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 주시리라

수성구 2022. 2. 1. 03:25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 주시리라

민수 6,22-27; 야고 4,13-15; 루카 12,35-40

2022.2.1.; 설; 이기우 신부

 

  오늘은 설 명절이고, 올해는 호랑이의 해인 임인년(壬寅年)입니다. 동북아시아의 한자문화권에서는 하늘의 뜻과 질서가 지상의 질서를 다스린다는 생각에서 오래 전부터 천문을 관측해 왔습니다. 그 결과 우리가 사는 지구별이 태양을 한 바퀴 도는 시간을 일 년으로, 지구 옆에 있는 달이 지구를 한 바퀴 도는 시간을 한 달로 잡아 역법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십간십이지(十干十二支)를 만들어 일 년을 넘어가는 시간 질서를 가늠해 왔습니다. 이 안에 동북아시아인들이 고대로부터 하늘의 이치와 지상 세계의 질서를 가늠해 온 기본 세계관이 담겨 있습니다. 

 

  갑(甲) ·을(乙) ·병(丙) ·정(丁) ·무(戊) ·기(己) ·경(庚) ·신(辛) ·임(壬) ·계(癸) 등의 십간(十干)은 하늘의 별들이 운행하는 질서를 상징하는 방패라고 상정한 것입니다. 여기서 열(十)이라는 숫자는 지구를 둘러싼 태양계의 주요 별 다섯 개인 목성, 화성, 토성, 금성, 수성의 오행을 두 배로 합한 수로서 십진법의 기본 단위입니다. 십간은 각각 다섯 가지 기운 즉 오행(五行)과 방위(方位)와 색상(色相)을 나타낸다고 가정하였습니다. 즉, 오행의 기운에 있어서 갑을(甲乙)이 나무(木), 병정(丙丁)이 불(火), 무기(戊己)가 흙(土), 경신(庚辛)이 쇠(金), 임계(壬癸)가 물(水)의 기운을 지녔다고 가정하고, 방위에 있어서는 갑을이 동쪽, 병정이 남쪽, 무기가 중앙, 경신이 서쪽, 임계가 북쪽을 가리킨다고 가정하며, 색상에 있어서는 갑을은 청색, 병정은 적색, 무기는 황색, 경신은 백색, 임계는 흑색을 나타낸다고 가정합니다. 

 

  그 다음, 십이지는 동북아시아의 지상 세계에서 흔히 발견되는 열두 종류의 동물로서, 땅의 질서를 표시하는 시간과 계절을 나타냅니다. 쥐, 소, 호랑이, 토끼, 용, 뱀, 말, 양, 원숭이, 닭, 개, 돼지 등의 동물이 각각 (子), 축(丑), 인(寅), 묘(卯), 진(辰), 사(巳), 오(午), 미(未), 신(申), 유(酉), 술(戌), 해(亥)인데, 밤 12시를 자정(子正)이라 부르고 낮 12시를 정오(正午)라고 하는 것도 이 십이지로써 시간을 표시하던 흔적입니다. 

 

  그리고 십간과 십이지를 교차시켜서 60년 단위로 지상세계와 인생의 질서가 순환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올해가 임인년이요 검은 호랑이의 해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서양에서라면 무심코 지나칠 수도 있는 사물 질서에 관심을 가지고 과학적이라기보다는 신학적으로, 그래서 거의 종교적인 수준의 의미를 부여하여 현세를 정성껏 살고자 했던 조상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60살이 된다고 해도 별일이 아니지만, 동북아시아의 동양에서는 60년 주기의 질서가 다시 시작된다는 뜻에서 환갑이라고 부르며 특별히 축하를 해 주기도 하는 전통이 남아 있습니다. 

 

  이에 비해 성경에서는 천문과 지상의 질서에 대해서보다는 이 모두를 주관하시는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축복을 내리신다는 계시 진리에 민감했고 이를 대단히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모든 복은 하느님께서 내리시는 것이고, 이 복을 받아서 자손들에게 전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도 새 해를 음력으로 다시 시작하는 설 명절이 되면 흔히 “새 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하고 덕담을 나누지만, 성경의 말씀대로라면 서로가 받은 하느님의 축복을 나누라는 덕담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나온 새 해 인사말이, “새해 복 많이 지으세요!” 라는 덕담인데, 뜻은 알겠는데 어딘지 좀 어색하지요? 그러니 덕담의 인사말은 그대로 하되, 복을 주지도 않으면서 받으라고 하면 아무래도 이상하니까 그 복을 내려주시는 분이 하느님이신 줄을 특별히 상기하면 좋겠습니다.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 주시리라"(민수 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