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복음

2015년 7월 6일 연중 제14주간 월요일

수성구 2015. 7. 6. 07:55

 

2015년 7월 6일 연중 제14주간 월요일

제1독서 창세 28,10-22ㄱ

그 무렵 10 야곱은 브에르 세바를 떠나 하란으로 가다가, 11 어떤 곳에 이르러 해가 지자 거기에서 밤을 지내게 되었다. 그는 그곳의 돌 하나를 가져다 머리에 베고 그곳에 누워 자다가, 12 꿈을 꾸었다.
그가 보니 땅에 층계가 세워져 있고 그 꼭대기는 하늘에 닿아 있는데, 하느님의 천사들이 그 층계를 오르내리고 있었다. 13 주님께서 그 위에 서서 말씀하셨다.
“나는 너의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느님이며 이사악의 하느님인 주님이다. 나는 네가 누워 있는 이 땅을 너와 네 후손에게 주겠다. 14 네 후손은 땅의 먼지처럼 많아지고, 너는 서쪽과 동쪽 또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 나갈 것이다. 땅의 모든 종족들이 너와 네 후손을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
15 보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면서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켜 주고, 너를 다시 이 땅으로 데려오겠다. 내가 너에게 약속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않겠다.”
16 야곱은 잠에서 깨어나, “진정 주님께서 이곳에 계시는데도 나는 그것을 모르고 있었구나.” 하면서, 17 두려움에 싸여 말하였다. “이 얼마나 두려운 곳인가! 이곳은 다름 아닌 하느님의 집이다. 여기가 바로 하늘의 문이로구나.”
18 야곱은 아침 일찍 일어나, 머리에 베었던 돌을 가져다 기념 기둥으로 세우고 그 꼭대기에 기름을 부었다. 19 그러고는 그곳의 이름을 베텔이라 하였다. 그러나 그 성읍의 본이름은 루즈였다.
20 그런 다음 야곱은 이렇게 서원하였다. “하느님께서 저와 함께 계시면서 제가 가는 이 길에서 저를 지켜 주시고, 저에게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마련해 주시며, 21 제가 무사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해 주신다면, 주님께서는 저의 하느님이 되시고, 22 제가 기념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은 하느님의 집이 될 것입니다.”


복음 마태 9,18-26

18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계실 때, 한 회당장이 와서 예수님께 엎드려 절하며, “제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그러나 가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면 살아날 것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19 예수님께서는 일어나시어 제자들과 함께 그를 따라가셨다.
20 그때에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는 여자가 예수님 뒤로 다가가, 그분의 옷자락 술에 손을 대었다. 21 그는 속으로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하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22 예수님께서 돌아서시어 그 여자를 보시며 이르셨다. “딸아, 용기를 내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바로 그때에 그 부인은 구원을 받았다.
23 예수님께서 회당장의 집에 이르시어, 피리를 부는 이들과 소란을 피우는 군중을 보시고, 24 “물러들 가거라. 저 소녀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예수님을 비웃었다.
25 군중이 쫓겨난 뒤에 예수님께서 안으로 들어가시어 소녀의 손을 잡으셨다. 그러자 소녀가 일어났다. 26 그 소문이 그 지방에 두루 퍼졌다.



전에 어떤 교육을 받으러 갔다가 함께 팀 작업을 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사실 이 과제를 수행하는 것이 쉽지 않았고, 더군다나 처음 해보는 것이어서 더욱 더 막막한 상황이었지요. 왜냐하면 함께 연기를 해야 하는 것이었거든요. 어떤 분께서 이런 내용으로 해 보면 어떻겠냐고 하면서, 각자에게 역할 분담을 해 주시는데 제게는 ‘사채업자’ 역할을 맡으라는 합니다. 우락부락한 모습에 또한 험악한 말까지 하는 사채업자 역할을 담당하라는데, 낯선 이 역할을 도저히 할 수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꼭 제가 해야 해요?”라고 어색한 웃음을 지으면서 이야기했지요. 정말로 그 자리를 도망가고만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만 이렇게 황당한 역할이 주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제 옆에 계신 자매님은 ‘치매 걸린 할아버지’라는 역할이 주어졌거든요. 저는 이 분 역시 저와 똑같은 심정일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이 대본을 함께 바꾸자는 생각으로 이 분에게 먼저 물었습니다.

