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마오 마을의 발현 체험
사도 3,1-10; 루카 24,13-35 / 2022.4.20.; 부활 팔일 축제 수요일; 이기우 신부
오늘 복음은 주간 첫날에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가던 길에서 두 제자가 예수님을 만난 이야기입니다. 이 날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첫 날로서, 새벽녘에는 무덤을 찾았던 막달라 마리아와 여인들에게 나타나시더니 한낮에는 클레오파스와 다른 한 제자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직접 뽑으신 열두 제자단에 들지는 못했어도 그분의 복음을 듣고 하느님 나라가 다가오기를 열렬히 갈망하며 그분을 따르던 토박이 지지자들로서 이 열두 제자가 이스라엘 방방곡곡으로 파견되었을 때 모은 예순 명을 합해 일흔두 명으로까지 확대되었던 제자단에는 들어있었던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너무도 무기력하게 십자가에서 돌아가시자 크게 실망해서 제자로서 살기를 포기하고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다가 낯선 나그네 차림을 하고 다가오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눈이 가리어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루카 24,16). 이들도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에게 생전에 미리 말씀하셨던 바, 수난과 부활 예고를 들었을 텐데도 부활의 영광만을 기대하고는 수난을 거쳐야 한다는 것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낯선 나그네로부터 구약성경 전체에서 메시아의 수난기약에 관한 예언을 다시 생생하게 들으니까 비로소 어이없이 느껴졌던 십자가의 예수 죽음이 비로소 이해가 되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느님의 말씀은 허투루 쓰여진 것이 아니고 반드시 이루어지고야 만다는 이치를 그제서야 깨달은 것입니다. 수난 없이 부활 없다는 이치는 수난을 거치는 한 반드시 부활한다는 이치로 이어집니다. 이것이 진리이신 하느님 말씀이었습니다. 진리는 믿는 이들의 마음을 뜨겁게 합니다.
그래서 헤어지기 아쉬워서 날도 저물었길래 들른 엠마오의 집에서 두 제자는 낯선 나그네와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낯선 나그네가 빵을 떼어 나누어주면서 “받아먹어라, 이것이 너희의 죄 사함을 위하여 내어준 내 몸이었느니라.” 하고 말씀하시자, 그제서야 그 두 제자는 그 나그네가 예수님이심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수난은 메시아가 거쳐야 할 수난이었고, 자신들 앞에 나타난 그 나그네는 부활하신 예수님이심을 알아보는 눈도 뜨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더욱 결정적으로는 수난과 부활로 당신 생애를 완성하신 예수님처럼, 메시아를 따르려는 제자들도 빵이 떼어 나누어지듯이 진리를 위한 수난을 각오해야 하고, 그래서 그 수난을 거치면 반드시 메시아 백성으로 부활하리라는 것까지도 깨닫는 눈을 떴습니다. 바로 그 순간에 낯선 나그네로 나타나셨던 예수님은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셨습니다. 예루살렘 다락방에 숨어 있던 열두 제자들에게로 가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곧바로 그리로 달려간 이 두 제자들은 방금 열한 제자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의 발현 소식을 전해들었고(루카 24,34), 그들도 자신들이 겪은 발현 체험을 들려주었습니다(루카 24,35).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사기지은을 발휘하시어 동산에서,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그리고 또 예루살렘 다락방에서 동분서주하시며 나타나신 이 일들은 여인들이나 두 제자, 그리고 열한 제자 모두를 사도로서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한 예수님의 활약이었습니다. 제자 단계에서 사도 단계로 진급하자면 수난과 부활에 관한 말씀의 이치를 깨달아야 할 뿐만 아니라 그 말씀이 예수님께 실현되었음을 믿을 수 있어야 하고, 또한 그들 자신도 예수님처럼 진리를 위한 수난과 헌신으로 살아감으로써 메시아 백성으로 부활해야 한다는 것을 다짐해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바치신 자기봉헌의 제사를 제자들도 바치는 것이 오늘날 미사요 성찬 전례입니다. 제자들이 이러한 뜻으로 예수님과 일치하게 되는 것이 예수 재림입니다.
오늘날 미사에서 예수님께서 하셨던 대로 빵과 포도주를 축성한 사제는 거룩하게 변화된 성체와 성혈을 나누어주기 전에 그분의 재림을 청하는 기도를 바칩니다. “주님, 저희를 모든 악에서 구하시고 한평생 평화롭게 하소서. 주님의 자비로 저희를 언제나 죄에서 구원하시고 모든 시련에서 보호하시어, 복된 희망을 품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게 하소서.” 그리고 영성체 예식에서 성체를 보여주면서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줍니다: “그리스도의 몸!”
이 말은 예수님을 머리로 하는 메시아 백성, 그리스도 교회의 일원으로서 그분과 일치하는 몸이 되시겠습니까 하고 물어보며 다짐을 받으려는 쐐기말입니다. 과연 그 두 제자는 성령 강림 때 모여 있던 백스무 명 사도단의 일원이 되어 사도로서 세상에 나아갔고, 열한 제자 중의 베드로와 요한 역시 기적을 베풀 수 있는 믿음과 기운을 받아서 태생 불구자를 일으켜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는 일어나서 걸었고 뛰기도 했으며, 하느님을 찬미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교회 안에도 눈이 가리어진 신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말씀을 듣고 들으면서도 수난과 부활의 이치를 깨닫지 못하는 이들입니다. 또 다행히도 그 수난과 부활이 예수님께 실현되었음을 믿는 경우에 자신들도 그 길을 따라가야 함을 모르는 이들도 있습니다. 영성체할 때마다 “아멘!”으로 대답해 놓고서도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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