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걱정대신 믿음을! ^^* *♥* -
찬미 예수님!
사랑하올 형제 자매님,
한 주간 동안 행복하게 잘 지내셨어요?
어제 한해를 시작한 것 같은데
벌써 3월달이 시작되었습니다.
참으로 세월의 빠름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오늘 신학교에서는 입학미사가 있었습니다.
새롭게 사제 성소의 길을 걷고자 지원한
젊은 청년들을 보니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형제 자매님,
며칠 전에 누가 서울여대에서 실시한
‘사랑의 엽서’ 공모전 대상작이라면서 글을 하나 보내주었습니다.
여기에 옮겨봅니다.
제목 : 어머니
나에게 티끌하나 주지 않은 걸인들이 내게 손을 내밀 때면
불쌍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나에게 전부를 준 당신이 불쌍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나한테 밥 한 번 사준 친구들과 선배들은 고마웠습니다.
답례하고 싶어 불러냅니다.
그러나 나를 위해 밥을 짓고
밤늦게까지 기다리는 당신이 감사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습니다.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 드라마 속 배우들 가정 사에
그들을 대신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나 일상에 지치고 힘든 당신을 위해
진심으로 눈물을 흘려본 적은 없습니다.
골방에 누워 아파하던 당신 걱정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습니다.
친구와 애인에게는 사소한 잘못 하나에도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러나 당신에게 한 잘못은 셀 수도 없이 많아도 용서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이제야 알게 돼서 죄송합니다.
아직도 전부 알지 못해 죄송합니다.
형제 자매님,
참 아름다운 글이죠?
대상을 받을만 합니다.
정말 세상에서 어머니의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은 없을 것입니다.
자식을 위해서는 당신의 모든 것을 다 포기하는 것이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그러기에 어머니라는 단어는
세상에서 가장 포근한 이름이면서도 가장 강한 이름입니다.
그래서 그 어머니의 품에 안기면 세상의 모든 걱정이 다 사라집니다.
어머니의 사랑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제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하느님의 사랑은 어머니의 사랑보다 더 크고 강하다고 합니다.
만에 하나 여인이 자기 자식을 잊는 일이 생길 정도의 극단적인 상황이 온다 해도
하느님은 당신의 자녀를 결코 잊지 않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하느님은 참으로 사랑 가득한 분이십니다.
아니 사랑 그 자체이십니다.
그래서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올바로 섬기는 사람
곧 하느님의 자녀는 그런 하느님의 사랑을 믿을 수 있기 때문에
아무 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형제 자매님,
오늘 사진은 며칠 전에 찍은 변산바람꽃입니다.
그곳엔 아직 응달쪽으로 많은 눈이 쌓여있었습니다.
그래서 운 좋게 설중화도 찍을 수가 있었습니다.
정말 예쁘죠?
그런데 예수님 말씀처럼 이 야생화는 아무도 가꾸지 않은 꽃입니다.
그야말로 하느님의 작품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꽃잎처럼 보이는 꽃받침,
깔때기처럼 생긴 꽃의 모양이며 색깔,
그리고 수술의 모양과 색상 등 모든 것이 놀라울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이렇게 작은 야생화도 이처럼 아름답게 꾸미시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을 훨씬 더 아름답게 입히실 것은 당연합니다.
형제 자매님,
그런데 우리는 아버지 하느님의 사랑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걱정으로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한 가지 걱정도 하지 않고 생활한 날이 며칠이나 될까요?
그런데 형제 자매님이 그렇게 걱정했던 많은 일들이 실제로 일어난 경우는 얼마나 되나요?
형제 자매님,
언젠가 어니 젤린스키의 "모르고 사는 즐거움" 중에서 본 내용인데,
흔히 우리가 매일 하는 걱정을 분석해보면
우리가 하는 걱정의 40%는 절대 현실로 일어나지 않는 것이고
걱정의 30%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것이며
걱정의 22%는 사소한 고민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걱정의 4%는 우리 힘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는 일에 대한 것이고
걱정의 4%는 우리가 바꿔놓을 수 있는 일에 대한 것이랍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죠.
예수님 말씀처럼 우리가 먼저 하느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는다면
아무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와 하느님의 의로움은 사랑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뜻, 곧 사랑이 실현되는 나라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부족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의로움은 내가 다른 사람을 판단하지 않고 사랑함으로써
실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판단하면 그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형제 자매님,
그래서 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우리에게 심판하지 말라고 충고하십니다.
심판은 하느님의 몫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심판한다면 내가 하느님의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누군가를 심판한다는 것은 하느님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대신 우리가 심판을 하느님께 맡겨드리고
상대방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사랑한다면
하느님께서 심판하실 때 칭찬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격려합니다.
사실 우리가 매일 생활 중에서 많은 경우 사람들을 판단하고 심판합니다.
그리고 사람을 판단하지 않고 어떻게 친구를 사귀고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가 있느냐고 반문하게 됩니다.
그러나 먼저 자신을 살펴본다면 그런 부정적인 생각을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하느님께서 나를 당신의 자녀로 삼아주셨을 때,
먼저 나를 판단하셨다면 우리 중에 누가 하느님의 자녀가 될 자격이 있었겠습니까?
하느님께서는 나의 출신이나 생각 또 행동을 가지고 판단하시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당신 자녀로 받아주신 것입니다.
그런 하느님의 무조건적인 사랑 덕분에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고
또 지금도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그렇게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사랑한다면 분명히
하느님께서 나의 부족한 모든 것을 다 채워주신다는 것을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형제 자매님,
이번 한 주간 동안 하느님의 사랑을 믿고
하느님을 닮기 위해서 그런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해봅시다.
그러면 더 큰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매 순간 행복하게 생활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구 가톨릭대학교 남산동 유스티노 교정에서 안드레아 신부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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