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조명연 마태오 신부 / 2022년 9월 19일 연중 제25주간 월요일

수성구 2022. 9. 19. 06:22

조명연 마태오 신부 / 2022년 9월 19일 연중 제25주간 월요일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아니면 후회만 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당연히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책을 많이 읽고, 많이 배우면 될까요?

많이 배워서 학벌도 좋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여기에 책도 열심히 읽으면서 자신의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사람에게 지혜롭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사람을 피합니다.

왜냐하면 말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사사건건 간섭하는 그의 말에 사람들은 모두 혀를 내두릅니다.

그 누구도 지혜롭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영국 속담에 “지혜는 듣는 데서 오고, 후회는 말하는 데서 온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실제로 말하는 순간에 밀려드는 후회를 경험한 적이 없습니까?

그러나 들어주는 사람에게 사람들은 존경을 표시하며, 그를 향한 굳은 믿음을 갖습니다.

그만큼 들어주는 것이 어렵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더 많이 듣는데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말하는 데에 집중하면 할수록 나의 지혜는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주님의 말씀을 듣는데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열심히 듣는 사람만이 주님의 뜻에 맞춰 살 수 있으며, 이를 통해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영광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열심히 듣고 있나요?

혹시 자기 말만 열심히 하면서, 자기 말이 마치 하느님의 말인 것과 같은 착각을 하는 것이 아닐까요?

주님께서도 우리가 지혜로운 사람이 되었으면 하십니다.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당신의 말씀을 듣고 열심히 실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무도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침상 밑에 놓지 않는다.’라고 하시지요.

등불은 그릇으로 덮거나 침상 밑에 두면 제 기능을 다할 수 없습니다.

꺼져버리거나, 밝은 빛을 세상에 드러낼 수 없겠지요.

만약 이런 사람은 어리석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등불이 바로 우리가 믿고 따르는 주님이십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그릇으로 덮거나 침상 밑에 놓는 것처럼 감춰지기 위함이 아니라,

세상에 환하게 당신을 드러내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역할은 주님께서 세상에 잘 드러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지혜로운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어떠했나요?

율법을 잘 아는 그들이었기에 주님을 세상에 잘 드러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 말씀은 듣지 않고 자기 말만 열심히 했습니다.

그 결과 주님을 드러낼 수 없었습니다.

지금을 사는 우리는 어떤가요?

주님을 환히 드러내기 위한 노력은 무엇인가요?

 

우리를 우리가 아닌 존재로 만들려는 세상에서 우리 자신이 되는 것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성취다(랠프 윌스 에머슨).

등불은 등경 위에 놓아 들어오는 이들이 빛을 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