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너희는 하느님의 백성이니라

수성구 2022. 4. 9. 05:17

너희는 하느님의 백성이니라

에제 37,21ㄴ-28; 요한 11,45-56

2022.4.9.; 사순 제5주간 토요일; 이기우 신부

 

  사순시기가 막바지에 접어 들었습니다. 이제 내일부터는 성주간이 시작되고, 그 주간 안에 파스카 성삼일을 보내게 됩니다. 이 성삼일의 마지막 날에 우리는 부활성야미사를 통해 부활시기로 넘어갑니다. 

 

  에제키엘이 예언한 메시지는 세 가지였습니다. “이스라엘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리라.”는 말씀은 믿는 이들이 하느님과 맺는 관계 즉 신앙적 정체성이 분명해야 함을 알려줍니다. 그 다음, “다시는 두 민족이 되지 않고 한 민족이 되리라.”는 말씀은 본시 하나였으나 갈라진 사람들이 다시 만나는 통합의 희망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나의 성전이 그들 한가운데에 영원히 있게 되면, 그제야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라는 말씀은 신앙과 통합이 가능해질 수 있게 하는 표지가 바로 성전이라는 것입니다. 

 

  믿는 이들이 각자의 삶에서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게 되면 신앙적 정체성이 뚜렷해져서 하느님의 축복과 은총을 가시적으로 누릴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믿는 이들이 신앙적 정체성을 회복하면 더 이상 흩어져서 반목하지 않고 서로 통공을 이룩할 수 있게 될 것이며, 성전에서 세상 사람들에게 하느님을 더욱 뚜렷이 선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성전은 더 이상 건물로서의 성전이 아니라 생각과 말과 행위가 신앙에 의해 이루어지는 사람들의 공동체이며, 또한 제도적이고 법적으로 구분된 종교집단을 넘어서 갈라진 겨레를 한데 모을 수 있는 공동선으로 뭉친 하느님 백성입니다. 이것이 믿는 이들에게 열려진 미래의 현실입니다. 

 

  하느님 백성의 구심점은 그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이신데, 그분은 부활하시어 성령으로 역사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요한복음 11장의 오늘 복음에 나오는 이야기에서도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죽게 될 수도 있는 위험성을 무릅쓰고 죽은 라자로를 다시 살리셨는데 그 목적은 바로 부활 신앙을 일깨워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부활은 하느님의 힘으로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깨우쳐주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일으키신 기적들 중 마지막으로 이 일을 성취하셨습니다. 이는 당대의 제자들뿐만 아니라 우리 후대의 그리스도인들도 부활하신 당신께 대한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죽은 라자로를 예수님께서 다시 살리셨다는 소문이 파스카 축제를 지내려고 모인 예루살렘 군중 안에서 퍼져나가자, 이에 불안을 느낀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이 대책회의를 열어서 예수님을 죽일 음모를 꾸몄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을 경건하게 믿어온 사람들이라고 하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 이렇게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대적하는 죄악을 저지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여러 가지 표징으로 당신이 신적 권능을 지니신 하느님의 말씀이시며, 따라서 믿는 이들의 미래 현실을 새롭게 창조하시고 온전히 이끄실 수 있는 하느님이심을 나타내어 주신 바 있었습니다. 요한복음서의 2장에서 11장에 이르기까지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기적들이 모두 일곱 가지의 기적이 그 표징들이었습니다.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신 기적(요한 2,1-11)이 첫 번째요, 헤로데 왕실 관리의 아들을 살리신 기적(요한 4,43-54)이 두 번째입니다. 38년 동안이나 중풍으로 고생하던 앉은뱅이를 벳자타 못가에서 고쳐주신 기적(요한 5,1-9)이 세 번째요, 오천 명도 넘는 군중을 배불리 먹이신 빵의 기적(요한 6,1-15)이 네 번째이며, 위험에 처한 제자들을 구하시러 급히 오시고자 갈릴래아 호수 물 위를 걸으신 기적(요한 6,16-24)이 다섯 번째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눈이 멀었던 이를 보게 해 주신 기적(요한 9,1-12)이 여섯 번째이며, 죽은 라자로를 살리신 기적(요한 11,38-44)이 마지막 일곱 번째입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기적으로 당신의 신적 권능을 보여주신 가운데에서도 특히 죽은 이를 다시 살리심으로써 능력을 보여주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써 결정적으로 우리의 신앙의 목표와 희망이 되셨습니다. 즉, 우리가 하느님과의 관계를 새로이 하여 신앙적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할 목표는 부활하신 예수님이시며, 그 신앙적 정체성을 통해서 믿는 이들이 서로 통공하게 될 것이고, 이렇듯 믿는 이들의 통공으로 이룩되는 새 하느님 백성이야말로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날 새 성전입니다. 이 점에 있어서도 이스라엘은 우리의 반면교사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지만, 우리에게는 그분을 알아보기 위한 표지가 다섯 가지나 주어져 있습니다. 말씀과 성찬, 서로 섬기는 삶, 서로의 신앙 감각을 존중하기 그리고 공동합의성의 구조를 이룩하기가 그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어 믿는 이들 안에 현존하시겠다고 약속하신 이 다섯 가지 양식을 모르고 지나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정체성, 우리의 통공 그리고 우리의 성전이 그 양식들에 들어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이제 다가올 성주간 전례에서 십자가에서 부활로 넘어가는 파스카 신비를 잘 묵상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