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전삼용 신부님

성령의 불을 끄지 맙시다|………◎

수성구 2018. 1. 26. 04:48

성령의 불을 끄지 맙시다|………◎ 전삼용♡신부

           



성령의 불을 끄지 맙시다


성 티모테오와 성 티토 주교 기념일
복음: 루카 10,1-9

저희 동네는 중학교 2학년 때 전기가 들어왔습니다. 그 전에는 촛불을 켜고 공부를 해야 했습니다. 전기가 들어오면 더 공부를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처음 전기가 들어온 날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너무 환해서 눈이 부셨습니다. 처음으로 배터리가 다는 걱정 없이 텔레비전을 볼 수도 있었습니다. 비디오까지 있어서 영화들을 빌려 보는 재미에 쏙 빠졌습니다. 하루 종을 그것만 붙들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전기가 들어오니 공부를 더 안 하네.”

그러고 보니 전기가 좋은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그 이전에 아무 것도 없을 때는 촛불 켜고서라도 공부를 했는데, 전기가 들어오니 놀 거리들이 너무나 많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절로 공부에 대한 열정이 식어졌던 것입니다. 내 안의 열정은 내가 어떤 것을 제공하느냐에 따라 식을 수도 있고 활활 탈 수도 있습니다.

두 화분이 있습니다. 한 화분에는 물을 주고 다른 화분에는 물을 주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물을 주지 않은 화분은 말라 죽어버리고 물을 준 화분은 더 자라 꽃을 피웠을 것입니다.

세상 욕심도 계속 충족시켜주지 않으면 나중엔 시들어버립니다. 돈도 가난하게 사는 버릇을 들이면 더 이상 집착하지 않게 됩니다. 사람은 적응하는 동물입니다. 처음 습관을 바꾸는 것이 힘들지 막상 6개월 정도만 그 유혹을 이길 수 있으면 그 유혹도 음식을 먹지 못하여 힘이 약해져 나에게 더 이상 유혹거리가 못 되게 됩니다. 유혹을 이기지 못하는 이유는 계속 유혹을 어떤 식으로든 충족시켜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다만 이 세상 욕심들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마음에 붙여진 성령의 불을 계속 타게 하기 위해서는 불에 타는 것들을 끊임없이 제공해 주어야 합니다. 그것은 의지적인 ‘사랑의 행위’입니다. 아무리 성령님이 불타고 있더라도 사랑의 행위로 그 힘을 북돋아주지 않으면 성령의 불은 사그라지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독서 티모테오에게 보낸 둘째 편지에서 바오로는 “ 내 안수로 그대가 받은 하느님의 은사를 다시 불태우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비겁함의 영을 주신 것이 아니라, 힘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대는 우리 주님을 위하여 증언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그분 때문에 수인이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하느님의 힘에 의지하여 복음을 위한 고난에 동참하십시오.”라고 격려합니다. 안수로 받은 성령의 은사가 바로 ‘십자가의 사랑’으로 표현되지 않을 때는 식어버리니 주의하라는 말입니다. 성령을 받고도 이 세상의 편안함만 찾다가보면 그 은사를 무력하게 만듭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서 편안하라고 불러주신 것이 아니라 사랑을 위한 십자가의 고난의 길을 가라고 불러주신 것입니다. 성령께서 원하시는 것은 사랑을 위한 십자가의 희생인데도 이 세상 오염된 것들을 추구하다보면 성령의 불은 그 습기에 못 이겨 꺼지고 맙니다.

사람이 활동할 때는 뇌에서 스트레스가 되는 베타파가 나오고 밤에 잠을 잘 때만 좋은 알파파가 나온다고 합니다. 알파파는 엔돌핀이 생성되게 해서 몸의 피로도 회복하고 병균도 물리칩니다. 엔돌핀은 암세포까지도 이기는 힘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잠만 잘 자도 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알파파가 깨어있을 때도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사랑할 때’라고 합니다. 사랑할 때 알파파가 나오고 그래서 엔돌핀이 솟아 기분이 좋고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결국 내 안의 좋은 것이 있어도 사랑을 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되고 맙니다. 사랑을 하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해져서 밤에 잠도 잘 오지 않게 됩니다. 성령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분이 부어주시는 사랑의 에너지가 멈추지 않도록 끊임없이 이웃의 행복을 위해 힘써야겠습니다.(2015)

- 전삼용 신부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