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성인

축일:1월 9일/켄터베리의 성 아드리아노

수성구 2014. 1. 7. 21:31

오늘의 묵상
동양권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는 오늘의 복음 말씀을 들으면서 ‘출사표’라는 말을 떠올리는 것이 그리 이상하지 않을 것입니다. 신앙인으로서 예수님의 모습에서 제갈량의 고사를 연상하는 게 송구스러운 일일지 모르겠습니다. 『삼국지』라는 위대한 문학 작품의 명대목이 절로 생각날 만큼 예수님께서 나자렛 회당에서 공생활의 시작을 밝히시며 보여 주신 확고한 모습은 멋지고 시원합니다.
이사야 예언서의 말씀을 봉독하신 뒤 그 예언이 이루어졌다고 선언하시는 대목을 거듭 묵상하면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예언자의 전통에 서 계신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닫습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오늘의 한국 교회가 이러한 예언자적 전통을 자주 잊고 있으며, 어쩌면 조금은 의식적으로 외면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반성하였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예언자들을 통해 이스라엘 신앙의 자기 쇄신을 가능하게 한 비판 의식이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교회가 우리 시대에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는’ 도구로서 존재하려면 끊임없이 예언자적 전통에서 시대와 세상과 교회 제도의 현실을 성찰하고 쇄신하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교회의 예언자적 사명은 세상과의 힘겨운 대립만이 아니라 교회 구성원들의 몰이해라는 어려움까지도 자주 겪습니다. 오늘 복음에 이어지는 부분에서는 예언자가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받지 못한다는 진실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이 길은 교회가 인내와 용기를 가지고 가야 할 길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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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콘]하느님의 독생자로 태어난 하느님의 말씀

북부러시아.1700년경.29 x 25cm.저화면(低畵面)

 

이 희귀한 주제는 요한 크리소스토모스(Johannes Chrysostomos)가 저술한

예배 의식의 문장에서 전래되었다.

 

화면의 윗 가장자리에 가까운 중앙에는 구름 속의 성부가 보인다.

좌우 양편에 하나님의 천사들이 각각 해와 달을 들고 구름 속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

성부의 아래에는 구약 성서적인 성 삼위 일체를 묘사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림의 좌우 양편의 모서리에는 시온과 예루살렘을 상징하는 건물이 보이는데,

건물 앞에는 각각 한 명의 천사가 서있다.

왼쪽에 서있는 천사의 아래에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가 보이며,

오른쪽에는 한 개의 메달안에 표상의 성모가 그려져 있다.

 

성 삼위일체 아래에는 두 명의 천사가 받들고 있는 천국을 상징하는 후광 속에 그리스도가 보인다.

무릎을 꿇은 천사들은 얼굴을 후광으로부터 약간 돌리고 있다.

그 아래에는 무덤속의 그리스도와 그 곁에 서있는 성모가 보인다.

 

그림의 아랫 왼쪽 모서리에는 암산(巖山)의 한 동굴 속에 군병인 그리스도가 십자가의 횡목위에 앉아 있다.

그 왼편 옆에는 한 천사가 막대기로 마귀들을 내쫓고 있다.

오른쪽에도 역시 암산의 한 동굴 속에 관대(棺臺)에 얹혀 있는 시체 위를 한 사자(死者)가 말을 타고 달린다.

그는 어깨에 큰 낫을 메고 있다.

(유럽 聖畵(ICON)集에서)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스 축일:9월13일.게시판1363번.

 

 

축일:1월 9일

켄터베리의 성 아드리아노

Saint Adrian of Canterbury

c.635 in North Africa as Hadrian -

9 January 710 of natural causes at Canterbury, England, and buried there;

tomb a site of miracles; body found incorrupt in 1091

Canonized :Pre-Congregation

 

 

 

아프리카 태생인 아드리아노는 나폴리 근처 네리다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으며,

켄터버리 대주교로서 임명을 거절하였다.

그러나 희랍 수도자인 테오도로는 그를 켄터버리의 성 베드로와 바오로 수도원장으로 임명하였다.

39년 동안 지낸 수도원 장상직을 통하여 그는 수도원 쇄신에 정력을 기울였다.

 

성서에 해박한 지식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훌륭한 관리자였으며,

희랍과 라틴 학문에도 조예가 깊어서 켄터버리 수도원 학교 교육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리하여 수도원이 배움의 전당으로서 자리를 굳히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영국 교회는 위의 두 성인 생존시에 최대의 번영을 누렸다고 한다.

아드리아노는 710년 1월 9일 켄터버리에서 사망하였고,

그는 수도원 성당에 안장되었는데, 이 무덤이 기적을 낳는 곳으로 즉시 유명해지게 되었다.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아프리카 태생인 성 하드리아누스(Hadrianus, 또는 하드리아노)는

이탈리아의 나폴리(Napoli) 근처 네리다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으며 캔터베리 대주교 임명을 거절하였다.

대신에 그는 그리스 수도자인 테오도루스(Theodorus)를 적당한 후보자로 추천했고

교황 비탈리아누스(Vitalianus)가 이를 승인하였다.

이 후 성 테오도루스는 하드리아누스를 캔터베리의 성 베드로(Petrus)와 바오로(Paulus) 수도원장으로 임명하였다.

39년 동안 수도원 장상직을 수행하면서 그는 수도원 쇄신에 정력을 기울였다.

성서에 해박한 지식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훌륭한 관리자였으며,

그리스와 라틴 학문에도 조예가 깊어서 캔터베리 수도원 학교 교육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래서 수도원이 배움의 전당으로서 자리를 굳히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영국 교회는 위의 두 성인이 살아있을 때 최대의 번영을 누렸다고 한다.

하드리아누스는 710년 1월 9일 캔터베리에서 사망하여 수도원 성당에 안장되었다.

그의 무덤은 곧 기적을 낳는 곳으로 유명해지게 되었다.

(가톨릭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