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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증에 수면제? 아침 햇빛이 보약입니다"

수성구 2022. 4. 26. 05:32

"불면증에 수면제? 아침 햇빛이 보약입니다"

 

‘헬스조선 명의톡톡’ 명의 인터뷰
‘불면증 명의’ 고대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헌정 교수


인간은 수만년동안 자연스럽게 밤에 잠들고 아침에 깨어왔다. 그렇게 진화해온 유전자가 몸의 여러 부분을 통제하고 있다. 그러나 문명의 발전은 우리를 밤에도 깨어있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더 오래 활동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역효과 역시 만만치 않다. 불면증이 대표적이다. 불면증 환자 증가세가 가파르다. 2015년에 51만3748명이 불면증으로 병원을 찾았다면 2020년엔 65만8675명으로 늘었다. 물론 불면증의 원인은 다양하다. 수면무호흡부터 특정하기 어려운 정신적인 불안까지 원인으로 꼽힌다. 그런 만큼 많은 해결책이 제시되고 있다. 고대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헌정 교수는 우리의 몸에 새겨진 생체시계에 맞춰서 생활해야 불면증을 치료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를 만나 상세히 물어봤다.




고대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헌정 교수./사진=신지호 헬스조선 기자


-숙면이 필요한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인가?
살기 위해서다. 인간은 삶을 유지하기 위해 몸에 쌓이는 노폐물을 배출해야 한다. 음식물이 소화기관을 통과해 빠져나오듯 모든 세포들은 노폐물을 배출한다. 그러나 뇌는 다른 신체기관과 달리 노폐물을 배출하는 시스템이 없다. 그렇다면 뇌는 어떻게 노폐물을 배출할까? 잠을 통해서다. 잠을 자면 뇌척수액이 세포 사이의 노폐물을 씻어가며 낮에 쌓인 각종 안 좋은 물질들을 배출한다. 치매의 원인 물질인 베타아밀로이드도 이렇게 제거된다. 잠을 자지 않으면 뇌의 기능이 유지되지 않는 이유다.


-충분히 누워있어도 잠을 못 잤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은데?
실제 자는 시간은 중요하지 않다. 얼마나 질 좋은 잠을 자는가가 중요하다. 잠을 오래 잔다는 건 사실 잠의 질이 안 좋다는 걸 뜻하기도 한다. 성인에게 가장 이상적인 수면 시간은 7시간 30분 정도다. 이보다 적게 자거나 많이 자면 질환 발병률, 사망률이 올라간다.


-불면증 환자가 증가하는 원인은?
불면증의 원인은 매우 많다. 최근의 증가율만 놓고 따져봤을 때 두 가지가 눈에 띈다. 먼저 코로나19다. 많은 실외 활동이 온라인으로 대체됐다. 재택근무, 비대면 강의는 활동 직전에 기상하는 환경을 조성했다. 그만큼 늦게 일어나고 늦게 자는 것이다. 이렇게 생활 패턴이 깨지면 불면증으로 이어지기 쉽다. 어느 날, 일찍 잠들려고 시도한다면 쉽지 않다는 걸 느낄 것이다. 비만 인구가 늘고 있다는 점도 원인으로 꼽힌다. 비만은 수면무호흡증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목 부위에 지방이 축적되거나 편도 등의 조직이 비대해져 상기도가 좁아지기 때문이다. 경도의 수면무호흡증을 앓는 사람은 단순한 불면증으로 인식하지만 심한 수면무호흡증 환자는 낮 동안의 피로감을 많이 호소한다. 졸음 운전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만약 머리만 대도 자는데 낮에 항상 피곤하다면 수면무호흡증을 의심해봐야 한다.


-불면증 진단은 어떻게 이뤄지나?
가벼운 불면증의 원인은 면담만으로 진단할 수 있다. 환자의 병력을 청취하고 증상 등을 자세히 듣다 보면 불면증의 원인이 파악된다. 하지불안증후군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다른 원인이 의심된다면 수면다원검사를 실시한다. 수면무호흡증이나, 기면병, 렘수면행동장애 등은 치료 계획을 수립하기 위해서 수면다원검사 결과가 필요하다.




불면증 진단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이헌정 교수./사진=신지호 헬스조선 기자


-원인 질환 별 치료 방법은 무엇인가?
하지불안증후군 치료엔 도파민 수치를 올려주는 약들이 도움된다. 그리고 수면무호흡증은 숨이 막히는 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들이 적용된다. 대표적인 게 양압기다. 코에 씌운 마스크로 바람을 주입해 숨이 안 막히지 않도록 하는 원리다. 그 외에도 질환의 정도에 따라 구강 내 장치라던가 수술적 요법들이 고려된다.
-수면제 처방은?
가능하다면 하지 않는다. 수면제는 내성과 의존성이 있어서 끊기 어렵다. 게다가 약을 계속 늘려가야 해서 부작용을 피할 수 없다. 낮에 활동력이 떨어지거나 기억력이 저하되기도 하고 넘어져서 골절되는 경우도 흔하다. 많은 환자가 이미 수면제를 복용하는 상태에서 내원하는데 이를 끊게 하려고 서로 언성을 높이며 다투기도 한다. 수면제는 일종의 부정행위다. 불면증 치료의 첫 번째는 생체시계에 맞춰 낮에 햇볕 쬐고 활동하는 것이다. 원인을 불문하고 먹고 자겠다는 건 올바른 선택이 아니다. 알코올도 마찬가지다.