“맡겨진 역할이 마음에 드세요?”

이 물음에 뜻밖의 대답을 하시는 것입니다.

“정말로 재미있을 것 같아요. 치매 걸린 할아버지 역할, 좋아요.”

저는 이런 역할을 해 봤느냐고 다시 물었더니, 이제까지 한 번도 연기를 해보지 않았지만 처음 해 보는 것이니까 신나고 재미있을 것 같다는 것입니다. 이 분께서는 모든 일에 적극적이셨습니다. 어떤 일이든 항상 먼저 솔선수범을 하면서 적극적으로 임하셨고, 그러면서도 불평이나 불만을 던지시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은 늘 “너무 재미있지 않아요?”라는 것입니다.

새로운 일에 대해 ‘좋은 경험이야’라고 하면서 기쁘게 받아들이는 사람과 새로운 일에 대해 ‘과연 할 수 있을까?’라며 방아적인 자세를 취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마 전자는 인생이 즐겁고 모험으로 가득 차 있으며, 후자는 인생이 두렵고 고단한 고행으로만 다가올 것입니다. 어떤 자세를 취하느냐에 따라 인생을 맞이하는 모습이 달라진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인생을 어떻게 맞이하고 계십니까?

오늘 복음에 한 회당장이 나타나 “제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그러나 가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면 살아날 것입니다.” 말하지요. 죽었으면 모든 것이 끝났다고 포기할 수도 있는 상황이지요. 그러나 이 회당장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습니다. 적극적으로 주님 앞에 나아갔기에 죽은 딸을 다시 살릴 수 있었습니다. 또한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았던 여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열두 해 동안 병을 고치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을 했겠습니까? 이제는 포기할 만도 하지요. 그러나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주님의 옷자락 술에 손을 대었기에 병을 고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을 바라보면서 기쁘게 받아들이는 적극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늘 주님과 함께 할 수 있으며, 주님으로부터 필요한 은총의 선물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다시금 떠올려 보았으면 합니다. 나의 인생을 어떻게 맞이하겠습니까?

위인이나 위인의 조건에 대한 논쟁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스스로 위인이 되라(마르쿠스 아우릴리우스 안토니우스).


도심 속을 걷다가 우연히 바라 본 하늘입니다.


남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어떤 분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이 분이 어느 날 아는 지인과 함께 점심식사를 했는데, 함께 식사하신 지인께서 식사 값을 모두 내신 것입니다. 점심식사비가 고스란히 남게 된 상황인 것이지요. 그리고 오후에 운전을 해서 고속도로 요금소를 통과하는데 문득 고스란히 남게 된 점심식사비를 남을 위해서 사용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그래서 통과 요금이 900원인 곳에서 10,000원을 내놓고 거스름돈으로 100원만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지요.

“제 뒤에 오는 차 10대 비용을 제가 쏠게요.”

얼마 안 되는 금액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남을 기쁘게 할 수 있는 소중한 금액이 될 수도 있는 것이지요. 또 어떤 분은 주머니에 5,000원이 남아 있어서 이것으로 남을 기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다가 5,000원짜리 유자차를 사서 회사 동료들에게 대접했다고 하더군요.

생각해보니 적은 금액을 가지고도 남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것들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나만을 생각하니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수만 가지 방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남에게 기쁨을 전해주면 그 상대방만 기분이 좋을까요? 그 모습에 자기 자신이 더 큰 기쁨을 얻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자주 체험하게 됩니다.

남을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을 실천할 수 있는 오늘이 되었으면 합니다. 커다란 기쁨 속에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랜만에 찾은 인천 답동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