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나라에 들어간 부자들의 이야기
에제 28,1-10; 마태 19,23-30 / 연중 제20주간 화요일; 2022.8.16.; 이기우 신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부자들에게 아주 실망스러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몸집이 큰 낙타가 작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갈 수 없는 이치가 너무나 뻔한 데도,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고 선언하다시피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본시 이 말씀은, 어려서부터 유복하게 자라난 청년이 윤리적으로도 흠결없이 살다가 영원한 생명을 청하려고 예수님을 찾아왔을 때 말씀 한 마디에 실망해서 돌아간 이야기 끝에 나왔습니다. 그 말씀 한 마디란, 가진 재산을 다 팔아서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라는 것뿐이었습니다. 영원한 생명의 가치는 너무도 귀하기 때문에, 가진 재산만 나누어주어도 얻을 수 있다면 그건 아주 경제적인 거래요 횡재를 얻을 뻔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찾아왔던 그 청년은 윤리적으로 흠결이 없었던 것뿐이지 욕심도 많았던지 그 말씀 한 마디에 너무도 실망해서 슬퍼하며 떠나갔습니다. 이 광경을 모조리 지켜본 제자들 역시 아쉽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렇다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 하며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런 제자들을 보시며 예수님께서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전혀 딴판으로 반응하셨습니다.
사실 가진 재산을 아낌없이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준다는 일이 쉽지는 않습니다. 오늘 독서에 나오는 티로의 군주가 마음이 교만하여 마치 신처럼 굴었던 것처럼, 돈을 신처럼 모시는 우상숭배자들은 돈이 많으면 마치 자신이 신이라도 된 것처럼 착각합니다. 남은 일생이 안락할 뿐만 아니라 행복할 것 같은 꿈을 꿉니다. 모두가 자신을 우러러 보아줄 것처럼 과신을 하지요. 그래서 티로의 군주도 “지혜와 슬기로 재산을 모으고 금과 은을 창고에 쌓았습니다.” 아마 그 부자 청년도 사두가이나 또는 바리사이인 아버지를 두었을 테고 그 아버지는 온갖 지혜와 슬기를 짜내서 돈을 긁어 보았을 것이며, 그 돈으로 자식을 유복하게 키우면서 율법도 엄하게 지키도록 가르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돈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는 일만큼은 가르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이러니, 이렇게 하느님을 멀리한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그 나라로 들어가는 문의 열쇠가 바로 나눔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인간이 살아가는 데에는 돈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그래서 돈보다 더 귀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시간이 그렇고, 재능이 또 그렇습니다. 돈을 아무리 많아 주어도 단 한 시간도 살 수 없고, 또 귀한 재능도 본인이 동의하지 않는 한 인재의 재능을 함부로 탐낼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시간의 부자도 있고 재능의 부자도 있는 셈입니다. 또 시간으로 말하자면 젊은이들은 앞으로 살아갈 인생이 많이 남아 있다는 점에서 시간의 부자들입니다. 또 산전수전을 다 겪으며 살아본 인생의 경험도 돈 주고 못삽니다. 그러니 노인들은 경험의 부자들입니다. 많이 배운 지식인은 지식의 부자요, 재주가 좋은 기술자는 기술의 부자입니다. 기도를 많이 하는 수도자는 영성의 부자요 봉사를 많이 하는 사람은 섬김이라는 덕행의 부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주변에는 이 온갖 종류의 부자들이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오듯이 하느님 나라로 들어가고자 모여 들었습니다. 우선 자캐오를 들 수 있습니다. 그는 세관장으로서 부정한 방법으로 모은 돈이 많았지만 그 때문에 사람들로부터는 기피 대상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만난 김에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루카 19,8). 국제적으로나 전통적으로나 당대 최고의 엘리트였던 사울은 예수님을 만나 벼락을 맞고 나서 박해자의 시치미를 떼고 사도요 선교사로 거듭 났습니다. 지식의 부자였지만, 이 모든 것을 쓰레기로 여기고 다 나누어준 다음 하느님 나라의 열쇠를 받은 베드로 못지않는 복음의 인도자로 영원한 생명으로 가는 길을 안내해 주었습니다. 그가 바오로라는 이름으로 바꾸고 선교여행을 하다가 필리피에서 만난 리디아도 자색 옷감 장수로서 국제교역을 하는 부자였지만, 바오로의 필리피 선교는 물론 모든 여행과 선교활동과 사목활동의 뒷바라지를 조용히 감당해 줌으로써 하느님 나라의 상석에 앉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큰 부자는 성모 마리아이십니다. 비록 돈은 없었지만 돈보다 훨씬 더 귀한 믿음에 있어서 마리아는 누구 못지않은 부자이셨습니다. 그 믿음으로 그는 구세주의 어머니가 되셨고, 아드님의 공생활을 기도로 뒷받침해 주셨으며, 부활 후에는 사도들의 한가운데에서 교회의 어머니로서 중심을 잡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모든 은총은 하느님 나라와 영원한 생명으로 가는 도구로 쓸 때 다 귀한 보물이 됩니다. 시간이나 경험, 재식이나 기술, 영성이나 덕행, 그리고 그 다음에 돈까지도 하느님 나라와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제 자리에 놓아야 그 모든 것들이 우리를 풍요롭게 만들어줄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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