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 하느님

수성구 2022. 6. 27. 02:23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 하느님

아모 2,6-16; 마태 8,18-22 / 연중 제13주간 월요일; 2022.6.27.; 이기우 신부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다고 선포하시며 가난한 이들에게 치유와 위로, 소생과 구마의 기적 등으로 복음에 담긴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시켜 주셨습니다. 이러한 케리그마적 행동과 병행하여, 당신과 함께 이 케리그마를 선포할 동지들을 규합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그 동지들을 단 열두 명으로 한정하신 이유를 오늘 복음에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율법 학자가 제자로 지원했을 때에는 청빈한 생활양식을 들어 거절하셨고, 가정사에 연연해 하는 이가 제자로 지원했을 때에는 사사로운 정에 얽매이지 말라고 타이르시기도 하셨습니다. 이로써 우리가 알 수 있는 바는, 하느님 나라와 복음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보이지 않으면 당신께서 목숨을 바쳐 가르쳐주시고 사랑하실 상대로 받아들이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아모스 예언자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뜻을 어기고 죄를 저지르는 북이스라엘 백성과 지도자들의 죄를 물어 엄한 심판을 하시리라고 엄중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이들을 업신여기고, 가정을 성화시키기는커녕 문란하게 하며, 제사의 종교윤리마저 어지럽히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복음의 잣대를 독서에 적용하자면, 아모스 당시의 북이스라엘 왕국의 백성과 지도자들은 낙제점을 맞고 있습니다. 결국 자신이 받은 이 심판의 계시를 직접 기록하기 시작한 아모스(기원전 760~755년) 이후 한 세대도 지나기 전 기원전 720년 경에 아시리아에 의해 멸망당하고 맙니다. 

 

  어제 교황주일을 맞아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교회에 자상하게 전해준 교회쇄신의 메시지는 사실, 이미 30년 전에 작성된 전국 사목의안에 포함되어 있던 과제들이었습니다. 모두 12개 의안 중 마지막 순서로 작성된 「사회」의안의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사랑하는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저 낮은 민중 속으로 보내셨듯이, 크리스챤이 또한 민중 속으로 투신하도록 이 시간, 우리 모두를 파견하고 계신다. 가난하고 버림받고 소외된 민중 속에 자신을 묻고, 그들과 함께 복음의 빛을 찾는 ‘민중 속의 교회’만이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의 구원의 진리를 가장 진솔하고 극명하게 증거할 수 있다고 우리는 믿는다.” 놀랍지 않습니까? 프란치스코 교황이 주교단 앞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가 되라고 충고한 메시지는 이 의안의 메아리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의안의 제안과는 반대로 한국교회는 요한 바오로 2세의 방한과 103위 성인의 탄생을 계기로 조성된 가톨릭 선교붐을 타고 놀랄만한 교세 신장을 이루었으며, 봇물터지듯 본당 신설과 성전 신축이 전국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 결과는 중산층화된 교회로 귀결되었고, 중산층화는 사회적 보수화 경향으로 이어졌으며, 유감스럽게도 냉담자 80%라는 참담한 결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을 한국 현실에 적용하여 도약하려던 사목 의안의 취지는 이제 빛을 발할 때입니다. 요한 바오로 2세와 프란치스코, 이 두 교황이 한국교회에 던진 메시지와 보여준 사랑과 배려에 비추어 한국교회를 향한 하느님과 교황청의 큰 그림이 그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반도의 평화가 이룩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민족 복음화의 과업이 요원한 이상, 우리는 하느님의 큰 그림을 보고 교황청에서 제시하는 더 크고 원대한 목표 즉 아시아의 복음화를 향한 지향을 받아들여야 하고, 이 지향을 위해 교회 쇄신이라는 희생을 하느님께 예물로 봉헌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한반도의 평화와 민족 복음화라는 우리 민족과 우리 교회의 소원은 덤으로 들어질 것입니다. 

 

  사목 의안이 작성된 전국사목회의는 한국 천주교 200년 역사상 처음으로 하느님 백성 전체, 즉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가 같이 참여한 획기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서울교구장이었던 김수환 추기경은 천주교 전래 200주년 기념행사가 이 ‘사목회의’로 수렴되고 결실을 맺어야 한다고 평가한 바 있습니다. “안으로는 성령으로 충만한 교회의 새로운 모습을 지향하고, 밖으로는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느님 나라를 도래케 하며 특히 이 땅에서 고통 받는 모든 사람과 같이 있는 교회가 되고자 하는 데 그 의의가 있는 것이니 사목회의는 교회 생명 자체를 다루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 이후 한국교회에 남긴 메시지를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과 모색이 8년째 계속되고 있지만, 그 답은 이미 30년 전에 사목 의안으로 나와 있었습니다. 그 답안대로 한국교회가 노력해 왔다면, 교황은 한국교회에 관해 교황청이 간직하고 있는 복안의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간 희망찬 메시지를 내놓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날 악마가 와서 한국교회의 예언자적 구조에서 가난한 이들을 배제하려는 씨앗을 뿌린 것 같다.”는 ‘부드럽지만 날선 교황의 훈계’를 들어야 했습니다. 

 

  교우 여러분!

예수를 따르려면 믿음이 필요합니다. 우리 개인도, 한국교회 전체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답은 이미 사목 의안에 적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다시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