로

다가가는 걸까?>

 

묵주기도를 마친 후, 그늘이 있는

벤치에 앉아 하늘을 쳐다보고

큰 나무들을 바라 보았다.

마침 창공에 매처럼 보이는 새와

그보다는 작은 새가 큰 새를 귀찮게 하며

날고 있었다. 큰 새는 날개짓을 하지

않고 기류따라 움직이는데, 다른 새는

연거푸 날개짓을 하며 이리저리

촐싹대고 있었다.

수영으로 치면, 매는 접영(butterfly)

할 때나 다른 종목에서도

마찬가지지만 벽을 발로 차고 턴을 하고

물결을 잘 이용하여 웨이브를 타는

동작처럼 품위있고 점잖게 날고 있었다.

 

작은 새처럼 자기 힘으로 수없이 낑낑

날개짓을 하며 애쓰는 것보다

날개짓 없는 큰 매의 비행처럼,

자연의 섭리와 하느님의 뜻에 순응하는

자세와 태도가 편안함을 주었다.

 

 

 

 

 

이것이 바로 향기로운 삶이 아닐까?

요약하면,

첫째로 향기는 멀리서 맡는 것이고,

둘째로 향기는 자신이 무엇을 하려고

할 때가 아니고, 자연에 순응할 때

나오는 거라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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