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새벽을 열며

2017년 11월 22일 성녀 체칠리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

수성구 2017. 11. 22. 05:50

2017년 11월 22일 성녀 체칠리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새벽을 열며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7년 11월 22일 성녀 체칠리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

제1독서 2마카 7,1.20-31

그 무렵 1 어떤 일곱 형제가 어머니와 함께 체포되어 채찍과 가죽끈으로 고초를 당하며, 법으로 금지된 돼지고기를 먹으라는 강요를 임금에게서 받은 일이 있었다.
20 특별히 그 어머니는 오래 기억될 놀라운 사람이었다. 그는 일곱 아들이 단 하루에 죽어 가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주님께 희망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용감하게 견디어 냈다. 21 그는 조상들의 언어로 아들 하나하나를 격려하였다. 고결한 정신으로 가득 찬 그는 여자다운 생각을 남자다운 용기로 북돋우며 그들에게 말하였다.
22 “너희가 어떻게 내 배 속에 생기게 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너희에게 목숨과 생명을 준 것은 내가 아니며, 너희 몸의 각 부분을 제자리에 붙여 준 것도 내가 아니다. 23 그러므로 사람이 생겨날 때 그를 빚어내시고 만물이 생겨날 때 그것을 마련해 내신 온 세상의 창조주께서, 자비로이 너희에게 목숨과 생명을 다시 주실 것이다. 너희가 지금 그분의 법을 위하여 너희 자신을 하찮게 여겼기 때문이다.”
24 안티오코스는 자기가 무시당하였다고 생각하며, 그 여자의 말투가 자기를 비난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스러워하였다. 막내아들은 아직 살아 있었다. 임금은 그에게 조상들의 관습에서 돌아서기만 하면 부자로 만들어 주고 행복하게 해 주며 벗으로 삼고 관직까지 주겠다고 하면서, 말로 타이를 뿐만 아니라 약속하며 맹세까지 하였다.
25 그러나 그 젊은이는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래서 임금은 그 어머니를 가까이 불러 소년에게 충고하여 목숨을 구하게 하라고 강권하였다.
26 임금이 줄기차게 강권하자 어머니는 아들을 설득해 보겠다고 하였다. 27 그러나 어머니는 아들에게 몸을 기울이고 그 잔인한 폭군을 비웃으며 조상들의 언어로 이렇게 말하였다.
“아들아, 나를 불쌍히 여겨 다오. 나는 아홉 달 동안 너를 배 속에 품고 다녔고 너에게 세 해 동안 젖을 먹였으며, 네가 이 나이에 이르도록 기르고 키우고 보살펴 왔다.
28 얘야, 너에게 당부한다. 하늘과 땅을 바라보고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살펴보아라. 그리고 하느님께서, 이미 있는 것에서 그것들을 만들지 않으셨음을 깨달아라. 사람들이 생겨난 것도 마찬가지다.
29 이 박해자를 두려워하지 말고 형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죽음을 받아들여라. 그래야 내가 그분의 자비로 네 형들과 함께 너를 다시 맞이하게 될 것이다.”
30 어머니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젊은이가 말하였다. “당신들은 무엇을 기다리는 것이오? 나는 임금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겠소. 모세를 통하여 우리 조상들에게 주어진 법에만 순종할 뿐이오. 31 히브리인들을 거슬러 온갖 불행을 꾸며 낸 당신은 결코 하느님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오.”


복음 루카 19,11ㄴ-28

그때에 11 예수님께서는 비유 하나를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신 데다, 사람들이 하느님의 나라가 당장 나타나는 줄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2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어떤 귀족이 왕권을 받아 오려고 먼 고장으로 떠나게 되었다. 13 그래서 그는 종 열 사람을 불러 열 미나를 나누어 주며, ‘내가 올 때까지 벌이를 하여라.’ 하고 그들에게 일렀다. 14 그런데 그 나라 백성은 그를 미워하고 있었으므로 사절을 뒤따라 보내어, ‘저희는 이 사람이 저희 임금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하고 말하게 하였다.
15 그러나 그는 왕권을 받고 돌아와, 자기가 돈을 준 종들이 벌이를 얼마나 하였는지 알아볼 생각으로 그들을 불러오라고 분부하였다.
16 첫째 종이 들어와서, ‘주인님, 주인님의 한 미나로 열 미나를 벌어들였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7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한 종아! 네가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열 고을을 다스리는 권한을 가져라.’
18 그다음에 둘째 종이 와서, ‘주인님, 주인님의 한 미나로 다섯 미나를 만들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9 주인은 그에게도 일렀다. ‘너도 다섯 고을을 다스려라.’
20 그런데 다른 종은 와서 이렇게 말하였다. ‘주인님, 주인님의 한 미나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수건에 싸서 보관해 두었습니다. 21 주인님께서 냉혹하신 분이어서 가져다 놓지 않은 것을 가져가시고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어 가시기에, 저는 주인님이 두려웠습니다.’
22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이 악한 종아, 나는 네 입에서 나온 말로 너를 심판한다. 내가 냉혹한 사람이어서 가져다 놓지 않은 것을 가져가고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어 가는 줄로 알고 있었다는 말이냐? 23 그렇다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넣지 않았더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돌아왔을 때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되찾았을 것이다.’ 24 그러고 나서 곁에 있는 이들에게 일렀다. ‘저자에게서 그 한 미나를 빼앗아 열 미나를 가진 이에게 주어라.’
25 ─ 그러자 그들이 주인에게 말하였다. ‘주인님, 저이는 열 미나나 가지고 있습니다.’ ─
26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27 그리고 내가 저희들의 임금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은 그 원수들을 이리 끌어다가, 내 앞에서 처형하여라.’”
28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고 앞장서서 예루살렘으로 오르는 길을 걸어가셨다.



