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새벽을 열며

2017년 5월 17일 부활 제5주간 수요일

수성구 2017. 5. 17. 07:04

2017년 5월 17일 부활 제5주간 수요일|새벽을 열며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7년 5월 17일 부활 제5주간 수요일

제1독서 사도 15,1-6

그 무렵 1 유다에서 어떤 사람들이 내려와, “모세의 관습에 따라 할례를 받지 않으면 여러분은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고 형제들을 가르쳤다. 2 그리하여 바오로와 바르나바 두 사람과 그들 사이에 적지 않은 분쟁과 논란이 일어나, 그 문제 때문에 바오로와 바르나바와 신자들 가운데 다른 몇 사람이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원로들에게 올라가기로 하였다.
3 이렇게 안티오키아 교회에서 파견된 그들은 페니키아와 사마리아를 거쳐 가면서, 다른 민족들이 하느님께 돌아선 이야기를 해 주어 모든 형제에게 큰 기쁨을 주었다. 4 그들은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교회와 사도들과 원로들의 영접을 받고, 하느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해 주신 모든 일을 보고하였다.
5 그런데 바리사이파에 속하였다가 믿게 된 사람 몇이 나서서, “그들에게 할례를 베풀고 또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고 명령해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6 사도들과 원로들이 이 문제를 검토하려고 모였다.


복음 요한 15,1-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2 나에게 붙어 있으면서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다 쳐 내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모두 깨끗이 손질하시어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
3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한 말로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 4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6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잘린 가지처럼 밖에 던져져 말라 버린다. 그러면 사람들이 그런 가지들을 모아 불에 던져 태워 버린다.
7 너희가 내 안에 머무르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무르면, 너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청하여라.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8 너희가 많은 열매를 맺고 내 제자가 되면, 그것으로 내 아버지께서 영광스럽게 되실 것이다.”



저는 형제가 많습니다. 제 위로 형과 누나가 합쳐서 다섯이나 됩니다. 지금이야 형제 많은 것이 너무나도 좋지만, 사실 어렸을 때에는 형제 많은 것이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종종 학교에서 호구조사를 했는데, 한 명에서 시작해서 보통 다섯 명 정도까지 물어보신 뒤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제는 더 없지?”

그때 저는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손을 들어서 “여기 6명 있는데요?”라고 말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면 선생님께서는 “너희 집 부자인가 보다.”라고 웃으며 말씀하세요. 당시만 해도 정부에서 인구 억제 정책을 펼치고 있었습니다.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1960년대),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71년),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78년) 등의 표어는 형제 많은 저를 괜히 죄인인 것처럼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인구 억제 정책이 60년대부터 시작해서 80년대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그런데 90년대에 들어서면서 국민들의 저 출산 경향으로 인해 결국 90년대 중반에 인구 억제 정책을 공식 폐지하였고, 2004년부터는 ‘아빠, 혼자는 싫어요. 엄마, 저도 동생을 갖고 싶어요.’(2004년 6월)라는 표어가 등장하는 출산 장려 정책으로 전환하게 됩니다.

요즘에는 어떤가요? 자녀를 넷만 낳아도 ‘애국자’라고 합니다. 그러나 20년 전에 자녀를 넷 낳으면 뭐라고 했을까요? ‘짐승’이라고 했습니다. 20년 만에 짐승에서 애국자로 변한 것이지요. 불과 20년 만에 세상은 확 바뀌었습니다.

이 세상은 이렇게 변화의 속도가 빠릅니다. 하긴 20년 전에 상상도 못했던 것들이 지금 현재에는 일상적인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주님의 말씀은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목소리로 우리들에게 힘 있게 다가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나는 참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나에게 붙어 있으면서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다 쳐 내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모두 깨끗이 손질하시어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과학과 문명의 발달로 주님의 말씀이 더 이상 우리에게 힘 있게 다가오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뜻보다는 세상의 뜻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과연 세상의 것들을 더욱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반드시 행복할까요? 풍요로움을 얻었지만 오히려 정신적으로는 피폐해져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 붙어 있다는 것은 곧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의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들을 일순위에 놓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계명을 일순위에 놓고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야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과거 역사를 통해서 한 번도 변하지 않은 사실이었습니다.
날씨가 좋은 날엔 모른다. 이렇게 좋은 날이 평생에 그리 많지 않다는 걸(이동영).


제 아버지 팔순 때의 가족사진입니다. 다 비슷하죠? ㅋㅋㅋ


행복을 위하여...

에디슨은 2390번의 실패 끝에 필라멘트를 만들어냈고, 에이브라함 링컨은 초등학교 중퇴 후 상,하원에 네 번 낙선한 뒤에 비로소 당선되었습니다. 아이는 평균 2000번을 넘어져야 비로소 걸을 수 있고, 겨울에 자란 나무의 나이테 부분은 여름에 자란 부분보다 훨씬 더 단단합니다.

행복이란 고통과 시련 없는 것이 아니라 이 또한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하면서 지금을 기쁘게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여론조사기관인 리서치앤리서치에서 성인남녀들을 대상으로 ‘중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간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를 조사한 결과를 보고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조사 대상의 66.9%가 ‘공부를 더 하고 싶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만약 과거의 행적을 바꿀 수만 있다면 우리는 행복하고 근사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겠지요.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느 누구도 과거로 되돌아가 그것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멋진 미래는 지금 만들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바로 지금이 머지않은 미래에는 과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지금을 기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아마 행복으로 나아가는 지름길은 다음의 세 가지가 아닐까요?

첫째, 나와 남을 비교하는 일을 멈춰야 합니다. 둘째, 밖에서 찾으려 하지 말고 내 마음 안에서 찾아야 합니다. 셋째, 지금 이 순간 세상의 아름다움을 찾아서 느껴야 합니다.


포도나무, 가지에 붙어 있어야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