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시와 좋은 글

태풍이 지나고

수성구 2022. 9. 6. 06:49

태풍이 지나고

태풍이 지나고

(이해인 수녀)

 

 

태풍 지난 뒤

아침에 일어나니

 

지붕의 기와가 떨어지고

유리창이 깨지고

장독대의 항아리가 부서진

태풍의 위력을

무력한 표정으로

우린 그저 바라만 보네

나는

조그만 침방 앞 베란다에

무더기로 떨어진

솔잎들을 쓰는데

웬일이야?

태풍 때문에

 

 

슬픈 일도 많지만

태풍 덕분에

숲은 대청소를 하는군

옆방의 수녀님 혼잣말에

고개를 끄덕이는데

 

 

하늘은

처음 본 듯 푸르고

흰 구름은

처음 본 듯 신비하게

다시다시

어여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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