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빌론 불가마 앞의 인간 선언
다니 3,14-95; 요한 8,31-42 / 2022.4.6. 사순 제5주간 수요일; 이기우 신부
간음하다 붙잡혀 온 여인을 희생시켜 함께 옭아매려던 바리사이 유다인의 프레임에 맞서서 예수님께서는 그 프레임의 사악함을 폭로하시고 그 악인들을 꼼짝못하게 쫓아버리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진리가 인간을 자유롭게 할 것이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를 메시아로 믿는 신앙이 참된 신성을 증거하는 진리임을 밝히신 것이고, 동시에 율법을 내세운 인습적인 바리사이즘은 이미 하느님의 신성을 반영하지 못하는 거짓 종교라고 폭로하셨습니다. 이것이 오늘 복음의 메시지입니다.
그리고 오늘 독서는 바빌론 유배시절에 신상과 황제를 우상처럼 숭배하는 바빌로니아 왕국의 박해에 맞섰던 유다 젊은이들의 용감한 처신을 하느님께서 어여삐 보시고, 타오르는 불가마 속에서 그들을 구해 내셨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독서로 배치된 다니엘 예언서는 바빌론 유배 시절에 그 통치자들의 우상숭배에 물들고 협력했던 유다인들의 어두운 과거를 반성적으로 깨우치고자 후대에 쓰여진 교훈문학입니다.
사실 불가마 속에서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 못 박혀 높이 달리셨을 때, 우상숭배자 같은 유다인들은 그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고 놀리면서 만일 내려오면 믿어 주겠다며 조롱했지만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신적 권능을 그런 조롱거리에 대응하느라고 쓰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초대교회 시절 신자들은 그토록 부당한 십자가 수난에 대하여 당신의 신적 능력을 발휘하지 않고 오히려 죄인처럼 죽임을 받아들이신 예수님의 겸손이야말로 그분의 신성이라고 뒤늦게 깨달으면서 복음이 퍼져나갔고 교회가 곳곳에 세워질 수 있었습니다. 이 땅의 박해시대에도 우리 신앙 선조들은 조정과 노론의 잔혹한 박해에 속수무책으로 고통당하고 죽임당했지만, 그것은 신체적으로 드러난 무기력이었을 뿐 정신적으로는 박해를 가하는 사악함에 저항하는 용감한 승리였습니다.
그러니,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 느고 등 유다 젊은이들의 항변과 배짱은 후대 유다인 아나빔들의 희망사항의 반영이면서, 설사 불가마 속에서 죽게 되더라도 부당한 박해에 대해서는 결코 굴복하지 않고 진리이신 하느님의 뜻에 따른 신앙을 버리지 않겠다는 인간 선언이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한 번은 죽을 운명을 지니고 있는 존재이며, 따라서 지금 무엇을 위하여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과 그 결과로 무엇을 위하여 어떻게 죽느냐가 우리의 인간 존엄성 무게를 결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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