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2015년 6월 2일 연중 제9주간 화요일

수성구 2015. 6. 2. 08:23


 

2015년 6월 2일 연중 제9주간 화요일

제1독서 토빗 2,9ㄴ-14

오순절 밤 나 토빗은 죽은 이들을 묻어 준 다음, 9 내 집 마당에 들어가 담 옆에서 잠을 잤는데, 무더워서 얼굴을 가리지 않았다. 10 내 머리 위 담에 참새들이 있다는 것을 나는 알지 못하였다.
그때에 뜨거운 참새 똥이 내 두 눈에 떨어지더니 하얀 막이 생기는 것이었다. 그래서 치료를 받으려고 여러 의사에게 가 보았지만, 그들이 약을 바르면 바를수록 그 하얀 막 때문에 눈이 더 멀어졌다. 그러더니 마침내는 아주 멀어 버렸다. 나는 네 해 동안 시력을 잃은 채 지냈다. 내 친척들이 모두 나 때문에 슬퍼하고, 아키카르는 엘리마이스로 갈 때까지 나를 두 해 동안 돌보아 주었다.
11 그때에 내 아내 안나는 여자들이 하는 일에 품을 팔았다. 12 아내가 물건을 만들어 주인들에게 보내면 주인들이 품삯을 주곤 하였다.
디스트로스 달 초이렛날에 아내는 자기가 짜던 옷감을 잘라서 주인들에게 보냈다. 그러자 그들은 품삯을 다 줄 뿐만 아니라 집에서 쓰라고 새끼 염소 한 마리도 주었다.
13 내가 있는 곳으로 아내가 들어올 때에 그 새끼 염소가 울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내가 아내를 불러 말하였다. “그 새끼 염소는 어디서 난 거요? 혹시 훔친 것 아니오? 주인들한테 돌려주시오. 우리에게는 훔친 것을 먹을 권리가 없소.”
14 아내가 나에게 “이것은 품삯 외에 선물로 받은 것이에요.” 하고 말하였지만, 나는 아내를 믿지 못하여 그 새끼 염소를 주인들에게 돌려주라고 다시 말하면서, 그 일로 아내에게 얼굴을 붉혔다. 그러자 아내가 말하였다. “당신의 그 자선들로 얻은 게 뭐죠? 당신의 그 선행들로 얻은 게 뭐죠? 그것으로 당신이 무엇을 얻었는지 다들 알고 있어요.”


복음 마르 12,13-17

그때에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은 13 예수님께 말로 올무를 씌우려고, 바리사이들과 헤로데 당원 몇 사람을 보냈다. 14 그들이 와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저희는 스승님께서 진실하시고 아무도 꺼리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것을 압니다. 과연 스승님은 사람을 그 신분에 따라 판단하지 않으시고, 하느님의 길을 참되게 가르치십니다. 그런데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합당합니까, 합당하지 않습니까? 바쳐야 합니까, 바치지 말아야 합니까?” 15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위선을 아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데나리온 한 닢을 가져다 보여 다오.” 16 그들이 그것을 가져오자 예수님께서, “이 초상과 글자가 누구의 것이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황제의 것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7 이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그들은 예수님께 매우 감탄하였다.



저는 2005년에 처음으로 자전거를 구입했습니다. 갑곶성지에 있으면서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당시의 유행을 따라서 저 역시 5만 원짜리 21단 자전거를 사서 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쉽지 않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강화도에는 경사가 심한 언덕길이 많았기 때문이지요.

아무튼 언덕을 오르는 데에는 많은 힘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기어조절 없이 항상 그냥 땀을 뻘뻘 흘리며 힘으로 언덕을 올라갔지요. 제 자전거가 저가 자전거여서 그런지 기어 조절이 잘 되지 않기도 했지만, 뻑뻑한 상태로 페달을 밟아야 운동량이 더 많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태로 한 달 정도 지나고 나서 저는 자전거를 타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무릎이 너무 아픈 것입니다. 저의 상태를 오랫동안 자전거 타신 분에게 여쭈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자전거는 가장 편하게 타야한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운동량이 많을 것 같아서 기어 조절을 하지 않고 타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 경우 무게 중심이 다리와 무릎에 집중되어서 저와 같은 이상 현상을 겪을 수 있다고 하시더군요. 그냥 편안하게 페달을 밟을 정도로 기어 조절을 잘 하면 운동을 즐겁게 하면서 동시에 어디 아픈 곳 없이 건강해 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뒤로 저는 자전거를 편안하게 타는데 집중을 했습니다. 조금 좋은 자전거를 구입해서 기어 조절을 잘 해가며 천천히 자전거를 탑니다(기록을 내기 위한 선수도 아니니까요). 그러다보니 무릎 아픈 것도 없어졌고, 고질병이었던 허리 아픔도 말끔히 사라지면서 건강을 자랑하면서 살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우리의 삶도 이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몸에 무리를 하면서 일에 집중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유익할까요?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고통과 시련 안에서만 살라고 이 땅에 보내신 것이 아닙니다. 삶의 기어 조절을 잘 하면서 편안하게 당신의 일을 하며 따라오라고 하시지요. 그런데 기어 조절은 전혀 없이 앞만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다른 사람을 볼 여유가 있을 수 없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주님의 사랑 실천이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예수님 시대의 수석사제들과 율법학자들 그리고 원로들이 바로 이렇게 앞만 바라보며 살아온 사람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세운 기준에서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어떻게든 궁지에 몰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그 장면이 나오지요. 자신들의 생각과 다른 모습으로 나아가는 예수님을 궁지에 몰려는 그들의 노력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그들을 잘 아시는 예수님께서는 명쾌한 해답을 하시지요.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황제에게는 그가 만든 은화만 돌려주면 되겠지만, 하느님께는 무엇을 드려야 하는 것일까요? 온 마음과 힘을 다해서 사랑을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과 세상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집중할 때 세상은 더욱 더 편안히 즐기며 행복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요?

복을 받기 위해 신을 섬기는 사람은 신이 아닌 자기를 섬기는 것이다(앙겔루스).


아직도 제주도에 있습니다. 오름을 올라갔지요.


사랑에 집중하세요.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가 있습니다. 나의 세계, 우주가 사라진 기분이지요. 그런데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해가 뜨고 별이 나오고 전과 같이 돌아가는 세상입니다. 세상은 변화가 없지만 내 마음은 사랑하는 이의 부재로 큰 변화를 가질 뿐이지요.

이런 모습을 보면서 이 세상의 사랑은 영원히 계속되는 것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하긴 언젠가는 운명으로 이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셨고, 하느님 나라를 간접적으로 보여주십니다.

마음으로 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그곳에 희망을 두기란 힘들지만, 삶 안에서 사랑으로 하느님 체험을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사랑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를 깨닫습니다.


교래 자연휴양림입니다. 너무 좋은 곳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