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마고르 미싸빕

수성구 2022. 4. 8. 05:18

마고르 미싸빕

예레 20,10-13; 요한 10,31-42 / 2022.4.8.; 사순 제5주간 금요일; 이기우 신부

 

  선과 악이 뒤바뀌면 의인이 죄인처럼 단죄당하고 악인이 선인처럼 위장하여 현실의 권력을 장악합니다. 오늘 독서에서 동족들에게 박해받던 예언자 예레미야가 따돌림당한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하느님께 하소연하였습니다. 이 기도에서 사면초가로 고립된 자신의 처지를 사람들이 놀려대는 말이 히브리어로 ‘마고르 미싸빕’입니다. 또한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 반항하는 동족 유다인들이 돌로 치려 하자, 예수님께서는 생명의 빵과 물로 선포하신 영원한 생명의 복음을 믿지 않더라도 당신이 하시는 일을 보아서라도 하느님은 믿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예레미야를 예언자로 부르신 때는 요시아 왕이 한창 종교개혁을 진행하던 기원 전 7세기 중반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시아의 개혁은 신하들과 예언자들 그리고 사제들의 고질적인 부패로 인해 실패로 끝나고 남유다 왕국은 급속하게 몰락해 가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앗시리아와 바빌론 그리고 이집트 등 주변 강대국들은 지역 패권을 차지하려고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으려고 어떻게든 애써야 했으나, 요시아 왕과 백성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는 가짜 예언자와 가짜 사제들이 기승을 부렸습니다. 그야말로 내우외환(內憂外患)으로 안팎이 어렵던 시절인데도, 이 청맹과니 예언자 사제들은 딴청을 피우며 멍청한 낙관론을 유포하였습니다(예레 5,12). 그러나 예레미야가 받은 하느님의 말씀은 정반대로 ‘소름끼치는 무서운 일’(예레 5,30-31), 즉 예루살렘의 파괴와 바빌론으로의 유배였습니다(예레 20,4-5)

 

  그런데도 유배생활이 끝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도 지배자만 바뀌었을 뿐 강대국의 지배는 지속되었고, 이제는 자기 땅에서 노예살이를 하고 있었으며, 하느님께 대적하려 드는 못된 버릇도 여전히 고쳐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유다인들이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들을 보고 가르치신 바를 들으면서도 되려 그분을 거짓 예언자로 몰고 가면서 돌을 던져 죽이려고까지 드니까, 답답해지신 그분께서(요한 10,32) 아주 근본적인 이야기, 즉 아담의 후손이자 노아의 후손이며 아브라함의 자손인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상기시키셨습니다. 노아와 아브라함으로부터 하느님께 관한 특별한 신앙적 교훈을 듣고 살아온 이스라엘 백성은 이 정체성으로 아직 하느님을 모르는 주변 민족들에게 하느님의 빛을 반사해서 전해 주어야 하는 사명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느님으로서 세상에 오셔서 하느님의 일을 하고 계신 분을 신성모독자로 간주하고는 돌로 쳐서 죽이려는 상황에서 예수님은 감쪽같이 벗어나셨습니다(요한 10,39). 이렇게 하여, 예수님을 배척한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 정체성을 잊어버리고 하느님께서 주신 사명의식조차 걷어 차 버렸습니다.

 

  최근 우리나라의 현실도 예레미야 당시나 예수님 당시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 현실에서 선과 악을 뒤바꾸어 놓은 범인들은 ‘檢言政判’, 즉 검사들과 언론인들과 정치인들 그리고 판사들입니다. 특히 정의를 수호하겠다는 선서를 했던 검사들은 어이없게도 범죄를 대놓고 저지른 후에는 ‘일단 도망가고, 잡히면 부인하고, 백을 쓰면’ 처벌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고제규, 2021.11.17., 시사인). 작년 ‘채널A 검언 유착 사건’, ‘라임 술 접대사건’, ‘고발 사주 의혹 사건’ 등 모두 검사들이 연루된 사건에서 수사 대상이 된 검사들은 휴대전화를 폐기하고, 모르쇠로 일관하고, 정치공작이라고 주장하며 검찰권력 뒤에 숨었습니다. 가증스럽게도 죄를 지은 검사 출신들이 숨는 권력의 백그라운드는 죄인을 재판에 넘길 수도 또는 넘기지 않을 수도 있는 기소권 독점 현실과 선택적 정의를 편리하게 구사하는 타락한 검찰입니다. 이 부당하고 사악한 현실을 정상화시켜 놓지 않고서는 대한민국의 정의는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기 어렵게 되어 버렸습니다. 억울한 피고인을 보호하고 적폐를 청산해야 할 검사들이 거꾸로 적폐세력의 이익을 대변하거나 스스로 적폐가 되어 악랄한 활약을 하는 바람에 대선판까지도 뒤집어 놓아서, 피의자로 수사를 받아야 할 사람을 최고 권력자로 올려놓았기 때문입니다. 

 

  아직 취임도 하기 전이지만 벌써 국민적 저항의 기운이 만만치 않습니다. 게다가 눈앞의 작은 이익에 팔려서 넘어갔던 ‘묻지마’ 지지 여론까지 깨어나면, 머지않아 뒤바뀐 현실을 제대로 돌려놓으려는 복원력이 거세게 작동할 것입니다. 어둠이 빛을 이겨본 적이 없습니다. 단, 세상의 그 빛은 태양이 시간이 되면 떠오르듯이 저절로 비추어지지 않습니다. 나라의 공동선과 정의에 깨어있는 이들이 세상의 빛이 되어 어둠을 몰아내야만 이길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 자신의 무죄함을 탄원하며 의로운 이들과 가난한 이들이 종내는 승리하리라는 희망을 피력하던 예레미야의 예언을 기억합시다. 그리고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며 하느님을 믿으라고 분부하신 예수님 말씀을 기억합니다. 우리 사회를 어지럽히고 있는 어둠의 악은 조만간 ‘마고르 미싸빕’이 되어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가 세상의 빛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