요즘 청년들 사이에 ‘이생망’이라는 신조어가 있다고 합니다. 무슨 뜻일까요? 대부분의 어른들은 모르시겠지만, 청년들은 대부분 알더군요. ‘이번 생은 망했다.’의 줄임말이라고 합니다. 금수저로 태어나지 못해서... 한국 사회에서 태어났다고.... 그래서 이번 생이 망했다는 것입니다. 조금만 뒤쳐져도, 또 약간의 고통과 시련이 주어지면 ‘망했다.’, ‘실패다.’라면서 좌절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꼭 안정적으로 살아야 성공의 삶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요?

솔직히 실패를 발판 삼아서 훨씬 더 탄탄하게 성장하는 사람들을 더 많이 보게 됩니다. 저 역시 많은 실패를 통해서 지금의 제가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지금 저는 참 많은 곳에서 강의를 합니다. 신학교, 성당, 방송국, 기관 등에서 저를 불러주셔서 강의를 하고 있지요. 강사생활만 거의 17년을 했습니다. 오랜 시간이 저를 능숙하게 만들었고 그러다보니 이제는 강의를 못한다는 평을 거의 받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가 처음 강의를 할 때에도 지금과 같았을까요? 아닙니다. 1시간 강의하는 것도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중간에 강의록이 생각나지 않아서 어색한 웃음을 지으면서 “강의록 좀 보겠습니다.”라면서 엉망진창의 강의를 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계속된 실패였습니다. 그러한 실패들이 모아지면서 지금은 조금 괜찮아진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지금도 실패를 계속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실패는 저를 더 나아지는 모습으로 만드는 영양분입니다.

‘이생망’이라는 생각도 또 이런 쓸데없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실패를 경험하면 ‘더 나빠질 일도 없겠지. 이제 더 좋아질 일만 있겠구나.’라는 마음으로 살아보면 어떨까요? 이러한 긍정적인 마음으로 살아가면서 지금에 충실한 사람들을 주님께서도 도와주십니다.

오늘은 미나의 비유입니다. 열 명의 종들에게 각각 한 미나씩을 나눠주지요. 그리고 주인이 왕권을 받고 돌아왔는데, 한 명의 종만이 그 한 미나를 수건에 싸서 보관하고 있다고 그대로 돌려드리지요. 이 모습에 주인은 악한 종이라고 꾸짖으면서 가지고 있던 한 미나를 열 미나를 가진 사람에게 주라고 명령합니다. 주인에게 손해를 끼친 것도 아닌데, 안전을 위해서 그냥 가지고 있었는데 왜 화를 내고 꾸짖는 것일까요?

바로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들을 향한 말씀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능력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으름이 오히려 악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실패를 두려워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모습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실패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려는 노력과 정성을 보시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해야 할 것들이 참 많습니다. 해야 할 것들을 귀찮다는 이유로, 재능이 없다는 이유로, 힘들다는 이유들로 하지 않는다면 분명히 주님의 뜻과 반대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는 사상이나 힘으로 승리한 사람들을 영웅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고귀한 미덕을 가진 사람을 영웅이라고 부르겠습니다(로맹 롤랑).


미나의 비유


직장생활이 너무 힘들죠?

직장생활이 너무나 힘들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을 종종 봅니다. 하긴 우리나라의 직장인 행복도가 OECD 국가 중에서 최하위권이라고 하니,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이 당연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힘들다는 분에게 “직장이 그렇게 힘들면 그만두지 왜 계속해서 직장생활을 하세요?”라고 묻습니다. 그러면 ‘세상 물정 참 모르시네.’라는 표정을 지으시면서 “직장생활을 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잖아요.”라고 말씀하십니다. 가정의 생계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힘들지 않고 직장생활을 할 수가 있을까요?

밥 먹는 것을 한 번 생각해보세요. 밥 먹는 것이 지겹고 힘들다고 오늘부터 밥 먹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아니지요. 당연히 그리고 무조건 먹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만약 입맛이 없을 때, 또는 식사 준비하는 것이 힘들 때에는 어떻게 하십니까? 외식이나 맛있는 식사를 준비를 해서 밥 먹는 즐거움을 만들지 않습니까?

직장생활도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요? 밥 먹는 즐거움을 만드는 것처럼, 직장생활을 하는 즐거움을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즉, 지금의 자리에서 의미를 찾아간다면 어떨까요? 그렇게 어렵고 힘든 것만은 아니지 않을까요?


오늘은 체칠리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