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새벽을 열며

2018년 1월 6일 주님 공현 전 토요일

수성구 2018. 1. 6. 07:34

2018년 1월 6일 주님 공현 전 토요일|새벽을 열며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8년 1월 6일 주님 공현 전 토요일

제1독서 1요한 5,5-13

사랑하는 여러분, 5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 6 그분께서 바로 물과 피를 통하여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물만이 아니라 물과 피로써 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증언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곧 진리이십니다. 7 그래서 증언하는 것이 셋입니다. 8 성령과 물과 피인데, 이 셋은 하나로 모아집니다. 9 우리가 사람들의 증언을 받아들인다면,
하느님의 증언은 더욱 중대하지 않습니까? 그것이 하느님의 증언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에 관하여 친히 증언해 주셨습니다. 10 하느님의 아드님을 믿는 사람은 이 증언을 자신 안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는 자는 하느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에 관하여 하신 증언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1 그 증언은 이렇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고 그 생명이 당신 아드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12 아드님을 모시고 있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고, 하느님의 아드님을 모시고 있지 않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13 내가 여러분에게, 곧 하느님의 아드님의 이름을 믿는 이들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영원한 생명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복음 마르 1,7-11

그때에 요한은 7 이렇게 선포하였다.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내 뒤에 오신다. 나는 몸을 굽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 8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9 그 무렵에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나자렛에서 오시어, 요르단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 10 그리고 물에서 올라오신 예수님께서는 곧 하늘이 갈라지며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당신께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 11 이어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어느 병원에 치료를 위해 온 두 명의 남자 환자가 왔습니다. 그중 한 명은 일을 하다가 본인의 실수로 손가락 두 마디를 잃었고, 또 다른 하나는 교통사고로 다리를 크게 다쳐서 평생 휠체어를 타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 환자였습니다. 모두가 좋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런데 손가락을 잃은 남자가 병원에 오면 모든 직원들이 긴장을 하고 피하려고만 합니다. 왜냐하면 손가락 없는 자신을 비관하면서 끊임없이 세상에 대한 불평불만을 늘어놓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가족들을 어떻게 부양해야 할지, 사람들의 시선을 어떻게 이기면서 살아갈 수 있느냐고 하면서 신세한탄을 늘어놓습니다.

하지만 교통사고로 다리를 크게 다친 분이 오면 모든 의료진들이 도움을 주려고 다가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힘든 상황인데도 웃음을 잃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누가 치료 중에 이렇게 물었습니다.

“이렇게 갑자기 장애인이 되었는데 힘들지 않으세요?”

그러자 그는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남들보다 조금 더 빨리 된 것에 지나지 않아요.”

고통과 시련을 통한 좌절의 순간은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그런데 그 순간을 대하는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다른 것 같습니다. 어떤 분은 긍정적으로 잘 극복하지만, 또 어떤 분은 부정적으로 바라보면서 더욱 더 힘든 좌절의 순간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당연히 어렵고 힘들겠지만 긍정적인 삶을 선택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그 장면을 떠올려보십시오.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입니다. 아무런 죄가 없으신 분께서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는 세례자 요한에게 회개의 세례를 받는다는 것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부정적인 생각들을 모두 버리고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만 집중하셨습니다. 그래서 당신 스스로 모범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 순간 하늘에서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지금 우리의 모습에 하느님께서는 어떤 소리를 들려주실까요? 바로 지금 내 모습에서 그 소리가 결정될 것입니다. 부정적인 모습보다는 긍정적인 모습이, 세상의 관점이 아닌 주님의 관점을 따르는 모습에서, 자기의 욕심과 이기심을 채우기보다 이웃에게 적극적인 사랑을 실천하는 모습이 될 때, 하느님께서는 내 마음에 든다고 하시지 않을까요?
위대한 성과는 힘이 아닌 인내의 산물이다(새뮤얼 존슨).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셨던 요르단 강입니다.

걱정을 받아들이는 행복한 사람이 되세요.

걱정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신부님, 말이야 쉽지요. 그런데 어떻게 그것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이러한 작업을 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우선 종이 한 장을 펼쳐 놓고서 나의 걱정을 쫙 써보시길 바랍니다. 참 많은 걱정들을 적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뒤에 그 걱정거리를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항목별로 분류해 보십시오. 즉, 비슷한 것끼리 묶어보십시오.

많은 줄 알았는데 모아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걱정이 지나쳤다는 것이 아닐까요?

행복해지고 싶다면 행복하다고 주위 사람들에게 자주 말하면서 다녀야 한다고 합니다. 사실 우리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거짓말쟁이라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한 말에 대해서 어떻게든 책임을 지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따라서 행복하다는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서 행복한 상황을 끊임없이 만들려고 노력하게 된다고 합니다.


지금 갑곶성지에서 대품피정 중입니다. 기도부탁드려요. 작년 서품식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