-생체시계란 무엇인가?
지구상의 생명체는 밤낮의 주기에 맞춰서 진화해왔다. 일주기 생체시계는 이러한 밤낮의 변화 때문에 생긴 우리 몸의 본능이다. 그러니까 낮과 밤의 주기에 따라서 몸이 움직인다고 생각하면 되는데 잠도 마찬가지다. 불면증 환자에게 ‘낮잠을 자지 말라’, ‘아침에 빛을 보라’고 말하는 이유도 결국 아침에 생체시계를 깨우기 위한 것이다. 인공 빛이나 조명도 상관없다.




생체시계 활성화 원리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 이헌정 교수./사진=신지호 헬스조선 기자


-왜 빛인가?
생체시계를 움직이는 열쇠는 뇌에 있다. 시교차상핵이라고 부르는데 눈을 통해서 들어온 빛 자극이 뇌에 전달돼야 작동하기 시작한다. 온몸의 시계를 움직이게 하므로 빛을 보는 행동 자체가 생체시계를 맞추는 것이다.
-교대근무자처럼 밤낮이 바뀐 사람들은 어떡하나?
어려운 문제다. 전체 노동자의 20~30% 정도가 교대근무 또는 야간 근무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근무형태는 주행성인 인간에게 맞지 않다. 교대근무가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을 발표한 연구들은 많지만 해결책은 부족하다. 사회적인 제도 개선이 먼저다. 인간이 적응하기 쉬운 일정을 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테면 3교대 근무자가 야간 근무를 했다면 그 다음 날에는 아침 근무를 하는 식이다. 잠을 자는 데에는 취침 시간이 조금씩 늦춰지는 게 좋다. 밤 10시에 자던 사람이 갑자기 새벽 2시에 자는 건 쉽지만 오후 6시에 자는 건 어려운 것 처럼 말이다.


-저녁형 인간은 어떤가?
아침형·저녁형 인간을 분류할 수 있지만, ‘저녁형이 유전인가’라고 질문하면 아니다. 인간은 주행성이다. 기본적으로 극단적인 야행성일 수 없다. 게다가 우울증·조울증 환자 연구 결과들을 보면 대부분 저녁형 인간이다. 박사 논문의 주제이기도 했는데 처음엔 아침형·저녁형이 타고난 것이기 때문에 억지로 바꾸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 그러나 우울증·조울증 환자들을 진료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건강을 위해서라면 아침에 활동하는 게 좋다. 불면증뿐만 아니라 우울증·조울증을 예방하는 것에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햇볕을 쬐는 것 이상의 처방은 없다.
-생체시계를 맞추는 팁에는 또 무엇이 있나?
자기 직전에 보는 빛을 차단해야 한다. 스마트폰은 빛을 안 봐야 할 때 보게 하는 주범이다. 그러나 보지 않는 건 어렵다. 블루라이트 최소화 기능을 활성화하거나 앱들을 활용하는 게 도움될 수 있다. 블루라이트는 우리 생체시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빛이다. 아침엔 좋지만 밤에는 좋지 않다. 자연적으로 아침 햇빛이 푸르스름하고 석양은 누리끼리한 이유이기도 하다. 야간 근무를 마친 교대근무자라면 퇴근길에 선글라스라도 쓰는 걸 수면의학적으로 권장할 수 있다.


-멜라토닌이나 마그네슘 복용은 효과가 있나?
멜라토닌은 낮에는 분비되지 않다가 저녁부터 서서히 분비된다. 우리 몸의 생체리듬을 지켜주는 호르몬 중 하나다. 연령이 높아지면 뇌 기능이 떨어져 멜라토닌 분비량도 저하되기 때문에 복용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다만 55세 미만에게는 권장하지 않는다. 정상적으로 체내에서 만들어지는 호르몬이 외부에서 들어오는 물질에 의해 안 좋은 영향을 받을 수 있어서다. 마그네슘은 미네랄이다. 신경전달물질을 생산하는 과정에 기여해서 효과가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불면증 증상 완화는 다른 얘기다. 아직 의학적인 근거는 없다.


-마지막으로 불면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밤에만 노력한다고 잘 수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낮에 어떻게 생활했는지가 더 중요하다. 환자들에게 시험공부에 빗대서 많이 설명하는데 시험장에서 노력한다고 시험을 잘 볼 수는 없다. 미리 공부해야 하는 것처럼 밤에 잠을 잘 자려면 아침에 충분히 생체시계를 깨우고 활동해야 한다. 특히 아침 일찍 밝은 빛을 자주 보면 밤에 저절로 나도 모르게 잠이 드는 신기한 현상을 경험할 것이다. 하루 만에 되지는 않는다. 1~2주 정도만 참고 노력해보길 권한다.




고대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헌정 교수./사진=신지호 헬스조선 기자


이헌정 교수는
고대 의대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고대안암병원에서 불면증, 수면무호흡, 과수면 등의 수면장애와 조울증, 우울증 등을 전문적으로 치료하고 있으며 수면센터장을 맡고 있다. 또 대한수면의학회 이사장을 지냈으며 영문 학술지 ‘시간생물학(Chronobiology in Medicine)’을 창간해 국제적인 학술지로 키워낸 바 있다. 그리고 수면다원검사 건강보험 급여화와 수면건강증진을 위한 다양한 연구 활동으로 국민 건강 증진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최근 보건복지부장관 표창을 수상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