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너희는 나를 보고도 나를 믿지 않는다

수성구 2022. 5. 4. 00:42

너희는 나를 보고도 나를 믿지 않는다

 

사도 8,1-8; 요한 6,35-40 / 2022.5.4.; 부활 제3주간 수요일; 이기우 신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장차 당신을 믿을 신자들을 위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다. 나는 생명의 물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 말씀대로 ‘그 속에서부터 생수의 강들이 흘러나올 것’이며,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요한 4,14; 6,35.41; 7,37-38).

 

  오늘 독서에서 부제 필리포스는 사마리아로 가서 생명의 빵이요 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였는데, 사마리아는 예수님께서 각별한 연민의 마음과 복음화 열망을 지니고 우물가에서 한 여인을 찾아가 만나셨던 지방이었습니다. 역사적으로 북이스라엘 왕국의 수도가 자리잡고 있었던 사마리아의 주민들은 남유다왕국에 속했던 유다 지방 주민들은 물론, 같은 북이스라엘왕국에 속했던 갈릴래아 지방 주민들보다도 더 기구한 운명을 겪어야 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의 역사적 연원은 열두 지파와 요셉의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집트 파라오는 당시 재상이었던 요셉이 대사제 포티 페라의 딸 아스낫과 혼인하도록 주선했었습니다(창세 41,45). 당시 서른 살이었던 요셉과 아스낫은 혼인하여 두 아들을 두었는데, 첫째가 므나쎄이고 둘째가 에프라임이었습니다(창세 41,51-52). 야곱은 죽음이 임박하자, 집안 일가를 대기근의 참사에서 구한 요셉의 공로를 보아 자신의 열 아들에게 축복을 내려주면서 요셉의 두 아들 므나쎄와 에프라임에게도 요셉과 동등한 자격을 주었습니다(창세 48,5). - 야곱에게는 열두 아들(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잇사갈, 스불론, 단, 납달리, 갓, 아셀, 요셉, 베냐민)이 있었는데 레위 지파가 하느님의 소유가 되면서(민수 1,47-54; 3,12) 레위지파는 열두 지파에서 제외되었습니다 – 손자뻘인 므나쎄와 에프라임을 아들 반열에 올려준 조치는 야곱이 요셉에게 감사하는 마음에서 내려준 특별한 배려였습니다. 이로써 요셉은 자기 자리에 두 아들을 모두 올려서 두 아들은 나중에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시조가 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에프라임 지파 출신으로는 여호수아(민수 13,8)와 드보라(판관 4,4), 압돈(판관 12,13), 사무엘(1사무 1,1) 등이 있습니다. 모세가 죽은 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서 열두 지파에게 토지를 나누어주었는데, 에프라임 지파는 비옥하고 초지가 넓은 팔레스티나 중부 지역을 할당받았습니다. 이 지역이 훗날 '사마리아'라고 불리게 됩니다. 이들은 좋은 환경을 배당받은 덕분에 커다란 세력으로 자라났고 솔로몬 이후 왕국이 분열했던 기원전 931년 당시 북이스라엘 왕국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이 당시에 에프라임 지파와 므나쎄 지파의 후손들은 자신들 지파의 시조들만큼이나 가까운 사이로 지냈습니다. 

 

  므나쎄 지파 출신으로는 기드온(판관 6,11)과 입타(판관 11,1)가 있습니다. 가나안 정복 이후 므나쎄 지파 역시 팔레스티나 중앙부에 정착했지만 요르단 강을 사이에 두고 동서로 갈라져 살았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교류가 뜸해지는 바람에 세력이 약화되기는 했었습니다. 그러나 북이스라엘왕국이 기원전 722년에 앗시리아에 의해 정복되면서 비옥한 초원 지대를 탐낸 앗시리아의 인구 재배치 정책에 의해 지도자들은 바빌론으로 끌려가 노예로 전락했고 그 대신에 에프라임 지파가 살던 지역에는 앗시리아인들을 강제로 이주시켜 정착하게 했으므로 남아있던 백성들은 이들과 어울려 혼혈로 살아야 했으니 이들이 훗날의 사마리아인들입니다. 

 

  ‘사마리아’라는 이름은, 북이스라엘 왕국의 여섯 번째 왕인 오므리가 원래 땅 주인인 ‘세메르’로부터 그 산을 샀던 데에서 유래하였습니다(1열왕 16,24). 사마리아인들은 앗시리아의 강제이주정책에 따라서 앗시리아인들과 혈통상으로도 혼혈이 되었음은 물론 이민족이 들여온 우상숭배 풍습과 이교적 문화에 동화되어 살아야 했습니다. 이 두 가지 이유로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유다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경멸했으며, 자기 탓 없이 타의로 혼혈과 우상숭배 풍습을 받아들여야 했던 사마리아인들도 자신들을 경멸하던 유다인들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습니다. 서로 상종하지 않았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사정을 알고 계셨을 예수님께서 이방인 통치자의 잘못된 결정으로 꼬일 대로 꼬여버린 역사적 매듭을 풀어주시려고 의도적으로 비운의 땅 사마리아에 가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필리포스가 이러한 역사적 사연과 예수님의 뜻을 알고 사마리아를 찾아가서 생명의 빵이시오 물이신 예수님의 복음을 전해 주었던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자기 탓없이 정치가들의 뜻에 따라 갈라지고 서로 총부리를 겨누었으며 헤어져 살아온 북녘과 남녘은 사마리아와 유다 및 갈릴래아의 처지와도 비슷합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들은 오늘날의  필리포스들이 생명의 빵과 생명의 물을 남녘과 북녘에 사는 겨레 모두에게 전해 주어야 합니다. 5천년 동안 함께 살아오다가 겨우 70년 동안 그것도 남의 탓으로 헤어져 살아온 겨레를, 서로 미워하라고 부추기는 자들은 예수님을 보고도 그분을 믿지 않는 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생명의 빵이시며 생명의 물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