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자비는 영원하시다|………◎ 전삼용♡신부
주님의 자비는 영원하시다
연중 제4주간 월요일
이태리에는 ‘징가리’라고 하는 부랑인들이 있습니다. 한 번은 징가리 몇 명의 아이들이 저에게 구걸을 하기에 돈을 주려고 주머니에 손을 넣어 어느 정도는 꺼내고 어느 정도는 주머니에 남겨 놓았습니다. 그리고 앞에 있는 아이들에게 돈을 주는데 뒤에서 다른 아이들의 손이 제 호주머니로 들어와 남을 돈을 빼 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손을 쳤더니 지폐들이 땅에 떨어졌습니다.
아이 때부터 훔치며 사는 것에 길들여진 아이들은 자신들에게 도움을 주려고 하는 사람에게도 돈을 훔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도 돈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훔치려 하지 않아도 나누어 주려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그런다고 그들의 삶이 변화될 것 같아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시편 118편에서는 “주님의 자비는 영원하시다”라고 반복하며 노래합니다. 사람들은 ‘하느님의 자비가 영원하시다는데, 어떻게 사람이 영원히 고통 받는 것을 지켜보고만 계실 수 있는가?’라고 의문을 갖습니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또 여름이 있으면 겨울이 있는 것처럼, 천국의 행복이 있으면 지옥의 불행이 있는 것이 당연합니다. 한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과 있으면 행복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과 함께하지 않으면 불행합니다. 따라서 하느님과 함께 하는 것과 함께 하지 않는 것 그 두 가지는 함께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단지 하느님은 언제나 모든 피조물이 당신과 함께 하기를 원하시지만 인간이 원치 않을 때는 어쩔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솝우화의 당나귀처럼 주인은 꼬리를 잡고 자기편으로 끌려고 하지만 당나귀는 끝까지 낭떠러지로 향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꼬리를 잡힌 것이 싫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함께 있을 수 없습니다. 지옥에 가는 사람들은 스스로 하느님의 자비를 뿌리쳐 하느님을 떠나는 사람들입니다.
지옥이 있다는 것 때문에 하느님의 자비가 감소하지는 않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놀라운 사실이 발견됩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이름을 물어보시고, 또 그들의 청을 들어주시는 것입니다.
이름을 묻는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착한 목자는 양의 이름 하나하나를 부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마리아야!” 할 때는 마리아를 사랑한다는 뜻인 것입니다. 마귀 군단의 청을 들어주십니다. 이는 실로 놀라운 사실입니다. 하느님은 항상 열려있습니다. 마귀라도 회개하면 당장 받아들일 자비 자체이신 분이 하느님이십니다. 마귀가 제일 싫어하는 것은 자신이 가장 증오하는 존재인 하느님이 아직도 자신들을 사랑하셔서 자신들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입니다.
또한 오늘 예수님은 마귀 군단의 청을 들어줍니다. 어떤 때는 믿음이 강했던 여인이 쫓아오며 딸의 병을 고쳐달라고 할 때 ‘자녀에게 줄 빵을 개에게 줄 수 없다’며 뿌리치기도 하시는 분이었지만, 오늘은 마귀들의 청을 기꺼이 들어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가 청하는 것은 더러운 돼지에게로 들어가겠다는 것입니다. 용서해 달라고 절대 청하지 않습니다. 마치 가리옷 유다가 예수님께 고개 숙이기를 원치 않아 스스로 목을 맨 상황과 같습니다. 이들은 끝까지 예수님께로부터 도망치려합니다. 돼지는 당시의 부정한 동물이었습니다.
아직까지도 깨끗함보다는 부정한 곳을 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절벽에서 떨어져 호수에 빠져죽고 맙니다. 물은 지옥을 상징합니다. 적어도 물속에 빠져들던 베드로는 예수님께 손을 뻗쳤습니다. 그러나 마귀들은 그러지 않습니다. 끝까지 예수님께 손을 뻗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인들이 원해서 영원히 물속에 가라앉게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영원하십니다. 마귀들에게까지 당신의 자비는 영원히 열려있고 그들의 이름을 부르고 청을 들어주실 자세가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이 기적을 보고도 예수님을 떠나달라고 하는 게라사 지방 사람들처럼 본인들 스스로가 하느님과 함께 하기를 원치 않는 것입니다. 증오의 대상인 하느님과 함께 있는 고통보다는, 차라리 지옥의 고통을 선택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자비하시지 않은 것이 아니라, 마귀가 된 존재들의 청까지도 들어주려 하시는 그리스도께 용서를 청하지 않는 것이 더 무자비한 것입니다. 자신들이 지옥에 가더라도 그리스도의 마음을 아프게 하려는 존재들이 더 무자비한 것입니다. 우리 또한 영원히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 드리는 무자비한 사람이 되지 않을뿐더러, 하느님의 자비가 영원하시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해야겠습니다.(2012)
- 전삼용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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