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보다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이 더욱 마땅합니다

수성구 2022. 4. 28. 05:08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보다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이 더욱 마땅합니다

 

사도 5,27-33; 요한 3,31-36 / 2022.4.28.; 부활 제2주간 목요일; 이기우 신부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보다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이 더욱 마땅합니다”(사도 5,29ㄴ).

 

  하느님 사랑의 복음을 유다인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선포하다가 최고의회로 붙들려간 베드로와 사도들에게 대사제가 예수의 이름으로 가르치지 말라고 협박하자 사도들이 응수한 말이 이것이었습니다: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보다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이 더욱 마땅합니다”(사도 5,29ㄴ).

대사제로 대표되는 당시 유다교는 자신들이 처형한 예수가 부활했다고 선포하는 사도들에 대하여 매우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권력은 자신들이 쥐고 있었지만 유다인들의 민심은 사도들을 지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예수님을 재판하던 빌라도가 피고처럼 겁을 내고 정작 피고이셨던 예수님께서 당당하셨던 것처럼 사도들을 심문하던 대사제가 통사정하다시피 협박하고 사도들은 당당한 태도로 배짱있게 복음을 선포하면서, 사도들은 이미 생전에 예수님께서 자신들에게 가르치셨던 바를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하늘에서 내린 이치를 말하는 사람은 하늘에 속하고 땅에서 난 것을 말하는 사람은 땅에 속하며, 하늘의 진리를 말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아 영원한 생명을 얻지만 땅의 거짓을 말하는 사람은 이 생명을 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진노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거짓 예언자로 간주하고 로마제국에 대해 정치적 반란을 꾀한 유다인의 왕이 되려 했다는 거짓 혐의를 뒤집어 씌워 죽인 유다교와, 그렇게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오신 하느님이시며 죽으신 지 사흘 만에 부활하셨음을 믿는 그리스도교의 대립은 불가피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인들이 유다인들의 박해를 받아 안티오키아를 거쳐 소아시아와 그리스 등지로 흩어져서 복음을 전할 때에도,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끈질기게 그리스도인들을 로마 당국에 고발하고 군중을 선동하여 괴롭혔던 자들이 해외 디아스포라의 유다인들이었습니다. 이때 그리스도인들이 고발당한 빌미가 황제숭배에 저항한다는 것이었는데, 유다교를 믿는 자신들도 이에 대해서는 결코 찬성할 수 없었을 텐데도 그리했습니다. 그래서 율법을 앞세워 하느님을 가리는 유다교든, 황제숭배를 강요하여 하느님께 대적하는 로마제국이든 예수 그리스도를 하느님으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저항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한국교회의 초대교회 시절에도 천주교 교리를 진리로 받아들인 신자들은 ‘무군무부(無君無父)’의 사교(邪敎)를 퍼뜨리는 무리라고 조정 대신들과 유림들의 모함을 받아 죽어가야 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당시 권세를 잡은 노론 벽파(僻派) 유림들이 정조의 총애를 받던 남인 시파(時派)의 정적을 숙청하기 위한 정치보복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천주교 신자들은 매를 맞아 죽어가면서도 천주교는 ‘대군대부(大君大父)’의 진교(眞敎)임을 목숨 걸고 증언하였습니다. 

 

  임금과 부모에 대한 충효의 윤리를 내세워 천주교를 탄압한 조선 조정의 통치 이데올로기는 사실상 무신론적인 주자학이었습니다. 종교가 아닌 학문을, 그것도 특정 학파의 주장을 교조적으로 강요하면서, 양반과 중인과 상민 그리고 천민 등 사회적 신분으로 백성을 차별하는 조선 사회는 분명 우상숭배적인 세상이었습니다. 특히 인간 존엄성의 진리를 말살한다는 점에서 그러했습니다. 하지만 천주교 신자들은 충효의 윤리를 거부하기는커녕, 임금 위에 하느님이 계시고 그 하느님의 뜻으로 임금에게도 충성하고 부모에게도 효도하라는 계명을 지키는 이들이었습니다. 

 

  조선 시대 후기에 천주교 신자들이 깨달은 이 진리는 하늘에서 내린 것이라는 확신이 그들에게는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이 아주 오랜 옛날부터 지켜온 정신 전통에도 부합한다고 믿었습니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하늘에 제사를 지내면서 하느님의 뜻을 받들고, 그에 따라서 임금이나 백성이나 가릴 것 없이 모두가 하느님께로부터 비롯된 천손임을 자각하고, 모든 이들을 이롭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 왔었기 때문입니다. 제천의식(祭天儀式), 천손의식(天孫意識), 홍익인간(弘益人間), 이것이 우리 민족의 고유한 정신 전통이었습니다. 

 

  그런데 고려 시대의 불교, 조선 시대의 유교로 인해 억눌리던 이 민족 고유의 정신 전통은 조선 시대 후기에 그리스도 신앙을 받아들인 천주교 신자들에 의해서 되살아났습니다. 그래서 백성을 차별하는 그릇된 풍조에 대해서 천손의식으로 저항했고, 하늘을 무시하는 우상숭배적 사조에 대해서는 경천의 진리를 목숨을 걸고 증거했던 것이었습니다. 이로써 민족 고유의 정신 전통이 보편교회의 그리스도 신앙과 만나면서 하늘의 뜻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과 그리스도 신앙으로 구체화되었고, 이는 올바른 신성에서 비롯된 진리를 숭상하고 이 진리에서 나온 인간 존엄성의 가치를 보편적으로 옹호하는 홍익인간의 정신 혁명으로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자국만을 앞세웠던 이전 선진국들의 사례와는 다르게, 모든 인종으로부터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한류 열풍도 이 정신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모든 사람이 하느님을 섬겨야 하고, 또 하느님 앞에서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자유로워야 하며, 우리 민족만이 아니라 모든 민족을 이롭게 해야 한다는 이치가 보편적 진리입니다. 이 진리를 억누르는 사람에게 복종하는 것보다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이 더욱 마땅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