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너희는 그분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없고 그분의 모습을 본 적도 없다”

수성구 2022. 3. 31. 05:36

“너희는 그분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없고 그분의 모습을 본 적도 없다”

 

 

탈출 32,7-14; 요한 5,31-47 / 2022.3.31.; 사순 제4주간 목요일; 이기우 신부

 

  오늘은 부활 신앙의 영성적 국면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벳자타 연못에서 베푸신 중풍병자의 치유 기적 사건에 대해서 너무나 엉뚱하게도 예수님의 신원을 문제 삼는 바리사이파 유다인들의 황당한 소행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한 번도 없고 그분의 모습을 본 적도 없다”(요한 5,37). 그러니 그들이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으시고 그 말씀에 따라 행하신 일들이 이해되지 못함은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이래 천 년도 넘게 신앙을 물려받은 그들에게는 유감스럽게도 하느님께서 역사상 처음으로 당신 백성으로 선택해 주신 정통성에 걸맞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모세 시절에도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그것에 절하고 제사 지내며 목이 뻣뻣한 백성으로 살다가 호되게 야단과 질책을 받았습니다. 그 후 천 년이 흐른 뒤에도 이런 사정은 별반 나아지지 못해서, 바른 신앙 자세를 가르치며 회개하기를 요청했던 세례자 요한이 그들에게는 “타오르며 빛을 내는 등불”(요한 5,35)일 정도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이런 역사적 시행착오를 반면교사로 삼고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을 기준으로 삼아 교회는 부활 신앙에 걸맞는 기도에 대해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기도는 사람이 하느님과 대화하는 의식적인 행위입니다. 기도함으로써 사람의 혼이 하느님의 영과 소통합니다. 이로써 영혼이 생기를 얻게 됩니다. 기도는 사람이 지닌 본능에서 나오는 행위가 아니라 하느님께 향하려는 신앙에서 나오는 인간적이고 의식적인 행위입니다. 따라서 기도 행위를 통해 하느님의 영이 이끄시는 대로 사람의 혼이 성장합니다. 이것이 영혼 생명의 성장과정입니다. 따라서 기도하지 않는 신자는 신앙을 성숙시킬 수 없습니다.  

 

  기도는 내적인 충동에 의해 자연발생적으로 하게 되는 행위가 아니라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뚜렷한 원의를 가지고 신앙이 자라남에 따라서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수련 행위입니다. 모든 민족에게서 발견되는 종교양식이 하느님께서 발하시는 말씀을 받아들이려는 수용양식이듯이, 기도는 모든 사람들이 하느님께서 하시는 말씀에 대한 응답입니다. 모든 기도는 하느님 앞에서 사람이 살아있게 되는 부활의 목표를 위해 행해집니다. 

 

  부활을 목표로 하되 그 단계적 지향에 따라서 기도는 흠숭, 감사, 청원, 전구로 나뉘어집니다. 흠숭 기도는 찬미하고 찬양하는 기도로서, 무상으로 주어진 은총에 대해 바치는 기도를 찬미 기도라 하고, 은총 이전에 하느님의 존재 자체에 대해서 바치는 기도를 찬양 기도라 합니다. 찬미와 찬양에 있어서는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자기비허의 삶, 즉 자신을 낮추고 비워서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하신 십자가의 삶이 으뜸가는 기준입니다.  

 

  하느님을 찬미하고 찬양하는 흠숭 기도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감사 기도입니다. 예수님의 성찬례는 그 자체가 감사의 기도입니다. 당신의 아들을 보내시고 수난을 당하게 하신 후 부활시키시어 인류를 부활케 하시려는 구원계획에 대해 총체적으로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감사 기도 다음에야 우리는 청원 기도를 바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청원에 있어서도 선결 조건은 죄가 있으면 속죄를 하고 나서 청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불가마에 던져진 다니엘도 자신의 곤경에서 구해달라는 청원을 하기에 앞서 동족의 죄를 대신 속죄하는 기도를 바쳤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천사에 의해서 불가마 속에서 살아남았습니다. 청원을 함에 있어서도 예수님께서는 먼저 하느님 나라를 구할 것과, 필요한 것들을 청하되 개별 지향 이전에 성령을 청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이것은 청원 기도의 공식인데, 많은 신자들이 이 공식을 지키지 않고 정성만으로 기도하면 될 줄로 여기다가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주어지지 않으니 지쳐서 기도하기를 포기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기도의 마지막 지향은 전구(轉求)입니다. 전구는 전달 기도의 준말로서, 청원 기도의 한 형태처럼 보이지만 자기의 청원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청원을 대신 청원하는 기도이기 때문에 영적인 애덕을 발휘하는 행위입니다. 우리가 사도신경에서 고백하는 ‘모든 성인의 통공’이 이 전구 단계의 기도에서 실현됩니다. 공동선을 위한 연대가 실현되기 때문입니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기 전부터 탁월한 전구자로 활약하셨습니다(참조 요한 2,5). 이를 근거로 교회는 성모송에서 마리아의 전구를 필수적으로 청하는 기도를 바치도록 신자들에게 권고하고 있습니다. 전구는 영적 나눔의 행위로서, 물적 나눔으로 이어지기 마련이고,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가난한 이들을 돕는 사랑을 실천하거나 정의와 평화를 구현하기 위한 사회적 연대 활동으로 발전하여 공동선을 증진시킵니다.

 

  교우 여러분!

이러한 기도의 지혜가 기도하는 신자들로 하여금 하느님의 말씀을 듣게 하고 하느님 모습도 보게 하여 부활 신앙을 살아있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