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새벽을 열며

2017년 5월 18일 부활 제5주간 목요일|

수성구 2017. 5. 18. 06:09

2017년 5월 18일 부활 제5주간 목요일|새벽을 열며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7년 5월 18일 부활 제5주간 목요일

제1독서 사도 16,1-10

그 무렵 1 바오로는 데르베를 거쳐 리스트라에 당도하였다.
그곳에 티모테오라는 제자가 있었는데, 그는 신자가 된 유다 여자와 그리스인 아버지 사이에 태어난 아들로서, 2 리스트라와 이코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좋은 평판을 받고 있었다. 3 바오로는 티모테오와 동행하기를 원하였다. 그래서 그 고장에 사는 유다인들을 생각하여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베풀었다. 그의 아버지가 그리스인이라는 것을 그들이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4 바오로 일행은 여러 고을을 두루 다니며,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원로들이 정한 규정들을 신자들에게 전해 주며 지키게 하였다. 5 그리하여 그곳 교회들은 믿음이 굳건해지고 신자들의 수도 나날이 늘어 갔다.
6 성령께서 아시아에 말씀을 전하는 것을 막으셨으므로, 그들은 프리기아와 갈라티아 지방을 가로질러 갔다. 7 그리고 미시아에 이르러 비티니아로 가려고 하였지만, 예수님의 영께서 허락하지 않으셨다. 8 그리하여 미시아를 지나 트로아스로 내려갔다. 9 그런데 어느 날 밤 바오로가 환시를 보았다. 마케도니아 사람 하나가 바오로 앞에 서서, “마케도니아로 건너와 저희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청하는 것이었다.
10 바오로가 그 환시를 보고 난 뒤, 우리는 곧 마케도니아로 떠날 방도를 찾았다. 마케도니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이라고 확신하였기 때문이다.


복음 요한 15,18-21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하였다는 것을 알아라. 19 너희가 세상에 속한다면 세상은 너희를 자기 사람으로 사랑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이다.
20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다.’고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기억하여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으면 너희도 박해할 것이고, 내 말을 지켰으면 너희 말도 지킬 것이다. 21 그러나 그들은 내 이름 때문에 너희에게 그 모든 일을 저지를 것이다. 그들이 나를 보내신 분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문명의 발전은 대부분 창조적 재능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이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새로운 창조가 있기 전에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더해졌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보지요. 먼 곳을 가야할 때 걸어서 가는 것이 너무 느려서 ‘조금 더 편히 그리고 빨리 가는 방법을 없을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동물을 이용하고 결국은 자동차나 기차의 발명을 만들었던 것이지요. 또한 하늘을 나는 새를 바라보면서 ‘나도 하늘을 날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들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생각들이 더해져서 비행기의 발명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밖에도 지금 많은 이들이 사용하는 컴퓨터, 스마트폰, 초고속 인터넷 등도 생각들이 모여졌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이처럼 생각들이 더해지면 새로운 창조를 이룰 수 있습니다. 그만큼 생각은 강력합니다. 우리 속담 중에서도 ‘말이 씨가 된다.’라는 것이 있습니다. 말은 생각을 전달하는 수단이기 때문에, 결국 ‘생각이 씨가 된다.’라고도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생각이 모든 것의 근원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문제는 어떤 생각을 하느냐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은 부정적인 일들을 이끌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은 긍정적인 일들을 끌어들인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당연히 긍정적인 생각들, 사랑과 희망 그리고 평화 등의 좋은 생각들을 간직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삶 자체가 그렇게 흘러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이러한 긍정적인 생각들보다는 부정적인 생각들로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랑, 희망, 평화 등의 좋은 생각이 아니라, 미움, 절망, 다툼 등의 나쁜 생각과 함께 할 때가 많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실까요? 주님께서는 단 한 번도 부정적인 마음을 간직하면서 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가장 강조하신 계명이 사랑인 것을 볼 때, 우리들이 이 세상 안에서 행복하고 기쁘게 살기를 원하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왜 주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있으며, 따를 수 없는 것으로 일찌감치 포기할까요? 주님께 머무르려는 노력조차 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시는 이유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라고 하시지요. 당신의 사랑 안에 머물라는 이 명령을 기억하면서, 나의 생각부터 주님을 향해야 할 것입니다. 세상의 것들을 생각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생각하는데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합니다. 그래야 참 기쁨 안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근본적이고 가장 어려운 일은 삶 그 자체를 사랑하는 것이다. 고통스러울 때조차 삶을 사랑해야 한다. 삶이 모든 것이니까. 생명이 하느님이고 생명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다(톨스토이).


구름 위를 날고 싶다는 생각이 비행기를 만들었습니다.


진실한 친구

소크라테스가 어느 날 자신이 살 집을 짓기 위해 집터를 닦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집터가 무척 좁은 것입니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이 그에게 물었지요.

“선생님의 명성이 그토록 높으신데 어찌 이렇게 작은 집을 지으려고 하십니까? 조금 더 크게 지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이 작은 집도 진실한 친구들로만 채우기엔 너무 넓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진실한 친구가 많습니까?

어제 고등학교 친구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문상을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날 수가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서 처음 본 친구들도 많았지요. 그러니까 한 30년 만에 만난 것입니다. 친구들은 사제가 되어 있는 저를 신기하게 바라보면서, 이제 좀 자주 보자고 합니다.

부고 소식을 듣고는 급한 일들을 모두 접어두고서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친구들의 모습들을 보면서, 제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과연 다른 친구들에게 진실한 친구일까요? 솔직히 내 곁에 진실한 친구가 많기만을 바랬었지, 스스로 먼저 진실한 친구가 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의 친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