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시나이까?

수성구 2022. 1. 27. 03:11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시나이까?

2사무 7,18-29; 마르 4,21-25 / 2022.1.27.; 연중 제3주간 목요일; 이기우 신부

 

  다윗이 왕이 되리라고 예언한 사무엘이 기름을 부어 주었지만(1사무 16,13), 그 후에도 사울이 임금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리던 40년 동안 다윗은 사울의 부하로서 충성을 다 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전공을 세워 백성들의 민심을 얻은 가운데, 사울이 전쟁통에 요나탄과 함께 전사하자 백성 지도자들의 추대로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궁정 예언자 나탄은 다윗이 시작한 유다 지파의 왕조는 사울의 벤야민 지파와 달리 하느님의 축복을 받으리라는, 이른바 ‘시온의 계약’ 말씀을 들려주었습니다(2사무 7,5-16). 그러자 다윗은 하느님께 찬송의 노래를 읊어 올렸습니다: “주 하느님, 제가 누구이기에, 또 제 집안이 무엇이기에, 당신께서 저를 여기까지 데려오셨습니까? … 당신 종에게 복을 내리셨으니, 당신 앞에서 영원히 있게 해 주십시오”(2사무 7,18.29). 그리고 이런 다윗의 기도를 전해들은 후대의 유다인들은 이를 바탕으로 모두가 하느님을 찬송할 수 있도록 시편 8장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주 저희의 주님 온 땅에 당신 이름, 이 얼마나 존엄하십니까! 

하늘 위에 당신의 엄위를 세우셨습니다.

당신의 적들을 물리치시고 대항하는 자와 항거하는 자를 멸하시려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것으로 당신께서는 요새를 지으셨습니다.

우러러 당신의 하늘을 바라봅니다, 

당신 손가락의 작품들을 당신께서 굳건히 세우신 달과 별들을.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십니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 주십니까?

신들보다 조금만 못하게 만드시고 영광과 존귀의 관을 씌워 주셨습니다.

당신 손의 작품들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아래 두셨습니다.

저 모든 양 떼와 소 떼 들짐승들하며

하늘의 새들과 바다의 물고기들 물속 길을 다니는 것들입니다.

주 저희의 주님 온 땅에 당신 이름, 이 얼마나 존엄하십니까!“(시편 8,2-10).

 

  시편에는 이처럼 다윗이 하느님을 찬송한 기도뿐만 아니라 이름없는 백성들이 억압과 착취를 견디다 못해 탄원한 기도도 들어와 있고, 하느님께서 하늘을 쪼개시고 직접 내려와서 거짓 목자들 대신 당신 백성을 이끌어 달라는 청원 기도도 들어와 있습니다. 후대에 ‘시편’이라는 이름으로 형성된 과정만 해도 무려 천여 년입니다. 후대 유다인들은 이 150 꼭지에 이르는 아나빔들의 기도를 수집하고 편집하여 ‘시편’이라는 이름을 붙이면서, 시편은 아나빔들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그의 이름을 따서 ‘다윗의 노래’라는 별칭으로 불렀습니다. 이는 다윗의 아들인 솔로몬이 하느님께 지혜를 청했고 또 실제로 지혜로 백성들을 다스린 치적을 기억해서, 후대의 잠언과 지혜를 수집하고 편집하면서 ‘솔로몬의 지혜’라고 별명을 붙인 유래와 비슷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도, “누가 등불을 가져다가 함지 속이나 침상 밑에 놓겠느냐? 등경 위에 놓지 않느냐?”(마르 4,21) 하고 등불의 향도 내지 기수 기능을 강조하셨습니다. 다윗이 하느님께 기도드리고, 솔로몬이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지혜로 살아간 역사의 등불은 오늘날 시편과 잠언 지혜서로 남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시편 기도는 거의 암송하실 만큼 친숙하셨습니다. 신약성경 전체에서 시편이 인용된 사례만 해도 백 군데가 넘습니다. 초대교회 신자들의 신앙생활에서도 시편 기도가 깊숙이 들어와 있었음을 반영하는 사례입니다. 그들은 모두 언제 어디서나 하느님을 믿고 섬기는 역사의 아나빔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의 이 아름다운 전통을 계승하기 위하여 교회는 시편 기도 150장을 기본으로 하되 후대의 역사에서 실현된 기도들을 주로 편집하고, 신구약성경의 찬미가를 삽입하여 전례력에 따라 성무일도서를 편찬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를 성직수도자들에게는 의무로까지 규정했으며, 평신도들에게는 적극 권장해 왔습니다. 이는 신자들이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역사와 하느님께로부터 계시받은 신앙 진리를 간직한 이 역사와 진리의 등불을 함지 속이나 침상 밑에 놓지 말고 등경 위에 놓으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이 등불을 믿는 이들 앞에서와 세상에서 비추면,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고 거기에 더 보태어 받을 것입니다. 등불에 담긴 지향이 그렇게 실현되리라는 것입니다.