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아라, 내가 오늘 생명과 행복, 죽음과 불행을 내놓는다”
신명 30,15-20; 루카 9,22-25 / 2022.3.3.; 사순시기 첫 목요일; 이기우 신부
재의 수요일을 지내고 사순시기의 첫 목요일인 오늘, 우리는 생명과 죽음을 선택하라는 신명기의 말씀과, 십자가와 부활을 예고하시는 예수님의 복음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 말씀은 세상을 복음화시키기에 앞서 우리 자신이 복음화되고 우리 자신이 진정으로 하느님을 섬기는 신앙인이 되기 위해서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는 이 사순시기의 기본 지향으로 어울립니다.
신명기는 모세가 백성에게 가르친 바를 간추려서 그 핵심 메시지만 따로 편집한 성경입니다. “보아라, 내가 오늘 너희 앞에 생명과 행복, 죽음과 불행을 내놓는다.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주 너희 하느님의 계명을 듣고,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며 그분의 길을 따라 걷고, 그분의 계명과 규정과 법규들을 지키면, 너희가 살고 번성할 것이다. 또 주 너희 하느님께서는 너희가 차지하러 들어가는 땅에서 너희에게 복을 내리실 것이다”(신명 30,15-16). 생명과 죽음, 행복과 불행 등 우리의 구원에 있어 근본적인 메시지를 다루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느님 나라와 영원한 생명의 참된 행복을 선포하셨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듯이 몸과 마음을 다하여 이웃을 사랑하되, 특별히 보잘것없는 이웃을 섬기는 사랑의 삶을 예수님께서는 보여주셨습니다. 그분의 말씀을 듣던 청중은 주로 갈릴래아 유다인들이었는데, 그들은 그들의 땅을 차지한 예루살렘의 부유한 유다인 부재지주들로부터 착취당하면서도 무시당하고 있었던 데다가, 로마제국이 부과한 과중한 세금까지 겹쳐서 이중으로 수탈당하고 있었습니다. 이렇듯 가난하고 힘 없는 유다인들 한가운데에서 행하시던 복음선포는 “영과 진리 안에서”(요한 4,23) 하느님께 바치신 진실한 제사였습니다.
초대교회의 신앙인들은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따르는 백성이라는 뜻으로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고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하느님 나라와 영원한 생명의 참된 행복의 전파와 실천을 진실한 제사라고 믿고 박해 속에서 예수님께서 사셨던 바를 따랐습니다. 이러한 신앙 증거는 고대교회 3백 년 동안에도 이어졌고, 신앙 진리와 정의의 가치로 살아가는 공동체가 폭발하듯이 늘어나 인류 역사의 신기원을 이루었습니다.
이 3백 년 동안에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무신론자들과 우상숭배자들에게 배척당하고 권력자들에게 박해를 받으면서도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하려 하지 않고, 신앙 진리와 정의의 가치를 목숨보다 더 소중히 여기며 영원한 생명을 얻었으며, 빛나는 별처럼 후대 신앙인들을 비추어주고 있습니다.
죽음과 불행보다는 생명과 행복을 선택한 후대 신앙인들은 조선 시대 후기에 이 땅에서도 이어졌습니다. 실로 오묘한 섭리로 들어온 신앙의 진리를 받아들여 교회를 세웠고, 성직자 없는 평신도 교회에서도 스스로 성사에 대한 갈망으로 성사를 베풀어 놀라운 선교 성과를 이루어냈습니다. 그러다가 제사금지령으로 박해가 시작되자 성직자 영입운동을 벌이는 한편, 박해를 피하여 전국의 심산유곡으로 찾아들어 모두 189군데에 교우촌을 세우고 신앙의 가치를 지켜나갔습니다. 신분으로 백성을 나누어 차별하던 사회적 불의에 저항하여, 만민이 평등하고 남녀가 동등하다는 천주교 교리를 의롭게 증거했습니다. 교우촌 신자들은 공소에 모여 기도를 바치며 제물은 없지만 영과 진리 안에서 진실한 제사를 하느님께 봉헌하였습니다. 보잘것없는 백성이 거룩한 삶을 이 땅에서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수많은 신자들이 조정과 유림의 박해로 죽어갔습니다. 칼에 목이 떨어져 죽고, 매맞아 죽고, 바위돌에 패대기쳐져서 죽고, 얼굴에 바른 젖은 창호지로 숨막혀 죽고, 굶어서 죽고, 매맞으며 퍼진 장독으로 죽고, 나중에는 수십 명씩 생매장당해서 죽어갔습니다. 그렇게 죄 없는 자기 백성을 죽인 조선 왕조는 국력이 소진되어 일제에 멸망했고, 입술로 배교했다가 풀려나와서는 후손들에게 순교정신을 가르친 배교자들 덕분에 조선의 천주교회는 살아남았고 드디어 신앙의 자유를 얻었습니다.
이 고귀한 희생으로 얻은 신앙의 자유는 우리만을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온 겨레와 온 인류를 위해 주어진 것입니다. 식민지배와 전쟁, 가난과 독재의 가시밭길까지 무사히 건너온 우리 교회와 신자들은 신앙의 자유와 진리와 정의의 가치를 온 겨레에게 나누어주어야 할 소명과 십자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 또한 생명과 행복, 죽음과 불행 중에 선택하라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속합니다. 갈라진 겨레, 나누어진 국토로 인한 불행을 딛고 하나된 겨레, 통일 조국을 향하여 우리의 올바른 선택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고, 죽임의 위협은 생명의 축복을 넘어설 수 없으며, 불행의 공포도 행복의 초대를 가로막지 못합니다. 하느님께서 모세를 통해 명령하셨고, 예수님께서 몸소 보여주신 이 빛과 생명과 행복의 길을 가기 위해서 먼저 우리 자신이 분명하게 하느님께로 돌아서서 확실하게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따라 걷겠다는 회개와 각오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영적인 몸이 비로소 생기를 얻어서 부활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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