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정통성과 정체성

수성구 2022. 6. 17. 05:36

정통성과 정체성

 

2열왕 11,1-20; 마태 6,19-23 / 연중 제11주간 금요일; 2022.6.17.; 이기우 신부

 

  이스라엘의 비극은 판관기 시대에 기드온을 왕으로 옹립하려던 시도에서 비롯되었습니다(판관 8,22). 기드온은 하느님만이 이스라엘의 왕이시고 목자이시라는 민족의 정통성 신앙을 고수하였으나, 기드온의 아들 아비멜렉이 유혹에 빠져 왕권을 탐내어 동기간 형제 70명을 살해하고 왕위에 올랐기 때문입니다. 그 3년 만에 하느님께서는 몸소 아비멜렉을 응징하시고 내치셨으나, 이미 식어버린 신앙을 되돌리기는 어려웠습니다. 이후 백성의 원로들은 이방 민족들의 왕정제도와 상비군 제도를 부러워하여 마지막 판관 사무엘을 졸라서(1사무 8,5) 드디어 왕을 옹립하였으니(1사무 10,1), 그가 사울왕입니다. 

 

  이후 이스라엘의 민족역사는 왕권의 타락상과 왕실 내부의 권력다툼도 극에 달하고 왕국이 분열된 후에도 남북 왕국에서 경쟁적으로 우상숭배 풍조가 민족의 신앙과 공동선의 수준을 떨어뜨렸습니다. 결국 민심이 부서지고 국력이 쇠약해져서 앗시리아의 군대에게 멸망당했습니다. 바빌론 유배살이에서 돌아와서도 상황은 나아지지 못했습니다. 오늘 독서의 상황도 그 한 사례입니다. 사무엘기 상하권과 열왕기 상하궈 그리고 역대기 상하권 등 구약성경의 역사서들이 전해주는 지리한 내용들 속에는 이러한 역사신학적 교훈이 담겨 있습니다. 즉, 이스라엘 민족에게 최대의 과제는 신성과 신앙의 회복이라는 것이고, 이 민족 정통성이 확립되지 않는 한 비극은 그치지 않으리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 비극은 이스라엘의 종교 지배층이 민족 정통성을 회복하기는커녕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임으로써 시작되었고, 그 한 세대 후 로마제국에 의해 예루살렘이 점령당하고 민족이 전 세계로 뿔뿔이 흩어짐으로써 현실화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민족 정통성은 그리스도 교회로 넘어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사두가이와 바리사이 등 종교권력 엘리트들의 음모가 노골적으로 커져가던 무렵, 제자들에게 근본적인 회개의 자세로서 신앙을 상기시키셨습니다. 마음속에 하느님의 빛을 회복하여 꼭 간직하라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민족의 정통성으로서 하느님 신앙을 회복해야 하지만, 이 과제가 종교권력 엘리트들의 거부로 어려워지자 더욱 근본적으로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하라고 권유하신 것입니다. 신앙의 정체성이 정통성을 확립합니다. 

 

  신성과 신앙은 하늘의 보물입니다. 그에 비하면 권력이나 재물에 대한 욕심은 자칫하면 사탄이 유혹하는 죄악의 미끼가 될 수 있는 쓰레기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섬기기보다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고 싶어 하고, 가진 재물을 가난한 이들과 나누기보다는 자기를 위해서만 쓰거나 그마저도 더 가지고 싶어 하는 충동은 현대인들을 하느님께로부터 멀어지게 만들고 있는 주범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이 포함된 산상설교의 주제는 그 첫머리에 나온 진복팔단에 이미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여덟 가지 참된 행복을 선언한 이 내용이야말로 신앙의 정체성이 담겨 있고 정통성을 확립할 수 있는 금과옥조(金科玉條)입니다. 이 말씀의 진리성을 알아보는 눈이야말로 영혼의 등불입니다. 

 

  또한 이 말씀의 진리성을 실천하려는 의식이야말로 부활 신앙의 구체적 표현이라 할 수 있을 것이고, 이 말씀을 공동체로 구현하는 공동생활 양식이야말로 성령 강림의 사회적 실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과연 초대교회의 사도들과 신자들이 실행한 바는 사도행전과 사도들의 기록에 남아서 부활 신앙과 공동생활 양식을 증언해 주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진복팔단의 뜻을 되새겨 보겠습니다. 

 

-  마음이 가난한 이들이 하늘 나라를 차지하리라는 말씀은 세상 재화에 대한 욕심보다 하느님으로 마음을 채운 신앙인들이 지상에서 천국을 살게 되리라는 뜻입니다.

 

- 슬퍼하는 이들이 위로를 받으리라는 말씀은 진리와 정의와 사랑이 메마른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을 공유해야 하는 현실을 일깨워줍니다.

 

- 온유한 이들이 땅을 차지하리라는 말씀은 하느님의 말씀에 열려 있는 신앙인들이 공동체를 이루어야 함을 알려줍니다. ‘땅’이란 토지가 아니라 ‘공동체’를 말합니다.

 

-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이들이 흡족하리라는 말씀은 그만큼 의로움을 발휘해야 할 기회와 일이 많이 기다리고 있다는 뜻입니다.

 

- 자비로운 이들이 자비를 입으리라는 말씀은 불의한 세상으로부터 기대할 것도 없지만, 아예 자비를 포기할 필요도 없기 때문에, 믿는 이들끼리 서로 자비를 주고 받아야 할 냉엄한 현실을 일깨워줍니다.

 

- 마음이 깨끗한 이들이 하느님을 뵈오리라는 말씀은 시대의 징표를 식별하라는 뜻이고,

 

- 평화를 이루는 이들이 하느님의 자녀라 불리리라는 말씀 또한 평화 실현에 앞장 서는 삶이 하느님을 닮는 자녀로서의 삶임을 일깨워줍니다.

 

- 그런데 이 모든 지향을 간직한 삶은 필경 세상으로부터 박해를 받을 수밖에 없는 운명임을 각오해야 합니다. 과거 이스라엘도, 그리스도 교회도 이 박해가 두렵고 무서워서 비뚤어진 길을 걸어갔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삶을 앞장서서 걸어가셨고, 그 삶이 하느님 나라의 축복으로 충만할 것임을 보증해 주셨습니다.

 

  교우 여러분!

이것이 우리가 확립해야 할 정통성과 간직해야 할 정체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