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하늘 나라의 포도밭에서 일어나야 하는 일

수성구 2022. 8. 17. 05:13

하늘 나라의 포도밭에서 일어나야 하는 일

 

에제 34,1-11; 마태 20,1-16 / 연중 제20주간 수요일; 2022.8.17.; 이기우 신부

 

  교회는 하늘 나라의 포도밭입니다. 세상에서도 목자들은 양 떼를 잘 보살펴야 하거니와 교회라는 포도밭에서 목자들은 더 그렇습니다. 양 떼를 돌보지 않는 목자들에 대해서는 하느님께서 대적하시고 내치십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몸소 목자가 되시어 양 떼를 돌보십니다. 하늘 포도밭에서 목자이신 하느님께서 가장 많이 신경쓰시는 것은 모든 양 떼이자 일꾼인 신자들이 빠짐없이 최소한의 몫을 나누어받는 일입니다. 그래서 가장 늦게 와서 일을 적게 한 일꾼에게도 최소한의 몫은 챙겨주십니다. 물론 먼저 와서 일을 더 많이 한 일꾼들에게는 기쁨과 보람이라는 성과급 수당을 더 가져가게 하십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가르침에 담긴 이치를 식물을 관찰하다가 깨달은 사람이 있습니다. 독일의 식물학자 유스투스 리비히(Justus Liebig, 1803~1873)입니다. 그는 필수 영양소 중 성장을 좌우하는 것은 넘치는 요소가 아니라 가장 부족한 요소라는 ‘최소량의 법칙’을 발견했습니다. 최대가 아니라 최소가 성장을 결정한다는 그의 이 발견은 비단 식물을 기르는 원예 분야에서만이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입증되었습니다. 

 

  인터넷 검색 속도는 컴퓨터의 기종, 회선의 품질, 모뎀 성능, 사용자의 관심과 능력 중 가장 뒤떨어지는 요소에 의해 결정됩니다. 음향 기기의 음질도 스피커의 품질, 파워엠프의 용량, 음향 재생기기의 성능, 음반의 품질 중 가장 성능이 떨어지는 기기에 의해 결정됩니다. 회의를 할 때에도 맨 나중에 도착하는 사람이 와야 시작될 수 있고, 공동체의 분위기도 가장 경쟁력이 낮은 소수에 의해서 달라집니다. 사회 전체의 삶의 질 역시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사회에서는 국민총생산(GDP)이 높으면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고 단언해 버리지만, 실제로는 폭우가 쏟아질 때 침수가 되어서 반지하셋방에서 죽어가야 하는 국민들의 삶의 수준만큼만 발전한 것입니다. 

 

  사회를 복음화시켜야 할 교회에도 이 법칙 역시 어김없습니다. 교회에서 존재이유라 볼 만큼 중요한 것이지만 늘 모자라는 요소가 선교 의식입니다. 그리고 선교 의식 안에서도 가난한 이들의 복음화가 가장 맨 나중에 순위가 매겨지는 분야입니다. 그래서 주일미사 참석율 통계는 해마다 집계가 되지만, 그 나라에서 가난한 이들 중 신자인 비율이 얼마인지는 관심도 없고 따라서 통계에도 잡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시러 세상에 오셨다고 선언하셨고, 공생활 중에도 당신에게 몰려드는 가난한 이들을 돕고 치유하고 마귀를 쫓아내시느라 바쁘셨으며, 결국 그로 인해 덮어쓰신 혐의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부활하신 그분은 모든 사람을, 신자들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최후의 심판에서 심판하시겠다고 미리 언질을 주시고 가셨는데, 그 심판에서 핵심이 되는 기준이 바로 가난한 이들에게 얼마나 복음을 전했고 얼마나 사랑을 실천했는지 또 그러기 위해서 얼마마한 희생의 십자가를 짊어졌는지 하는 것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교회라는 하늘 나라 포도밭의 목자들이 제대로 양 떼를 돌보지 않으면 쫓겨납니다. 아니면 쫓겨나지는 않더라도 부활하신 예수님의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 그 목자란 지위는 고위 성직자이거나 사제들이거나 높은 지위를 차지한 신자인 것만이 아니라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나서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은총들, 예를 들면 시간이나 재능, 지식이나 기술, 영성이나 덕행 모두를 지닌 부자들이 다 해당됩니다. 그 은총을 주신 분의 뜻에 따라 쓰지 않고 자기만을 위해 쓰는 부자들은 모두 거짓 목자로 취급됩니다. 

 

  또한 눈을 돌려 대륙으로 향해 보면, 우리 사회의 가난한 이들보다 훨씬 더 가난한 이들이 많이 살고 있습니다. 아시아의 복음화 과업이 사실은 가난한 이들의 복음화 과업의 연장이요 확장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많은 아시아인들이 한국 문화를 부르는 한류만을 보고, 화려하고 재주와 기술도 최첨단이며 부러워하지만 정작 필요한 한류는 아시아의 가난한 이들을 도울 수 있는 손길입니다. 그리하여 많은 아시아 나라들이 한국처럼 발전해 보겠다고 손을 내밀고 있습니다.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성장한 그 신화를 부러워하면서 ‘코리아 드림’을 꾸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난한 이들이 어디에 있건,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수단은 돈이 아닙니다. 사랑의 마음입니다. 지금 여기서 가난한 이들을 도울 수 있는 사랑의 마음이 있다면, 먼 데 있는 가난한 이들을 도울 수 있는 길은 하느님께서 마련하십니다. 돈이 많다고 해서 가난한 이들을 돕지 않습니다. 부자 청년처럼 자기 혼자 영원한 생명을 차지하고 싶어 하는 인색한 욕심쟁이들이 수두룩하게 많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나라와 영원한 생명은 독차지할 것이 아니라 함께 차지해야 하는 보물입니다. 그리고, 또 그래서 하늘 나라의 포도밭인 교회는 가장 모자라는 필수 요소를 찾아내서 보충해야 하고, 학습해야 하며, 우선 순위도 조정해야 하고, 가장 뛰어난 인재를 배치해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의 경쟁력이 살아나고 하느님의 구원 경륜이 제대로 작동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늘 나라의 포도밭에서 일어나야 하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