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복음

빠다킹신부와 새벽을열며/2015년 6월 30일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수성구 2015. 6. 30. 06:42

빠다킹신부와 새벽을열며/2015년 6월 30일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2015년 6월 30일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제1독서 창세 19,15-29

그 무렵 15 천사들이 롯을 재촉하며 말하였다.
“자, 소돔에 벌이 내릴 때 함께 휩쓸리지 않으려거든, 그대의 아내와 여기에 있는 두 딸을 데리고 어서 가시오.” 16 그런데도 롯이 망설이자 그 사람들은 롯과 그의 아내와 두 딸의 손을 잡고 성읍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주님께서 롯에게 자비를 베푸셨기 때문이다.
17 그들은 롯의 가족을 밖으로 데리고 나와 말하였다.
“달아나 목숨을 구하시오. 뒤를 돌아다보아서는 안 되오. 이 들판 어디에서도 멈추어 서지 마시오. 휩쓸려 가지 않으려거든 산으로 달아나시오.”
18 그러나 롯은 그들에게 말하였다.
“나리, 제발 그러지 마십시오. 19 이 종이 나리 눈에 들어, 나리께서는 이제껏 저에게 하신 것처럼 큰 은혜를 베푸시어 저의 목숨을 살려 주셨습니다. 그렇지만 재앙에 휩싸여 죽을까 두려워, 저 산으로는 달아날 수가 없습니다. 20 보십시오, 저 성읍은 가까워 달아날 만하고 자그마한 곳입니다. 제발 그리로 달아나게 해 주십시오. 자그마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제 목숨을 살릴 수 있겠습니다.”
21 그러자 그가 롯에게 말하였다. “좋소. 내가 이번에도 그대의 얼굴을 보아 그대가 말하는 저 성읍을 멸망시키지 않겠소. 22 서둘러 그곳으로 달아나시오. 그대가 그곳에 다다르기 전까지는 내가 일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오.” 그리하여 그 성읍을 초아르라 하였다. 23 롯이 초아르에 다다르자 해가 땅 위로 솟아올랐다.
24 그때 주님께서 당신이 계신 곳 하늘에서 소돔과 고모라에 유황과 불을 퍼부으셨다. 25 그리하여 그 성읍들과 온 들판과 그 성읍의 모든 주민, 그리고 땅 위에 자란 것들을 모두 멸망시키셨다. 26 그런데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다보다 소금 기둥이 되어 버렸다.
27 아브라함이 아침 일찍 일어나, 자기가 주님 앞에 서 있던 곳으로 가서 28 소돔과 고모라와 그 들판의 온 땅을 내려다보니, 마치 가마에서 나는 연기처럼 그 땅에서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29 하느님께서 그 들판의 성읍들을 멸망시키실 때, 아브라함을 기억하셨다. 그래서 롯이 살고 있던 성읍들을 멸망시키실 때, 롯을 그 멸망의 한가운데에서 내보내 주셨다.


복음 마태 8,23-27

그 무렵 23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제자들도 그분을 따랐다. 24 그때 호수에 큰 풍랑이 일어 배가 파도에 뒤덮이게 되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주무시고 계셨다. 25 제자들이 다가가 예수님을 깨우며, “주님, 구해 주십시오. 저희가 죽게 되었습니다.” 하였다.
26 그러자 그분은 “왜 겁을 내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하고 말씀하셨다. 그런 다음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27 그 사람들은 놀라워하며 말하였다. “이분이 어떤 분이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어떤 선교사가 아프리카의 어느 오지에서 선교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곳의 원주민들이 평소에 신이라고 부르며 끔찍한 마음으로 섬겼던 석상을 밧줄로 묶어 넘어뜨리는 모습을 본 것입니다. 이 선교사는 ‘드디어 나의 활동이 빛을 보는가 보다. 이들이 이제는 저 우상을 버리고 내가 알려준 주님을 믿으려고 하는 것이겠지.’라고 생각하면서 크게 기뻐했습니다. 하지만 원주민들은 넘어뜨린 석상에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글쎄 볼기짝을 몽둥이로 심하게 때리는 것입니다.

선교사는 “왜 그러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이에 추장은 사냥을 잘 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자신의 신에게 빌었는데, 그 기도를 하나도 들어주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너무나 화가 나서 이렇게 넘어뜨린 뒤에 정신 차리라고 볼기짝을 때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만을 해 주고, 나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하느님으로만 생각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원함이 채워지지 않으면 볼기짝을 때리는 앞선 이야기의 원주민들처럼 하느님께 온갖 불평불만을 던지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그들은 이야기합니다.

“하느님을 믿어도 달라지는 것이 없어요. 아니 주일에 쉬지도 못하고 더 불편하기만 해요. 그럴 바에는 하느님을 믿지 않으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의 뜻을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께서는 내게 필요한 것을 주시는 분이지, 내가 원하는 것을 주시는 도구가 아님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제자들이 큰 풍랑에 예수님을 깨워 “주님, 구해 주십시오. 저희가 죽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제자들은 이 순간 주님을 자신의 어려움을 해결해 줄 도구로만 생각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자들 중에 많은 이가 어부 출신이었기 때문이지요. 분명 그들은 스스로도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있으며, 주님을 굳게 믿는다면 주님과 함께 있음 그 자체로 두려워 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렵고 힘들다고 주님을 간절하게 찾고만 있을 뿐이었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왜 겁을 내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주님께서 언제나 함께 하심을 굳게 믿는 자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또한 주님 탓을 외치지도 않습니다. 주님께서 계시기에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노력하는 사람이 바로 믿음의 삶을 사는 사람인 것입니다.

어렵고 힘든 일들은 항상 우리 곁에 다가옵니다. 그때 우리는 두려움 속에 있습니까? 아니면 주님께서 함께 계심을 굳게 믿으며 더욱 더 내게 필요한 것을 주실 것이라는 확신 속에 살고 있습니까?

비가 오거나 햇볕이 쨍쨍한 날씨를 선택할 수는 없지만 날씨에 어떻게 대처할 지를 택할 수 있다. 그러니 좌절로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콘스탄틴 마이클 먼티스).


이렇게 잔잔한 갈릴레아 호수에 거센 풍랑이 일 때가 종종 있답니다.


내가 미루고 있는 것은?

사회적으로 성공은 했으나 인간관계가 원만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 한 사업가가 고민 끝에 현자를 찾아가서 진심어린 충고를 해달라고 청합니다. 그러자 현자는 이 사업가가 세 가지를 미루고 있음을 지적했습니다.

“첫째, 자네는 빚을 갚는 일을 미루고 있네. 내게 지어준 미소,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은 도움 갚는 일을 미루고 있는 것이지. 둘째, 용서를 구하는 일을 미루고 있네. 어떤 사람과 소원해 질 때 상대방이 먼저 화해의 손을 내밀기 원하나 내가 먼저 용서를 청해야 하네. 셋째, 사랑을 고백하는 일을 미루고 있네. 사실 이것은 절대로 미뤄서는 안 되는 것이지. 사랑을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은 상대방의 심장에 북소리 같은 강한 울림을 남기는 법이지.”

여러분은 어떠하십니까? 인간관계가 원만하지 않을 때 혹시 다른 사람에게서 그 원인을 찾으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요? 내가 미루고 있는 것을 점검해 보십시오. 힘들었던 인간관계가 해결될 수 있는 빛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따릅시다. 사진은 라테란 대성전의 벽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