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신앙의 눈^^* (박영봉 안드레아 신부님의 강론입니다.)

수성구 2014. 1. 5. 04:23

 


- *♥* 신앙의 눈^^* *♥* -

찬미 예수님! 사랑하올 형제 자매님, 갑오년 새해를 맞이하셔서 건강하시고 즐겁게 잘 지내시죠? 새해 인사가 많이 늦었습니다. 새해에도 더욱 건강하시고 주님 사랑 안에서 늘 행복하세요. ^^* 청말처럼 활기차게 움직일 수 있는 일들이 많기를 그러면서도 가정에 평화가 넘칠 수 있길 기도드립니다. 형제 자매님, 저는 2일부터 한티 영성관에서 신학생들 대학원 1학년들 영성수련을 지도하고 있어요. 제가 전체 진행을 하면서 저와 다른 4명의 신부님들이 16명의 신학생들의 영적 동반을 하게 됩니다. 28일까지 대침묵 속에서 영성수련이 계속됩니다. 5명의 신부들과 16명의 신학생들이 마지막까지 잘 할 수 있도록 기도 중에 기억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그런데 저는 시작하기 전에 이미 감기가 걸려서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ㅠㅠ 영성수련을 진행하면서 어느 정도 여유가 있으면 강론을 계속 올려드릴 수가 있는데 여유가 없어서 못 올려드릴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혹시 예고 없이 강론이 올라오지 않더라도 이해해주세요. 형제 자매님, 오늘은 주님 공현 대축일입니다. 즉, 세상에 오신 아기 예수님이 세상 사람들에게 공적으로 당신을 드러내신 것을 기념하는 축일입니다. 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바빌론에서 암울한 유배생활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장차 예루살렘에 주님의 빛이 오고, 예루살렘이 어둠 속에 그 빛을 비춤으로써 온 세상에서 많은 민족들이 예물을 들고 예루살렘으로 찾아들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그런데 이방 민족들이 들고 오는 물건들은 모두 예배 때 사용할 제물들입니다. 그러니 모두가 빛을 보고 주님께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모여든다는 것입니다. 형제 자매님, 예수님은 이사야의 예언대로 어두운 세상에 참 빛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은 참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경배하러 멀리 동방에서 박사들이 찾아왔다고 전합니다. 이사야의 예언이 그대로 성취된 것입니다. 이 세상에 빛으로 오신 예수님은 유대인들만을 위한 빛이 아니라 세상 만민을 위한 빛이십니다. 바로 우리들의 빛이십니다. 형제 자매님, 우리는 오늘 복음에서 동방박사들이 어떻게 예수님을 만났고 무엇을 얻었는지 살펴봄으로써 우리 자신들의 신앙생활을 다시 성찰해볼 수 있습니다. 박사들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입니다. 아마 서로 다른 곳에서 진리를 찾던 그들은 어느 날 새로운 큰 별이 나타난 것을 깨닫습니다. 그들은 그 별이 참된 진리를 알리는 빛이라는 것을 알고 그 빛을 따라서 예루살렘까지 왔습니다. 그 과정은 길고 험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노력했기에 예루살렘까지 온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자연 현상을 쫓아서 진리를 찾아왔지만 거기까지가 한계였습니다. 박사들이 결정적으로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구약성경을 완전히 알고 있는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했습니다. 즉 계시의 도움을 받아야 했던 것입니다. 형제 자매님, 우리는 이미 그런 과정을 거쳐서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아직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겸손하게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도움을 받는 방법은 주일 전례가 될 수도 있고 반모임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을 꾸준히 읽고 묵상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진리를 추구하지만 결정적으로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길에 들어서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바로 우리들의 도움이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행업을 통해서 보여주신 하느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알려주신 하느님의 뜻을 우리가 그들에게 알려주어야 합니다. 형제 자매님, 그런데 그렇게 어렵게 예수님을 찾아온 동방박사들이 얻은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외형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들은 아기를 보고 엎드려 경배하였고 예물을 드리고는 바로 자기 나라로 돌아갑니다. 그들은 물질적인 부를 얻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위대한 왕이 났으니까 권력을 부릴 수 있는 한 자리를 얻기 위해서 온 것도 아닙니다. 그들이 얻은 것은 단 하나 기쁨입니다. 그 기쁨이 무엇이기에 그렇게 긴 여행의 노고를 아끼지 않았고 갚진 예물까지 드렸겠습니까? 그들은 구유에 누워있는 연약한 아기가 하느님이심을 알아본 것입니다. 그들은 신앙의 눈을 가졌던 것입니다. 신앙의 눈으로 인간이 되어 오신 하느님을 알아보고 하느님의 그 크신 사랑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것은 세상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이었습니다. 만일 형제 자매님이 동방박사였다면 구유에 누워있는 아기가 하느님이심을 알아봤겠습니까? 우리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 집에서 혹은 대단히 부유한 집에서 태어난 아기 중에서 예수님을 찾았을 것입니다. 아니 아직도 그런 예수님을 찾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신앙생활에서 기쁨을 누리지 못한다면 아직 찾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먼저 신앙의 눈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흔히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느님께서 내가 돈을 많이 벌게 해주시거나 큰 권력을 차지하거나 아주 명예로운 사람으로 만들어주기를 원합니다. 그런 사람은 대단한 행운을 기대하기 때문에 평범한 일상에서 기쁨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형제 자매님은 혹시 네잎클로버를 뽑아본 적이 있습니까? 네잎클로버의 꽃말이 행운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따려고 노력하고 또 따게 되면 책에 꽂아서 예쁘게 말립니다. 그리고 늘 가지고 다니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네잎클로버를 따기 위해서 많은 세잎클로버를 밟기도 했고 네잎인줄 알고 땄다가 세잎이면 바로 버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밟고 버린 세잎 클로버의 꽃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행복입니다. 하나의 행운을 잡기 위해서 지천에 깔려있는 행복을 무시했던 것입니다. 형제 자매님, 우리의 일상생활이나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단한 행운을 기대하며 사는 사람은 수없이 다가오는 행복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다 놓쳐버립니다. 뭔가 대단한 체험을 기대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무수히 다가오는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따라서 기쁨을 누리지도 못합니다. 형제 자매님, 우리에겐 초라한 마구간의 구유에 누운 연약한 아기를 예수님으로 알아본 동방박사들이 가졌던 신앙의 눈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신앙의 눈을 지닐게 될 때 우리눈 일상사 작은 일들 안에서 하느님의 손길을 볼 수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하느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 지 알 수 있고 매일 기쁨에 찬 생활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 기쁨에 찬 생활이 바로 이웃에게 예수님을 알려주는 빛이 될 것입니다. 형제 자매님, 하느님은 바로 형제 자매님을 위해서 형제 자매님에 대한 사랑 때문에 연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대구 가톨릭대학교 한티 영성관에서 안드레아 신부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