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녕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신의요 예지다”
호세 6,1-6; 루카 18,9-14 / 2022.3.26.; 사순 제3주간 토요일; 이기우 신부
오늘은 진정성을 화두와 고리로 삼아 묵상한 강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의 위선을 경고하시는 뜻으로, 기도의 두 유형을 예시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죄악을 숱하게 저지르면서 겉치레로만 의로운 척 하는 위선자의 기도보다는 비록 허물이 있어도 진정으로 통회하며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는 이들의 기도가 하느님께 더 호소력이 있다는 가르침이었습니다. 어제의 전례에서 기념한 성모 영보의 신비도, 거짓 목자들의 가식적인 기도보다는 아나빔들의 진실한 기도를 하느님께서 들어주신 결과였습니다. 구약시대에 왕들과 궁정 예언자들과 성전 사제들은 수많은 소와 양들을 번제물로 바치면 그 제사가 하느님께 합당하리라고 생각했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런 제물과 제사를 반기지 않으셨다고 호세아 예언자는 일러주었습니다. 그보다는 신의를 지키고 하느님을 찾는 예지야말로 하느님께서 반기시는 제사라는 것입니다.
또한 오늘은 안중근 토마스가 순국한지 112주년되는 날입니다. 1910년 3월 26일, 그는 동양 평화와 대한 독립을 외치며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이토 히로부미의 위선적인 극동평화론을 앞세우며 일본 군국주의 세력은 당시 대한제국을 식민지로 삼기 위해 이미 열 다섯 가지나 되는 죄악을 저지르며 침략의 마수를 뻗쳐오고 있던 시점이었습니다. 그는 하얼빈 역 광장에서 이토를 척살한 후 수감된 뤼순 감옥에서 한국과 중국과 일본의 동양 삼국이 형제처럼 살아가는 동양 평화를 꿈꾸며 미완의 동양평화론을 저술했고, 그 글은 동양평화를 위해 하느님께 바쳐드리고자 자기 목숨과 맞바꾼 제물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형 집행을 앞두고 젊은 시절 함께 황해도 일대를 다니면 복음을 전했던 빌렘 신부를 청하여 임종 고해성사를 보았고, 마지막 성체도 받아 모셨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백여 년이 넘은 지금, 그의 진정성에 대한 평가는 대략 세 가지로 발견됩니다.
첫째는 그가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용감하게 척살하여 일본 군군주의의 악행에 맞서 저항했다는 의협심과 진정성입니다. 백여 년이 지난 오늘날 일본 군국주의는 패배했고 안중근은 역사의 위인으로 남았습니다. 일본은 현재에도 과거의 군국주의를 부활시키려는 꿈을 실현하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으나, 세상은 점차 일본의 야욕을 눈치채고 있으며 그들의 속셈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군국주의 일본을 꿈꾸는 한 그 꿈은 또 다시 처절하게 실패할 것입니다. 일본의 위세가 시퍼렇게 살아있던 백여 년 전에 안중근은 역사의 정의와 민족의 의식을 일깨워준 선각자였습니다. 그가 이토를 척살했지만 일본인들을 미워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일본 왕을 천황이라고 존중했다는 진정성이 알려지자 그를 숭모하는 일본인들의 모임이 수십 년째 지속되고 있습니다.
둘째는 그가 꿈꾸었던 동양평화의 선진성과 진정성입니다. 그가 백 년 전에 꿈꾸었던 국제 평화가 그의 사후 반세기가 지나면서 유럽에서 실현되기 시작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유럽의 거의 모든 나라가 서로 적이 되어 살상과 파괴를 사상 최대 규모로 저지르고 나자, 유럽 여러 나라의 정치인들이 더 이상 적대시하며 전쟁하지 말고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을 개척하기 시작했습니다. 1946년에 영국의 윈스턴 처칠 수상이 처음 제안한 이래, 1950년에는 프랑스 로베르 쉬망 외상과 서독의 아데나워 수상이 호응하여 유럽 석탄 철강 공동체로 시작하였습니다. 그 후 여러 경과를 거쳐서 2004년에 결성된 유럽 연합은 25개 회원국의 인구 4억 5천여 만 명이 마치 한 나라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히려 안중근이 꿈꾸었던 동양삼국인 한국과 중국과 일본, 더군다나 남북한은 여전히 불안한 동거를 하고 있어서, 언제 동북아시아에 평화가 찾아올른지 모릅니다. 유럽 연합처럼 동북아시아의 공동체로까지 발전할른지는 더더욱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안중근은 평화의 꿈을 꾸었고 그 꿈을 후대에 남겨 주었습니다.
셋째는 하느님 사랑과 겨레 사랑을 일치시키며 살았고, 죽는 순간까지도 천주교인으로 죽고자 했던 안중근 토마스의 치열했으면서도 일생토록 죽는 순간까지 진정성을 보여준 신앙입니다. 백 년 전 뮈텔 주교로부터 살인자로 단죄되었다가 1980년대에 김추환 추기경이 의인으로 복권시킨 후부터 지금까지 천주교 신자들 안에서 신앙인으로서의 안중근 토마스의 면모는 서서히 알려지고 있는 중입니다. 한때는 시복 청원 대상으로 오르기도 했었습니다. 그는 입교하기 전에 순교자들의 신앙을 담은 서적 120권을 다 읽고 나서 영세한 지성인 신자이고, 고향 청계동을 중심으로 황해도 일대에서 복음을 전하여 전국 최고의 교세 신장 성적을 기록한 관록 있는 선교사였습니다. 그를 흉악한 살인범으로 취급하던 뤼순 감옥의 간수나 검사, 법원장까지도 그의 인품과 신앙을 존중하여 그들 최고의 존칭인 ‘선생’으로 부를 만큼 그의 마음과 행실은 진정성이 있었고 일본인들의 마음까지도 움직였습니다.
교우 여러분,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 했는데, 하느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진정성으로 살아 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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