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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욱현 토마스 신부 / 2022. 9. 13.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학자 기념일 - 젊은이여, 일어나라

수성구 2022. 9. 13. 04:24

조욱현 토마스 신부 / 2022. 9. 13.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학자 기념일 - 젊은이여, 일어나라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학자 기념일

 

복음: 루카 7,11-17: 젊은이여, 일어나라

 

예수께서는 나인이라는 곳에 가시다가 과부의 죽은 외아들을 살려주신다. 

죽은 사람이 과부의 외아들이라는 사실이 슬픈 상황이다. 

백인대장의 경우에는 병을 고쳐달라는 청을 받으시지만, 이번에는 아무도 부탁드리지 않았는데 주검 가까이 가신다. 

 

예수님은 과부에게는 눈물을 빨아들이는 해면이 되셨고, 아들에게는 생명이 되셨다. 

죽은 사람을 땅에 묻으러 가고 있었다. 

이 상여 길에서 생명이요 부활이신 그리스도를 만난다. 

 

그분은 죽음과 부패를 이기신 분이시다. 그분은 과부의 눈물이 그치도록 자비를 베푸신다.

 “울지 마라.”(13절) 여인을 울게 했던 원인이 그 말씀과 함께 사라졌다. 

여기서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고통과 기쁨에 함께하시며, 결국은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세상에 오신 분임을 알아야 한다.

 

이렇게 예수께서는 인간의 슬픔을 함께 나누시는 분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상여에 손을 대시고 상여를 멈추셨다(14절). 

그리고 “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14절) 명령하셨다. 

 

이렇게 하심으로써 그 젊은이에게 생명을 되찾아 주셨다. 

이렇게 다시 살아난 아들이 어머니 품에 안기게 되었다(15절). 

예수께서는 어려움에 처해있는 사람들뿐 아니라, 소외당하는 많은 사람에게 특별한 애정을 보여주심을 알 수 있다. 

 

구원은 우리 인간이 무슨 자격이 있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으로 우리에게 거저 주어지는 것이다. 

하느님의 은총은 언제나 우리에게 내려지지만, 그것을 알아보고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의 몫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군중들의 반응을 보면 처음에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고 하면서도

그것이 즉시 하느님을 찬양하는 말로 바뀐다.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찾아오셨다.”(16절) 한다. 

나인의 과부의 외아들은 아무도 생각지 못한 놀라운 방법으로 살아났으며, 그 기적은 온 유다와 그 주변 온 지방에 퍼졌고

모두가 감탄했다. 

 

놀라운 기적 앞에 하느님을 찬미할 수 있는 신앙이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이 말은 우리가 항상 조그만 일에서도 하느님께 감사하며 그분께 찬미와 감사를 드릴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가장 큰 기적은 무엇이라고 했는가?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이 변화하는 것이다. 

내가 먼저 변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나 세상이 변할 수 없다. 

나 자신의 진정한 변화의 기적을 청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